우리는 매일 조금씩 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은 깊어지고, 우리의 영적 안전 지대도 넓어집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어디로 불러서 물 위를 걸으라고 하십니까? 오트버그 목사님은 이를 알 수 있도록 돕는 네 가지 징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첫째, 두려움의 징표 둘째, 좌절감의 징표. 셋째, 긍휼의 징표. 넷째, 기도의 징표입니다. 먼저, 두려움의 징표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자주, 우리가 두려워하는 곳에서 배 밖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우리가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영적 모험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라는 물 위를 걷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입니다. 무엇이 두렵다는 것입니까?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믿음 때문에 생계와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해 왔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런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는 그런 위험이 없습니다. 전도시 우리가 받는 고통은 고작해야 상대방이 신앙 이야기를 거부할 때 느끼는 거절감이나 당혹감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전도에는 어떤 잠재성이 있겠습니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우리는 전도를 통하여 지상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불신자와 영적 대화를 하는 데 100%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이야기 한 번 못해 보고 생을 끝낼 수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먼저 내 발을 적셔야 합니다. 제프리 카터는 취직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던 목사였는데, 비행기 안에서 멋진 양복을 입고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는 사업가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카터는 아무 대화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사업가가 인사를 건네자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성 체형 관리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성의 신체를 바꾸어줌으로써 어떻게 여성의 자아 인식이 달라질 수 있는지 말하면서 자신의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터 목사는 그런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저렇지 못하고, 오히려 믿음을 변명이나 하려 하는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두려움 때문에 전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카터의 옷차림을 미심쩍게 바라보던 그 사업가는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카터 목사는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사업상 비슷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 흥미롭군요. 당신은 신체를 바꾸는 사업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인격을 바꾸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신정 (神政)주의 원칙을 적용하여 독창적인 인격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카터 목사가 말한 것은 영혼의 구원인데 구원 받은 영혼은 반드시 큰 인격의 변화를 수반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복음과 우리의 신분에 대해 크나큰 자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카터 목사와 사업가의 대화가 계속됩니다. 사업가는 말하였습니다. “아 예 들어본 것 같군요…그런데 이 도시에 사무실이 있습니까?” “예 우리는 국내에 많은 지점을 소유하고 있지묘. 전국적인 회사거든요. 알래스카와 하와이까지 포함해서, 각 주마다 최소한 사무실이 하나씩 있어요” 카더 목사는 여러 지역 교회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업가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마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읽어 보았거나 들어 보았을 이 거대한 회사를 생각해 내려고 노력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답니다. 경영진은 금번 사업 분기에 각국에 최소한 하나의 지사를 두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업도 그렇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경영진을 언급하셨는데 어떻게 운영하시나요?” “가족이 운영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그들이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자금이 많이 들 텐데요” 그는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습니다. 카더 목사는 대답했습니다. “돈 말입니까?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얼마나 드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사장은 언제나 충분한 자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매우 창조적인 분이죠… 돈은 필요한 곳에 지급됩니다. 사실 회사 사람들은 우리 사장을 가리켜 ‘천 산의 가축이 다 그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 그분은 목장업도 합니까?” “아닙니다. 그만큼 부자라는 말이지요.” 점점 대화는 점점 목적지로 가고 있었습니다. 카터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사업적인 측면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업가에게 교회를 회사 경영에 비추어 설명함으로써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그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일찍이 주님 역시 농부들에게 복음 전도를 농사짓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셨음을 우리는 배워야만 합니다.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4:30-32).
카터 목사가 기업에 비유한 하나님의 나라를 듣고 있던 사업가는 “그럼 당신은 어떻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나와 같은 직원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들은 회사 전체에 배어 있는 ‘정신(Spirit)’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회사 전체에 스며들어서 우리도 모두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요즘 세상에서 이런 말을 하면 구식이지만, 우리 조직에는 저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 회사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카터 목사는 외치다시피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비행기 있던 다른 사람들도 카터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사업가는 “아직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더니 “이윤은 많이 남기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상당합니다.” 카터 목사는 웃으며 받아 넘겼습니다. “저는 완전한 생명 보험, 화재 보험 등 모든 기본 사항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저의 은퇴 후를 위해 저택이 건축되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그는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저는 비즈니스 저널을 많이 읽는데, 왜 그 회사를 모르는 겁니까?” 카터 목사는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답니다. …. 참여하시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5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 관계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물론 결과가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성령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영혼을 만지는 일은 결코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16:13-14).
카터 목사의 경우처럼 두려움 때문에 미리 포기하고 거부하는 대신, 그 두려움을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디에 사용하기 원하시는지 알려주는 지표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발을 물에 적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징표입니다. 오토버그 목사님이 제시하는 또 하나의 징표는 ‘좌절감’이라는 징표입니다. 때로 성경의 사람들은 타락한 세상 때문에 좌절했을 때 하나님을 특별히 신뢰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느헤미야, 다윗, 엘리야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왕이 미워할 수 있고, 주변의 무서운 반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기 위해 나서려는 마음을 품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자 지체없이 인생 후반부를 쏟아 부었습니다. 다윗은 청년의 때에 이방의 블레셋 거인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행하고 있는 우상숭배를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번에 바알의 선지자들을 해치우려는 마음을 먹고는 갈멜산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타락한 현실과 하나님의 뜻 사이의 괴리로 좌절할 때,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주님을 위해 선한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주에는 할리우드 교회에서 수십 년 간 청년들을 가르친 헨리에타 미어즈 여사의 일화 몇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삼상17:4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