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애양원 가나안 복지되다!
마태복음25:40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애양원은 남자부와 여자부 마을을 조성하여 각기 모여 살게 하였으나, 젊은 환자들 간에는 ‘풍속 관련’ 범죄가 종종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남녀 환자들의 ‘결혼 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단종 수술을 받은 후, 남녀환자를 짝짓고 어린 아이 한 명을 붙여, 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린 후 가정촌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이 사업은 점점 확대되어 1976년 선교부는 선교부 땅 14만평을 위에 정착촌을 건설합니다. 은성동, 다윗촌, 도성촌과 인사동 마을이 그것으로 불모의 땅이 가나안 복지로 탈바꿈했다 하겠습니다. 70년 넘게 여자부 돌집에 살고 있는 김수남 권사의 증언입니다(1999년). “우월손 원장님은 공주서 농촌사업 허는 사람 데려다 우리헌티 농사 짓넌 벱과 퇴끼, 도야지 기를 벱을 가르쳐 주시고…전구 다마를 가져와서는 양말 기워 신으라 허시고… 한 번은 감나무 묘목을 싣고 와서 나눠 심었는디 이 근방 단감나무는 모다 그때 심은 게요. 그런께 황무지 같던 이곳이 가나안 복지가 되었지.”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결혼 사업, 정착촌 조성, 농업 교육 등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흔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는 말씀을 오해하여 더 나은 삶과 소득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특단의 사정이 없다면 사회통상의 소득은 확보되어야 사랑의 계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롬13:8). 이 계명을 실천하는데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기도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마6:10,쉬운성경).
전도서 5:6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본절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경히 여겨 실수라고 변명하며 이행하지 않으려는 사람에 대한 경고입니다(수사의문문). ‘사자’란 천사, 제사장, 하나님, 혹은 서원을 듣고 기록하는 직책의 사람 등 여러 해석이 있으나, ‘제사장’이란 해석이 타당합니다(말2:7). ‘네 목소리’는 서원을 실수라고 변명하는 말을 뜻하며, ‘너의 핑계(변명)’로 의역됩니다.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에 대한 생생한 묘사입니다. 즉, 재난, 실패, 질병 따위로 그 사람이 성취한 사업, 재물, 성공이나 어떤 업적을 물거품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원하여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기로 작정한 것을 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은 합당한 징벌의 범위에서 그 사람의 것을 가져가신다는 의미도 가능합니다. 토마스로드 침례교회의 한 신자가 제리 파월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께 작정한 헌금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모두 소급하여 드려야 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모저모로 당신의 작정한 부분을 다 거두어 가셨으니, 다음부터 내시면 됩니다.” 법관이 사건을 맡았으면 공의롭게 판결을 내려 갈등을 해소하든지 범죄에 합당한 벌을 선언합니다. 하물며,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얼마나 공의로우시겠습니까? 마땅히 두려워하여 서원을 했으면 갚는 것이 당사자에게 어떤 면으로든 유익합니다. 사정이 있는 경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다짐과 함께 이행바랍니다.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이 있지만, 정말 귀한 보배는 지각 있게 말하는 입이다.”(잠언20:15,새번역)
전도서 5:7절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부활의 주님을 모르는 전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을 허무 극복의 유일한 방법으로 전제하며, 단락 5:1-7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실례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제사(or 예배와 기도)이고, 또 하나는 서원과 그 이행입니다. 제사는 계명에 대한 순종이 수반되야 하고, 서원은 신중하게 따져서 약속하되 반드시 이행하라는 경고입니다. 다만, 이것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경건한 삶)의 한 부분이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따라서, 이 단락은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란 서론적 명령으로 시작해서,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는 결론적 명령으로 끝맺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아는 신자들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와 그분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넘치고, 이 감사가 ‘서로 사랑하라’는 그분의 명령을 우리 마음에 새기게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태도가 삶의 근간이며, ‘서로 사랑하라’는 이웃 사랑의 사명을 이루는데 골몰합니다. 세상을 짓누르는 인생의 허무, 절망, 회의 따위는 결코 우리 마음에 머무를 틈이 없습니다. 실로, 구속받은 신자의 삶 속에는 이사야 35: 10절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으므로, 만약 삶의 문제가 닥치면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십시오!(빌4:6,7)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35:10).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벳새다
요한복음 1:44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1839년 성서학자 로빈슨은 요단강 동편, 갈릴리 호수 북쪽에서 2㎞ 떨어진 엣-텔(et-Tell)을 벳새다로 추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유적지가 호수변에서는 너무 멀고, ‘어부의 집’이란 벳새다의 이름에 비추어, 분명 어업이 성행했을 것이서 보다 해변가에 위치한 현재 엘-아라즈(el-Araz)를 벳새다라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최근 갈릴리 해수면은 과거에 보다 높았고 고대 지진으로 인해 해수면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과 라미 아라브(Rami Arav)의 발굴을 통해 엣-텔 지역이 벳새다로 입증되었습니다. 엣-텔에서는 주후 1세기경 어업을 생업으로 한 도시와 여러 채의 가옥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어부의 집이라고 불릴 만큼 낚싯바늘이라든가, 납으로 만든 그물 추, 돌로 만든 닻 같은 물고기 잡이와 관련된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심지어 선두가 말 머리 모양을 한 베니게 어선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새겨진 인장도 발견된 바 있습니다. 또 다른 유명한 집은 포도주 제작자의 집으로 헬라시대의 포도주 항아리 4통과 값비싼 수입산 도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맹인을 고치셨으며(막 8:22),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지만(눅 9:10-17), 벳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마 11:21). 표적(이적)이 반드시 믿음을 만들지는 못하나, 성경의 성취로서의 그리스도의 표적(이적)은 믿음을 뒷받침합니다. 또한 모든 표적(이적)의 절정은 예수님의 부활이며, 영생에 대한 우리 믿음의 실체적 근거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요14:11,새번역).
그리스도인의 정체성(1)
에베소서4:6절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오인태의 시: 「달력을 걸며」 – “또, 깎아 곶감 한 줄 달다”
오 시인에게 영향을 준 분은 부모님입니다: “어머니는 밥상에 차려내는 음식으로, 아버지는 그 밥상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자식들을 가르치셨다. 아버지는 한번도 밥상 앞에서 반찬투정을 하거나 어머니를 핀잔하지 않으셨고, 훈계조로 자식들을 나무라거나 우격다짐으로 강요하지 않았으며, 식구 누구도 꼭 찍어 타박하거나 차별하지 않으셨다.” 오인태의 인생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삶’이라,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불필요하지요! 따라서, 시인 오인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은 없습니다. 한편, 오인태 시인은 “당신은 누구입니까?” 할 때 그 시작은 부모입니다. 그 위는 조부모이지만 얼굴도 보지 못하였다고 하니, 오직 부모의 전승을 듣고 사진을 보면서 믿을 뿐입니다. 5대조 이상은 족보의 기록만 믿고 있을 것이나, 족보는 틀려도 그의 삶에 큰 영향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성경의 증언과 천지만물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면 죄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입니다. 하나님 없는오인태 시인은 반성과 후회만이 있지 죄사함과 영생은 없으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와 용서,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죄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란 표지는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정체성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