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6/6/22-26)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서문교회(2)
창세기 12: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성 밖’에 위치했던 서문교회는 ‘외지 출신’ 목사와 장로들이 많았습니다. 초대 장로 김필수(1908년)는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해리슨 선교사를 따라 전주에 왔고 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승두는 두번 째 장로(1911년)로 서울 출신이며 레이놀즈를 도와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왔다가 전주에 정착합니다. 191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평북 의주 출신 김병농 목사가 부임하였고, 1914년에는 충남 서천군 출신 김인전 목사가 부임했습니다. 김대전 장로(김인전 목사의 사촌)의 증언입니다. “한산 토박이였던 저희 집안에서는 서울서 감역 벼슬 하시던 큰아버님이 처음 믿으셨는디 한문 성경을 읽고서 믿기루 작정하셨대요. 그때 두 아드님(김인전·김수전)을 비롯해서 집안 전체가 개종했지요…. 집안 장손이신 김인전 목사님이 전주 서문교회에 청빙 받아 내려오시자 한산에 있던 집안 식구들도 따라 왔는디 그때 저의 아버님도 장조카를 따라 전주로 오신게요.” 장손 따라 이주하는 ‘조선 양반 전통’에서 믿음으로 고향을 떠나는 ‘아브라함 신앙 전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같이 서문교회가 ‘성 밖’에 세워지고, 외지 출신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교회를 세워 간 과정은 단순한 이주의 이야기가 아니라 믿음의 순종과 헌신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세속적 안정을 버리고, 복음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이 믿음의 결단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는 씨앗이 되었고, 서문교회는 그 순종 위에 세워진 신앙의 집입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전도서 8:7절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본절은 인간 지혜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냅니다. 즉,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라는 말은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대한 고백입니다. 앞서 전도자는 “모든 일에는 때와 판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질서를 두셨고,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와 방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와 판단을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그 무지 때문에 인간은 불안과 고난을 겪습니다. 지혜자초자 예외는 아닙니다. 전도자는 지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는 데 유익합니다. 다만, 모든 결과를 예측하거나, 미래를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지혜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 경우 미래에 대한 무지는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이유입니다. 미래를 모르는 우리는 하나님께 묻고, 성공 여부를 하나님께 맡기고, 바른 길을 걸어갑니다(잠언3:5-7). 이것이 믿음의 삶이며 신실한 삶입니다. 왕 사울은 이의 부정적인 예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 직면한 사울은 사무엘이 약속 한 날에 오지 않고 백성은 흩어지자 승리를 위해 스스로 제사를 드립니다(삼상13장). 그는 사무엘을 존중하지 못하고 사무엘의 제사 권한을 침탈하였습니다. 뒤 늦게 온 사무엘은 사울의 왕국이 타인에게 넘어갈 것을 예언합니다. 40년 뒤 사울이 전사하자 왕국은 다윗에게 넘어갑니다. 사울의 왕국은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의 지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사울 자신의 왕국으로 서 갔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시편37:3)

전도서 8:8절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본절은 인간의 무지를 넘어 인간의 무력함을 네 가지 영역에서 보여줍니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없다”(7절)는 말은 이제 “미래를 바꿀 수도 없다”는 말로 확장됩니다. 첫째, 바람입니다. 권세가 큰 왕도 바람을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둘째, 죽음입니다.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다”는 말은 인간의 절대적 한계를 선언합니다. 지혜자, 권력자, 악인,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셋째, 전쟁 중입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개인의 힘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즉, 인간은 자신이 처한 거대한 역사적·사회적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넷째, 악이 악인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악인은 자신의 꾀나 권력으로 위기를 모면하거나, 번영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궁극적으로는 보호받지 못합니다. 인간은 바람도, 죽음도, 전쟁도, 악의 결과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자기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리자, 자신이 주님 앞에서 선하고, 의롭게 살았음을 상기시키며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를 들으시고 이적을 보이시며 그의 수명을 15년 연장하셨습니다. 그러나 병고침을 받은 히스기야는 교만하여서 이적을 보고 찾아온 바벨론 사신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어리석게도 자신의 영광(무기고, 내탕고 등)을 드러냅니다. 사신이 떠나자 이사야가 와서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결정을 선포하였고, 100년 후 성취됩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언 22:4).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 므깃도(5)
열왕기하 9:27절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므깃도 성 안에서 고대 마구간이 발굴되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말은 왕과 군대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입니다. 솔로몬은 병거 1,400대와 마병 12,000 명을 두었고(왕상 10:26), 그의 병거성 중 하나가 므깃도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므깃도에서는 솔로몬 시대에 건축되었다가 아합 시대에 재건된 마구간 건물이 두 구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잘 다듬은 돌로 지어진 행정시설로, 내부는 돌기둥으로 세 구역으로 나뉘고, 가운데는 흙바닥, 양쪽은 자갈로 포장되었습니다. 약 450마리의 말을 수용한 것 같습니다. 앗수르의 기록에 따르면, 아합은 주전 853년 칼카르 전투에 병거 2천 대를 보냈습니다. 또한 므깃도에서는 비트 힐라니라 불리는 시리아식 왕궁 건물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두 개의 길고 좁은 방으로 구성된 2층 구조의 건물로, 현관 역할을 하는 기둥방과 왕이 행정을 보던 보좌의 방이 특징입니다. 이 건물은 솔로몬 궁전(열상7장)과 매우 유사하며, 종려나무 문양의 기둥머리 등 성경적 건축 요소가 실제 고고학 자료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모세율법은 왕은 ‘말을 많이 두지 말라’(신17:16)고 명령합니다만, 강해지려는 왕의 본능과 충돌하는 규정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이 규정을 무시하고 많은 말과 마병을 두었고, 아합도 같았습니다. 오늘날 말에 해당하는 것은 재력과 권력, 인간관계입니다. 누구나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때 “나는 무엇을, 누구를 의지할까?”를 생각하면, 우리의 답은 하나입니다. “주 예수님!”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편20:7)

믿음과 느헤미야(3)
느헤미야 1:5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은 삶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19세기 말 조선 사람들은 땅을 배처럼 물 위에 떠 있는 존재로 여겨, 깊이 파면 나라가 가라앉는다고 믿어서 우물조차 깊이 파지 못하였습니다. 선교사 제임스 홀이 평양에 가서 보니 물이 크게 오염되어 있었고, 원인은 우물을 얕게 판 결과였습니다. 홀 선교사는 그들을 설득해 우물을 깊이 팠고 깨끗한 물을 얻어 전염병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잘못된 세계관은 현실을 가두지만, 진리의 눈은 생명을 살립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느 1:5)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신다는 히브리인의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바벨론 포로 귀환도 세상적으로는 고레스 왕의 정책이었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셨다고 말합니다. 느헤미야 역시 그 섭리를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은 더욱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유의 주님으로 세우시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십니다. 이미 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대권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은 단순한 소식이 아니라, “예수께서 주님이시니 그분께 순종하라”는 왕의 칙령(=케리그마)입니다. 참된 믿음의 세계관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그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보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매일묵상(2025/6/15-19)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서문교회(1)
느헤미야 2:17절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유다 총독 느헤미야는 유다 방백과 귀족들을 모은 뒤, 예루살렘 성 중건의 취지와 하나님의 선하신 도움을 간증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다의 각계각층이 연합하여, 많은 음모와 반대를 물리치고 52일 만에 성벽은 완성됩니다(느 3장-6장). ‘전주 이씨’ 양반 가문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1905년을 기점으로 전주 교회는 크게 성장합니다. 주일 예배는 3백 명이 넘어 예배당은 비좁았고, ‘양반 교인’의 참여로 용기를 얻은 선교사들은 새 예배당을 개울 건너 시내 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서문 밖에 미나리 밭 780평을 마련했습니다. 지금 서문교회가 위치한 곳입니다. ‘전주 양반’들이 교회에 나오면서 재정 형편도 좋아졌습니다. 예배당 건물은 정부 당국과 협의하여 은송리에 있던 테이트 사택을 옮겨 세웠습니다. 테이트 사택은 조선 기와 지붕을 올린 붉은 벽돌 건물(57평)이었는데 선교부가 화산동으로 옮긴 후 5년 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를 ‘서문밖교회’라 했고 해방 후에 ‘서문교회’가 되었습니다. 전주 이씨 양반 가문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성장하고, 예배당이 확장되고, 재정이 안정되고, 지역 복음화가 가속화된 과정은 하나님께서 한 공동체의 마음을 움직여 교회를 세우시는 방식입니다. 돌이켜보면 ‘양반의 참여’는 단순한 교인의 증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는 섭리의 시작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

전도서 8: 5절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전도자는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고 말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와 판단”을 분별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단순히 권력 앞에서 순종하라는 말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는 법을 말합니다. 앞선 2–4절에서 전도자는 왕의 권세가 절대적으로 보이는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왕의 말은 법이 되고, 그의 결정 앞에서 감히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모하게 맞서거나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면 화를 부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권력자 앞에서 비굴한 처신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지혜자는 상황을 읽고 적절한 때를 분별합니다. 때로는 침묵이 지혜이고, 때로는 물러남이 용기입니다. 춘추시대 말기, 범려와 문종은 구천을 도와 월나라를 재건하고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이때 범려는 구천의 성품을 꿰뚫어 보고는,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진다.”(토사구팽)는 말로 문종에게 함께 월나라를 떠나자고 권고한 뒤 떠났지만, 문종은 듣지 않고 남아 있다 구천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고 현실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지혜자는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셨기에(롬13:1) 때가 오기 전에는 지혜자 임의로 처리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주어졌으나 손대지 않고 불레셋으로 도피하여 사울을 심판하실 때를 기다렸습니다. 현실은 강해 보이나,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분별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언16:3).

전도서 8:6절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전도자는 5절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때와 판단”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 뒤, 6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질서와 때를 정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후단은 역설적 진실을 덧붙입니다.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하다” 즉, 때와 판단은 분명히 존재하나, 하나님만 그런 것들을 아시므로 인간은 큰 고통을 겪게 된다고 솔직히 토로합니다. ‘모든 일에 기한과 때’가 있지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3:11)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고난은 단순히 삶의 어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인간의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혜자조차 능히 알아낼 수 없습니다(8:17). 전도자는 9장 11, 12절에서 이 주제를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인간의 지혜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지혜는 모든 것을 아는 능력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때로 “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언제 이 상황이 끝날까”를 묻지만, 하나님은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명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길을 걷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공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죠! 요셉과 다윗은 때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성공하였지만, 사울은 때도 모르고 하나님도 의지하지 않아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길보아 산에서 세 아들과 함께 전사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3:6).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 므깃도(4)
여호수아 12:21절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본절은 가나안 정복 당시 이미 므깃도 왕국의 존재를 알려줍니다. 이 므깃도에서 초기 청동기 시대(BC 3000~2000년)에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 제단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제단은 지름이 약 10m에 달하며 돌을 층층이 쌓아 단상을 이루고,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과 낮은 난간이 설치되었습니다. 제단 주변에서는 불에 탄 어린 수양, 비둘기, 송아지의 뼈가 발견되어 당시 희생제사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주전 14세기 아마르나 문서에는 므깃도가 마케티, 마키투 등으로 불리는 중요한 요새 도시로서, 견고한 성벽과 양쪽에 방이 있는 시리아식 성문을 갖췄습니다. 이 성문은 후대 솔로몬 시대에도 복구되어 재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주전 1478년 이집트 투트모세 3세가 가나안 연맹군과 므깃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룩소르 카르낙 신전의 부조에 남아 있습니다. 므깃도는 철병거를 갖고 있어 므낫세 지파는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삿 1:27). 이 시기의 유물로는 상아판에 새겨진 왕과 왕비, 시녀, 포로, 내시의 모습이 있으며, 이집트·앗수르 문화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또한 2010년 발굴에서는 토기 주전자에 담긴 홍옥석 목걸이, 반지, 귀걸이 등이 발견되어 주전 1400~1000년경 므깃도의 귀족층의 부유한 삶을 보여줍니다. 므깃도 도시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받았습니다(BC722). 무엇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들은 영생의 소망을 갖고 주님의 뜻을 즐겁게 실천하면서 땀을 흘리는 수고 중에 희락을 누리기 때문입니다(전3:13).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눅12:30).

믿음과 느헤미야(2)
느헤미야 1:1절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신명기 28장은 이스라엘이 언약에 순종하면 축복, 불순종하면 형벌이 따른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들은 죄로 인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BC 722), 남유다는 바벨론(BC 586)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후 바벨론이 BC 538년에 무너지자 약 5만 명이 귀환했지만, 대부분은 이방 땅에 남아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이루었고, 느헤미야도 그 후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1세 (재위 BC465-424)의 신임을 받는 술관원이었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영향력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제국의 충성스러운 관료였지만 동시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스라엘인이었습니다. 당시 성전은 재건되었으나 성벽은 무너진 채 방치되어 백성들이 외적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결심합니다. 마침 페르시아는 이집트 전쟁과 시리아 반란으로 서방 지역이 불안정했기에, 신뢰할 만한 인물을 유다 총독으로 보내는 것이 제국에도 유익한 상황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일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은 넉 달 후 왕의 허락을 통해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으며, 제국의 상황까지 사용하여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셨다는 성경의 증언은 중요한 균형을 가르칩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타인의 유익이나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현실만 바라보다 하나님의 뜻을 잃어서도 안 됩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용기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16:9).

매일묵상(2026/6/8-12)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이거두리
마태복음 9:13절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본절은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마태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보고 비난하자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이 예수께 잡힌 거두리 이보한은 무엇보다 전도인이었습니다. 그의 전도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방향을 돌리라고 촉구하는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그가 지긋지긋한 양반의 권위와 체통에서 벗어나 우월감과 교만, 거짓과 위선, 음모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자신을 자유케 한 복음의 평화와 기쁨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이웃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전도인만은 아니며, 조선을 사랑한 애국자였습니다. 전주 3‧13 만세 시위 때 걸인들을 이끌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그들의 긍지와 애국심을 일깨웠고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부자들과 기생들에게서 모은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자주 보냈습니다. 한 번에 2만 원을 전달하였는데, 당시 쌀 한 말이 70~80전, 하루 품삯이 1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그의 노고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양반 신분을 내려놓고 전도를 본업으로 삼으며 걸인과 빈민의 친구가 되었고, 비밀리에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살아온 그는 1931년 완산동에서 별세하였습니다. 그의 장례에는 전라도의 걸인들이 모여 ‘걸인장’을 치렀는데, 상업은행을 창설한 전주 부자 박영철의 부친상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모였다고 전해집니다. 시간이 흘러도 거두리의 이름은 남아 있으나, 박영철과 그가 세운 상업은행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전도서 8:3절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하게 하지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본절은 왕 앞에서의 처신을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권력의 본질을 꿰뚫고 그에 따라 바른 처신을 합니다. 왕이란 원하는 바를 행하는 권력자입니다. 만약 왕의 결정이 내려졌다면, 그 결정은 집행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왕의 분노를 자극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본절이 경고하는 “악한 일”은 반역이나 음모가 아니라, 왕 앞에서 무리하게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는 “나쁜 제안”에 가깝습니다. 이미 거절된 의견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지혜는 현실을 정확히 읽고, 때를 분별하며,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게 합니다. 우리 역시 직장, 가정, 혹은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생각을 밀어붙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고집과 논쟁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물러나는 것이 더 큰 지혜이며, 관계를 지키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전도자는 “왕 앞에서 서둘러 떠나지 말라”고 권면하나, 잠언은 왕이 분노할 때는 피하라고 조언합니다(잠언16:14). 상황에 따라 다른 처신이 필요합니다. 이는 비굴함이 아니라, 권위를 가진 자를 존중하며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겸손입니다. 에스더가 그 모범입니다. 그녀는 즉시 왕 앞에 나아가지 않고 금식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왕의 마음이 열릴 때를 분별했고, 지혜로운 접근으로 민족을 구했습니다. 농부가 파종과 추수의 때를 분별하며 기다리듯이, 지혜자는 적절한 상황의 도래를 기다립니다. 그는 말하고 침묵할 때,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알고 있어 마침내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언25:11).

전도서 8:4절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그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

2-3절에서 전도자는 왕의 명령에 순복하고, 왕이 분노할 때는 조심히 처신할 것을 권면한 뒤, 본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왕의 말은 절대적이며, 그의 결정 앞에서 감히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전도자 시대의 왕권은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첫째, 왕에게 책임을 물을 자가 없습니다. 이런 왕에게 맞서거나 고집을 부리는 것은 화를 부르는 “악한 일”이므로, 권력의 현실을 분별해야 합니다. 둘째, 욥은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욥 9:12)고 말합니다. 전도자는 이 표현을 인간 왕에게 적용하여, 권력 앞에서 지혜롭게 처신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왕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존재임을 가르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왕궁 지붕에서 교만한 말을 하던 중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7년 동안 짐승처럼 살았던 사건이 그 예입니다(단 4장). 또한 잠언은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신다”(잠 21:1)고 선언합니다. 전도서는 “현실의 권력”을 말하고, 잠언은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나, 지혜자는 이 둘을 모두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무시하지 않되, 권력의 최종 심판자가 하나님이심을 또한 잊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권력과 권위 앞에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무모하게 맞서는 것도, 비굴하게 굴복하는 것도 지혜가 아닙니다. 때를 알고, 말을 삼가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처신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언19:21).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 므깃도(3)
열왕기상 9:15절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므깃도는 지중해 연안에서 동쪽 내륙으로 이어지는 와디 아라 길과 남쪽 이집트에서 북쪽 시리아·메소포타미아로 향하는 ‘바닷길’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다윗 왕국을 계승한 후 예루살렘과 함께 하솔, 게셀, 그리고 므깃도를 요새화하였으며, 오늘 본문은 그가 이곳에 성을 건축했다고 기록합니다. 고고학자들은 솔로몬 시대의 병거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후대 건축물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 명확한 윤곽을 밝히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합 시대의 므깃도는 확실히 요새화되었고, 그의 건축물 상당 부분이 솔로몬 시대의 구조와 중첩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행정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아합 시대의 므깃도에 들어서면 거대한 돌을 다듬어 쌓은 성문을 지나게 되는데, 이 성문은 양쪽에 두 개씩의 방이 있는 ‘4방 성문’ 구조로 병거가 통과할 만큼 넓게 설계되었습니다. 또한 이중문과 청동 장식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함락된 이후에는 성문이 양쪽에 방 하나씩만 있는 ‘2방 성문’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발굴은 므깃도가 고대 전쟁과 왕국 행정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이처럼 므깃도는 솔로몬과 아합이 요새화한 강력한 군사 도시였고, 거대한 성문과 병거성으로 고대 근동에서 손꼽히는 요새였지만, 앗수르에 무너졌습니다(BC722).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시요 피난처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편118:6).

믿음과 느헤미야(1)
느헤미야 1:11절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수년 전 갑자기 한 지인의 소천하셨다는 부고를 받고 세브란스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80 후반의 권사님으로 혈압이 0으로 떨어졌으나 목사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자 다시 소생하여 기도를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이 체험은 유족들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었지만, 그분들의 삶에 큰 변화는 주지 못했습니다. 사실 죽었다고 우리가 판단할 때도, 귀는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망자 앞에서는 말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다 듣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장례식 후에는 망자에 대한 평가만이 남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그 권사님 사건이 남기는 큰 교훈은, 우리 각자도 결국 죽게 되며, 그 후에는 영원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히9:27). 따라서, 주님의 속죄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우리의 현실 또한 쉽지 않습니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갈 것입니까? 먼저, 부활하신 주님이 만유를 통치하시며, 우리의 보호자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이는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신 실제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전제된다면, 이 세상은 살만 합니다. 어려워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을 돌보고자 한 술관원 느헤미야 역시 그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큰 응답을 받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매일묵상(2026/6/1-5)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이거두리(2)
마가복음 2:3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네 사람은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셨고, 그는 곧 일어나 모든 사람 앞에서 걸어 나갔습니다. 중풍병은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에게 선포된 죽음의 그림자이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영적 상태—곧 죄성—를 상징합니다. 육체의 병은 의사가 고치지만, 영혼의 병인 죄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필요합니다. 거두리 이보한의 전도 일화입니다. 한 번은 집안의 진사 벼슬을 한 양반을 끈질기게 찾아가 전도하여 마침내 “다음 주일에 나가보세”라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진사는 주일이 가까워지자 멀리 떨어진 절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 거두리는 이미 절간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전날 밤 눈이 내린 것을 핑계로, 진사는 “양반 체면에 어찌 눈밭을 헤치고 가겠나, 다음으로 미루세”라고 하자, 거두리는 “걱정 마시고 따라만 오십시오”라며 앞장섰습니다. 진사가 따라 나서보니, 절간 마당에서 예배당까지 이어지는 30리 산길의 눈이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주일 예배에 참석했고, 그날 목사의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후에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전도는 사랑의 한 표현입니다. 사랑은 장애물을 제거해 주고, 대신 길을 열어주며, 상대가 주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도라는 사랑은 믿음의 눈이 열릴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사랑은)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

전도서 8:1절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사람의 내면이 변하면 얼굴도 변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 속에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마음의 무거움이 얼굴에 드러나자 아닥사스다 왕은 즉시 그의 근심을 알아차렸고, 결국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유다 총독으로 파송됩니다(느 2:1–9). 내면의 상태가 얼굴에 드러난 대표적 장면입니다. 그러나 본절은 지혜가 사람의 얼굴을 밝히고, 굳고 사나운 표정까지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광채가 나게 한다’는 얼굴에 생기가 돌고 밝아진다는 뜻이며, ‘사나움’은 완고하고 굳어진 표정을 의미합니다. 지혜는 사람의 태도와 인격을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습니다. 사실, 어리석은 사람은 쉽게 분노하고 얼굴이 굳어 있고 남을 정죄하지먄, 지혜로운 사람은 표정이 밝고 태도가 부드럽고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따라서, 어리석은 자가 배워 지혜롭게 되면 당연히 얼굴조차 변하게 마련입니다. 지혜 중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굴과 태도를 변화시킨 사례가 거듭 등장합니다.  한나는 제사장 엘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삼상 1:18). 또한 사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살기등등한 표정과 태도가 사라지고,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유는,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사람의 마음이 바뀌고 결국 얼굴과 삶 전체가 변화합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전도서 8:2절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여러방면에서 바른 판단이 필요하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세워진 왕에 대한 복종의 문제는 중요합니다(2-4절). 인간의 본성이 순종을 싫어하여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처럼, 왕에게 순종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왜 통치자에게 순종해야 할까요? 솔로몬은 그 이유를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것”에서 찾습니다. 그 맹세는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한 언약입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은 후 이스라엘 장로들이 헤브론에 모여 하나님 앞에서 다윗과 언약을 맺고 기름부어 왕으로 세운 사건이 그 예입니다(삼하 5:3). 물론 왕의 권한이 무제한은 아닙니다. 왕에 대한 순종은 왕이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점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모든 권세로 확장합니다(롬13:1). 정당한 권세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순종이며, 불순종은 권세자의 칼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양심 때문에 순종하라고 말하는데, 권세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정의실현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현실의 통치자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현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세우고, 국민이 주기적으로 정치적 심판을 행함으로 권력의 남용이 없도록 통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성숙한 체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선행이나, 국가의 정의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도 결국 ‘사랑’이라는 율법의 완성으로 귀결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 므깃도
역대하 35:22절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주전 609년 유다 왕 요시야는 므깃도에서 전사하는데, 애굽과 앗수르가 연합하여 바벨론과 대립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무리하게 군사적 개입을 시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역대기자는 느고의 말을 ‘하나님의 입에서 나왔다’고 평가합니다. 요시야는 정치적 판단을 잘못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고, 유다의 멸망을 앞당겼다는 사실은 바른 판단의 중요성을 일깨우지만, 바벨론 침공과 유다의 멸망을 보지 못한 것은 축복입니다. 므깃도 요새는 1925년 록펠러의 후원을 받은 시카고대학교 근동연구소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소는 아합 시대의 므깃도를 발굴하는 등 고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고고학 기술의 미흡으로 여러 문제들이 드러났습니다. 그에 따라, 현대고고학은 유적지 전체를 발굴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70% 이상을 남겨둡니다. 이후 이스라엘 장군이자 고고학자인 이갈 야딘이 히브리대학교 프로젝트로 1960~1971년 사이 네 차례 발굴을 진행했지만, 그 결과는 당시 출판되지 못하고 2005년에야 정리되어 보고서로 나왔습니다. 시카고대와 히브리대가 주로 철기 시대(이스라엘 왕국 시대)에 집중했다면, 1994년 이후 텔아비브대학교의 발굴은 청동기 시대, 즉 성서 이전 시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최근 발굴은 다양한 과학자들의 참여로 더 정확한 연대기와 시대상이 제시되어 그 학문적 성과가 큽니다. 이 세상은 지혜로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사랑 가운데서 행하되, 분별력과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1:9).

창세기 45:5절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본절은 유다의 효성과 형제사랑을 듣고 감동한 요셉이 자신들 드러내고 형제들의 죄를 용서하는장면입니다. 박혜란 목사는 『목사의 딸』에서 아버지 박윤선 박사의 신학과 인격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신학적 평가보다 더 깊은 상처는 부친의 편애 문제로 보입니다. 그녀는 전처 소생으로서 후처와 그 자녀들에 대한 부친의 편애는 그녀의 마음에 분노를 남겼습니다. 좋은 학벌, 3년의 신학공부, 난지도 목회, 기도, 성경 읽기로도 그 상처는 치유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녀는 한국교회의 우상화를 막으려고 책을 썼다고 하나, 자녀로서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야 할 부분까지 폭로한 점은 아쉬웠습니다. 또한 후처 소생들과의 대화 시도 없이 일방적 서술로 끝난 점도 한계로 보입니다. 그 반면, 유다는 편애 속에서 상처받고 범죄의 길로 갔지만, 세월 속에서 징계와 아버지의 슬픔을 보며 변화되었고, 결국 부친과 동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결단합니다. 감동한 요셉은 자신을 드러내며, 그들의 범죄를 용서합니다. 회개와 그에 따라 주어지는 용서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행동의 변화이며, 그 시작은 사랑, 특히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세상에 보내사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결핍은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무너진 자리에서도 사랑은 치유와 회복의 힘을 갖고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형제 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긴 야곱의 아들 요셉과 유다는 그 빛나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