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6/6/1-5)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이거두리(2)
마가복음 2:3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네 사람은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셨고, 그는 곧 일어나 모든 사람 앞에서 걸어 나갔습니다. 중풍병은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에게 선포된 죽음의 그림자이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영적 상태—곧 죄성—를 상징합니다. 육체의 병은 의사가 고치지만, 영혼의 병인 죄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필요합니다. 거두리 이보한의 전도 일화입니다. 한 번은 집안의 진사 벼슬을 한 양반을 끈질기게 찾아가 전도하여 마침내 “다음 주일에 나가보세”라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진사는 주일이 가까워지자 멀리 떨어진 절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 거두리는 이미 절간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전날 밤 눈이 내린 것을 핑계로, 진사는 “양반 체면에 어찌 눈밭을 헤치고 가겠나, 다음으로 미루세”라고 하자, 거두리는 “걱정 마시고 따라만 오십시오”라며 앞장섰습니다. 진사가 따라 나서보니, 절간 마당에서 예배당까지 이어지는 30리 산길의 눈이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주일 예배에 참석했고, 그날 목사의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후에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전도는 사랑의 한 표현입니다. 사랑은 장애물을 제거해 주고, 대신 길을 열어주며, 상대가 주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도라는 사랑은 믿음의 눈이 열릴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사랑은)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

전도서 8:1절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사람의 내면이 변하면 얼굴도 변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 속에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마음의 무거움이 얼굴에 드러나자 아닥사스다 왕은 즉시 그의 근심을 알아차렸고, 결국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유다 총독으로 파송됩니다(느 2:1–9). 내면의 상태가 얼굴에 드러난 대표적 장면입니다. 그러나 본절은 지혜가 사람의 얼굴을 밝히고, 굳고 사나운 표정까지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광채가 나게 한다’는 얼굴에 생기가 돌고 밝아진다는 뜻이며, ‘사나움’은 완고하고 굳어진 표정을 의미합니다. 지혜는 사람의 태도와 인격을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습니다. 사실, 어리석은 사람은 쉽게 분노하고 얼굴이 굳어 있고 남을 정죄하지먄, 지혜로운 사람은 표정이 밝고 태도가 부드럽고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따라서, 어리석은 자가 배워 지혜롭게 되면 당연히 얼굴조차 변하게 마련입니다. 지혜 중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굴과 태도를 변화시킨 사례가 거듭 등장합니다.  한나는 제사장 엘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삼상 1:18). 또한 사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살기등등한 표정과 태도가 사라지고,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유는,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사람의 마음이 바뀌고 결국 얼굴과 삶 전체가 변화합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전도서 8:2절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여러방면에서 바른 판단이 필요하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세워진 왕에 대한 복종의 문제는 중요합니다(2-4절). 인간의 본성이 순종을 싫어하여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처럼, 왕에게 순종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왜 통치자에게 순종해야 할까요? 솔로몬은 그 이유를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것”에서 찾습니다. 그 맹세는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한 언약입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은 후 이스라엘 장로들이 헤브론에 모여 하나님 앞에서 다윗과 언약을 맺고 기름부어 왕으로 세운 사건이 그 예입니다(삼하 5:3). 물론 왕의 권한이 무제한은 아닙니다. 왕에 대한 순종은 왕이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점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모든 권세로 확장합니다(롬13:1). 정당한 권세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순종이며, 불순종은 권세자의 칼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양심 때문에 순종하라고 말하는데, 권세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정의실현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현실의 통치자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현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세우고, 국민이 주기적으로 정치적 심판을 행함으로 권력의 남용이 없도록 통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성숙한 체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선행이나, 국가의 정의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도 결국 ‘사랑’이라는 율법의 완성으로 귀결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 므깃도
역대하 35:22절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주전 609년 유다 왕 요시야는 므깃도에서 전사하는데, 애굽과 앗수르가 연합하여 바벨론과 대립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무리하게 군사적 개입을 시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역대기자는 느고의 말을 ‘하나님의 입에서 나왔다’고 평가합니다. 요시야는 정치적 판단을 잘못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고, 유다의 멸망을 앞당겼다는 사실은 바른 판단의 중요성을 일깨우지만, 바벨론 침공과 유다의 멸망을 보지 못한 것은 축복입니다. 므깃도 요새는 1925년 록펠러의 후원을 받은 시카고대학교 근동연구소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소는 아합 시대의 므깃도를 발굴하는 등 고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고고학 기술의 미흡으로 여러 문제들이 드러났습니다. 그에 따라, 현대고고학은 유적지 전체를 발굴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70% 이상을 남겨둡니다. 이후 이스라엘 장군이자 고고학자인 이갈 야딘이 히브리대학교 프로젝트로 1960~1971년 사이 네 차례 발굴을 진행했지만, 그 결과는 당시 출판되지 못하고 2005년에야 정리되어 보고서로 나왔습니다. 시카고대와 히브리대가 주로 철기 시대(이스라엘 왕국 시대)에 집중했다면, 1994년 이후 텔아비브대학교의 발굴은 청동기 시대, 즉 성서 이전 시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최근 발굴은 다양한 과학자들의 참여로 더 정확한 연대기와 시대상이 제시되어 그 학문적 성과가 큽니다. 이 세상은 지혜로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사랑 가운데서 행하되, 분별력과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1:9).

창세기 45:5절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본절은 유다의 효성과 형제사랑을 듣고 감동한 요셉이 자신들 드러내고 형제들의 죄를 용서하는장면입니다. 박혜란 목사는 『목사의 딸』에서 아버지 박윤선 박사의 신학과 인격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신학적 평가보다 더 깊은 상처는 부친의 편애 문제로 보입니다. 그녀는 전처 소생으로서 후처와 그 자녀들에 대한 부친의 편애는 그녀의 마음에 분노를 남겼습니다. 좋은 학벌, 3년의 신학공부, 난지도 목회, 기도, 성경 읽기로도 그 상처는 치유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녀는 한국교회의 우상화를 막으려고 책을 썼다고 하나, 자녀로서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야 할 부분까지 폭로한 점은 아쉬웠습니다. 또한 후처 소생들과의 대화 시도 없이 일방적 서술로 끝난 점도 한계로 보입니다. 그 반면, 유다는 편애 속에서 상처받고 범죄의 길로 갔지만, 세월 속에서 징계와 아버지의 슬픔을 보며 변화되었고, 결국 부친과 동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결단합니다. 감동한 요셉은 자신을 드러내며, 그들의 범죄를 용서합니다. 회개와 그에 따라 주어지는 용서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행동의 변화이며, 그 시작은 사랑, 특히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세상에 보내사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결핍은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무너진 자리에서도 사랑은 치유와 회복의 힘을 갖고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형제 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긴 야곱의 아들 요셉과 유다는 그 빛나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