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6/4/13-17)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전라북도편
여호수아 4:7절
“주님의 언약궤 앞에서 요단 강 물이 끊기었다는 것과, 언약궤가 요단 강을 지날 때에 요단 강 물이 끊기었으므로 그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토록 기념물이 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기전 여학교는 선교사의 기념비는 있지만, 항일투쟁과 관련된 ‘기전 결사대’ 기념비는 없습니다. 1915년 기전 학생 임영신, 오자현, 송귀내 등이 숭의 출신 박현숙 선생의 지도로 ‘구국결사대’를 조직해서 매일 구국 기도회를 갖고 ‘천황 사진에 먹칠하기’와 ‘쓰개치마 벗기 운동’을 벌였고, 3·1운동 때 임영신, 김공순, 김신희, 최애경 등 ‘14인 결사대’가 만세 시위를 주도 하였습니다. 광주학생사건 때도 문유덕, 전순덕, 신애덕, ‘삼총사’와 오원애 김순길, 이준례, 진태순 등 ‘결사대’가 만세시위를 이끌었습니다. 따라서, 기전 여학교는 이를 기념하는 무엇인가를 세워야 했습니다. 예전 경기고등학교의 교정에는 4.19 혁명 당시 희생당한 학생들의 기념 부조가 있어 항상 그때의 사건을 회상케 하였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불의에 항거하고 잘못된 제도의 개혁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희생이 따르나, 치루어진 그 희생의 의미는 꼭 남겨야 합니다. 신앙유산도 같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가르침과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희생의 결과가 신앙유산이며, 비로소 후세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신앙유산 없는 신앙은 겨우 자기만 구원받는 정도의 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의 한계이죠!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1:29).  

전도서 7:16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본절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왜 그렇게까지 완전해지려 하는가?” 이는 우리 삶의 목적을 터치하는 말씀입니다.극단은 인간을 무너뜨리므로, 그 교훈의 핵심은 균형과 겸손입니다. 지나치게 의인(특히 종교적 의인)이 되려는 예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의식적 율법을 지키려는 열심이 지나쳐 사람을 정죄하는 자리에 섰고, 그들의 의로움의 추구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무거운 갑옷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려는 사람의 예는 솔로몬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누렸지만, 그 지혜를 통제하지 못해 수많은 아내와 우상을 받아들이며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났습니다. 의로움도 지혜도 모두 좋은 것이나, 극단에 이르면 인간은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상은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입니다. 세상은 이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우리의 능력을 넘는 것은 더 많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절대적입니다. 겸손히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인간의 모습, 그것이 원래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이 목적을 모르고 지나친 ‘의’- 특히 종교적 ‘의’ – 를 추구한다면, ‘의’가 아니라 오히려 판단만 만들어 비판의 죄를 짓게 하며, 지혜의 지나친 추구는 자신을 과신하는 함정에 빠집니다. 전자는 하나님보다 율법을 더 사랑하고, 후자는 자신을 우상의 자리에 놓습니다. 마땅히 피해야 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6:8).

전도서 7:17절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7절은 16절과 구조적으로 평행을 이루며, 네 가지 성품—의로움, 지혜, 악함, 어리석음—을 두 축으로 대비시킵니다. 원문에는 세 가지(의로움, 지혜, 악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라는 수식을 붙이나 우매에 대해서는 없는데, 이는 전도자에게 어리석음은 절대 용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5절은 “의인이 망하고 악인이 장수하는” 모순된 현실의 증언입니다. 보응의 원리가 항상 작동하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16절은 “지나치게 의로워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말라”고 경고했고, 이어 17절은 “지나치게 악하여 일찍 죽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모두 극단이 인간을 파멸로 이끔을 강조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도자가 “지나친 악함”을 경고하면서도, 마치 “적당한 악함”의 여지를 남겨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9:2)는 말씀과 충돌하는 듯 보이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절은 절대적 의가 아니라, 인생의 현실을 관찰하며 그 한계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남는 법”을 말합니다. 악인이 항상 장수하거나 형통하는 것은 아닐 뿐더러, 그 악함도 처세의 수준을 넘어 지나치면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는 지름길입니다. 그 파멸의 원인이 하나님의 심판인지, 악함의 결과인지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어 일찍 죽은 사람의 대표는 나발입니다. 나발은 부자였지만, 교만하고 분별력이 없어 다윗의 손에 죽을 뻔하게 된 사실을 뒤늦게 알자 충격을 받고 몸이 돌처럼 굳어져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함과 어리석음의 길을 떠나, 겸손과 지혜의 길을 걷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언1:8).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이스르엘 골짜기
열왕기상 21:1절
“그 일이 있은 후였습니다. 나봇이라는 사람이 이스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밭은 아합의 궁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새번역)

이스르엘 골짜기는 아합이 탐냈던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곳입니다. 아합은 포도원을 얻지 못하자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도 거부했고, 이를 본 이세벨은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돌로 쳐 죽여 빼앗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어 이세벨의 시신을 이스르엘의 개들이 먹게 될 것이라 선언하셨고, 15년이 흘러 예후의 반란으로 성취됩니다(열하9:30-37). 이 비극의 무대인 이스르엘 골짜기는, 번역이 골짜기이지 넓은 평야요 고대부터 이스라엘의 대표적 곡창지대입니다. 또한, “이스르엘”이란 이름은 “신이 밭을 갈다”는 뜻인데, 이름조차 이 땅의 비옥함을 반영합니다. 지질학적으로 약 200만 년 전 지중해와 요단 계곡 사이에서 형성된 충적 평야이며, 북쪽의 갈릴리, 남쪽의 사마리아 산지, 동쪽의 요단 계곡, 서쪽의 갈멜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므깃도·벧산·이스르엘 등 주요 도시가 여기에 위치해 있으며, 초기 청동기(주전 4500–3300년) 유물이 발견되어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합니다. 특히 므깃도에서는 솔로몬 시대의 성문과 병거 도시 유적이 발굴되어 이 지역의 전략적·경제적 중요성을 입증합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 보듯이, 성경은 이 풍요로운 땅에서 인간의 탐욕이 일으킨 범죄와 전쟁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땅이라도, 그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순간 저주의 장소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 가운데서 주신 것에 만족하는 법인 ‘자족’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

세상 창조의 목적과 사랑
갈라디아서 5:5절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전투기의 1세대는 제트기, 2세대는 초음속 제트기(미그21, F-5), 3세대는 레이다와 공대공 미사일(팬텀, 미그23, 25), 4세대는 첨단 항전장비(-F16, 15), 5세대는 스텔스(F-22, 35)로 특징지울 수 있습니다. 전투기 세대 구분 이유는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3세대는 4세대를 당할 수 없습니다 1982년 베카계곡의 전투에서 F-15,16의 4세대와 미그23,25 3세대가 공중전을 하여 85:1로 승패가 4세대 승리로 판가름 났습니다. 그러나, 4세대도 5세대에는 아예 전투자체가 안됩니다. F-22와 F-15의 모의 공중전에서 144:0으로 F-15가 패배하였습니다. 스텔스인 5세대를 레이다로 탐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전투기를 갈라놓듯이,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이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갈라놓습니다. 그 믿음은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서 아는 지성을 갖추고, 그것의 심장은 사랑이며, 그것의 에너지는 소망의 약속입니다. 세상 창조의 목적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선의 열매를 맺는데 있습니다. 좋은 예가 가정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장 연약한 자가 가장 귀한 돌봄을 받는데, 사랑이외에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창조된 세상은 바로 이 목적을 이루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다른 목적- 명예, 재물, 욕망, 출세 – 이 우선시 되면 이구동성으로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규정합니다. 사랑의 첫 번째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를 도외시 한 삶이 우상숭배이며, 이런 의미에서 무신론자들은 모두 우상숭배자들입니다. 띠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합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16:14)

매일묵상(2026/4/6-10)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전라북도편
요한일서 3:18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기전여학교에 오르는 언덕 길 옆에 1956년에 세운 <선교사 인톤 목사 · 인사례 여사 공적 기념비>가 있습니다. 윌리엄 린튼(인톤)은 1912년 내한해서 군산 영명학교와 전주 신흥학교 교장을 지냈고, 해방 후에는 신흥과 기전 재건 사업을 주도했으며 대전 한남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을 지낸 분입니다. 린튼 부인(인사례)은 광주 개척 선교사 벨의 딸로 태어나 1922년 린튼과 결혼해서 해방 후 기전여학교 교장을 역임했습니다. 송기철 장로의 회고입니다. “인톤 목사님은 아주 엄격하고 원리 원칙을 잘 따졌고 일본 사람을 아주 싫어 했어요. 일본 관리가 호구 조사를 나왔는대, ‘이 집 식구가 몇이오?’ 하니깐 손가락을 꼽아 보더니, ‘한 여섯 될라나?’ 하셨대요. 당시 자녀들은 미국에 유학 중이라 내외분만 살고 계셨는디 사정을 알고 있던 일본 사람이 ‘당신네 두 식구 뿐이잖소?’ 하니깐, ‘사람은 둘이지만 우리 집에 개가 한 마리, 쥐가 두 마리,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그들도 밥을 같이 먹고 있으니 우리 식구 아니요?’ 했다고 해요. 반면에 인사례 부인은 자상하고 정이 많았어요. 밤 새워 색실로 뜨개질을 해서 수건 같은 것을 만들어 시골 가난한 부인들에게 나누어주며 격려했지요.” 인톤 부부는 40년 간 전라지역 선교의 핵심 인물로서, 섬김이란 말이 아니라 행동이며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삶입니다. 그의 셋째 아들 휴 린튼, 손자 스티브 린튼과 손자 존 린튼 모두 한국 선교를 위해 헌신한 분들입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전도서 7: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본문은 인생의 밝음과 어두움, 좋은 날과 나쁜 날 모두를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인간은 미래를 통제 못하고 다만 겸손히 수용하라는 교훈입니다(롱맨).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인생의 두 날을 섞어 놓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의지케 하시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지혜자도 내일을 모르고, 경건한 자도 고난을 피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고생스러울 때는, “왜 이런 날이 왔는가”를 묻지 말고, “이 날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형제들의 질투를 받아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힙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자, 총리가 된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가정은 물론 만 백성의 생명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입니다. 형제들이 두려워 하여 요셉에게 엎드려 용서를 구할 때에도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50:20)라고 말하며 간곡히 위로하였습니다. 요셉은 좋고 나쁜 모든 날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알았으니, 미래가 보이지 않은 날에도 하나님은 모두의 선을 위해 길을 만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도 이렇습니다(롬8:28). 따라서, 기쁨의 날은 감사로 채우고, 고난의 날은 성찰과 신뢰로 채우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계십니다. 오늘이 어떤 날이든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드리기 바랍니다.“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잠언16:9).

전도서 7:15절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이라는 표현은 지혜롭고 부유했던 전도자의 삶조차 결국 덧없음을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사랑 없는 삶이 도달하는 종착점이며,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세상이 겪는 영적 저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천하는 사랑의 수고는 전혀 다릅니다. 그 삶은 보람과 소망이 넘칩니다. 이는 욥이나 요셉처럼 삶을 회고할 때 선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깨닫게 되고 그분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전단에서 언급한 “그 모든 일”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즉 그가 직접 경험한 삶의 모든 현실을 가리킵니다. 그 안에는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하며 장수하는, 우리가 기대하는 질서와는 전혀 다른 부조리한 현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도자는 이를 억지로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시험을 피할 수 없고, 심판받아야 할 악인이 오히려 번성하는 이유를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불확실하고 불가해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에 전도자는 왜곡된 세상에 당황해 하지 말며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에스더서의 증언입니다. 모르드개는 잠시 동안은 악한 자가 득세하나 이윽고 의로운 자를 높이고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였고, 그를 높이시자 동족 유대인들을 보호하며 지혜롭게 통치합니다. “악인은 백 번이나 죄를 짓고도 장수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이 잘 될 것이다.”(전8:12,쉬운성경).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벧산/ 벧 스안
마태복음 24:2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본문은 성전 건물을 찬탄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로마 도시 스키토볼리(벧산)의운명도 같습니다. 도시 기둥들은 로마식 홈이 파여 있고 고린도·이오니아의 화려한 양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도로마다 건설을 후원한 인물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남북을 가르는 실바누스 도로는 56m 길이에 7m 높이의 기둥이 입구를 지킵니다. 주변에는 디오니소스 신전, 바실리카 광장, 샘터, 목욕탕 등이 늘어서 있습니다. 도로는 검은 현무암으로 포장되었고 공공건물은 흰 석회석과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도시의 부유함을 보여줍니다. 특히 70×30m 규모의 바실리카 시장과 110m 지름의 극장은 7000명을 수용할 만큼 거대했습니다. 도시는 주후 363년 지진으로 파괴되었으나 409년 팔레스티나 세쿤다의 수도가 되며 다시 번영합니다. 로마가 기독교화되자 제우스 신전은 교회로 대체되고, 도로를 따라 교회와 회당이 함께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749년 강진으로 완전히 파괴돼 사라집니다. 어거스틴은 『신국론』에서 이 땅의 도성은 욕망과 권력 위에 세워지기 때문에 반드시 흔들리고 무너진다고 말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도성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백성의 삶 속에서 세워집니다. 스키토볼리의 흥망성쇠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남깁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도성은 무너지는 돌과 기둥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지혜의 자녀누가복음 7:35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본문은 지혜는 말이 아니라 열매로 판명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은 침례 요한이 떡도 포도주도 먹고 마시지 아니하자 귀신들렸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은 먹고 마시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사역이 맺은 회개의 열매들이 이분들의 삶과 일의 참됨을 증언합니다. 오늘날도 같습니다. 신앙은 말이나 주장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열매로 드러나며, 그 열매는 주님 뜻을 행하는 자녀, 제자 등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포사이드 선교사의 삶입니다. 그는 위급한 오웬 선교사를 치료하고자 광주 제중원으로 가던 중 길에서 죽어가는 한 나병환자를 발견하고, 손수 안아 자신의 말에 태워 갔습니다. 도착했을 때 오웬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포사이드의 헌신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 나환자도 얼마 후 사망합니다. 그러나 조선판 선한 사마리아인의 그 모습은 세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1)후배 의사인 윌슨은 40년 동안 나환자들을 맡아 치료하면서 애양원을 설립하였고, (2) 청년 최흥종은 자신의 봉선동 토지 1000평을 나환자를 위해 기증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후 나환자의 대부가 됩니다. (3) 오웬의 미망인 휘팅은 나환자와 함께 늦게 도착하여 남편을 치료하지 못한 포사이드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염을 두려워 하지 않고 성심껏 불쌍한 나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나환자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남장로본부에 선교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로써 포사이드의 행실은 세상에 알려집니다(1910).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매일묵상(2026/3/27-4/1)


종려주일과 월요일: 2026년 부활절은 4/5일입니다.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구약의 유월절과의 관계 때문에 춘분(3/20-양력)이 지나고 첫 보름달 후 첫 일요일을 부활하신 날로 정했습니다. 3/20일 후  첫 만월은 4/2일이며 그 후 첫 일요일은 4/5일입니다. 부활절 날짜가 결정되면 그 전 주가 고난주간입니다(3/29-4/5). 유월절 엿새 전 토요일(3/28),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잔치 중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부었습니다. 주님의 장례를 예비한 사건이었습니다(요12:1-8). 이튿날 일요일(3/29, 종려주일), 주님은 감람산 동쪽 중턱에 위치한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해 가파른 언덕을 넘어가셨고, 벳바게에 이르자 오후였습니다.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향하시자(마21:1-11/ 슥9:9성취),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따랐는데(호산나 찬양), 약 두 달 전 죽은 나사로를 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요12:17-19). 군중들은 환호하였지만 주님은 당신을 거부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아시고 우셨습니다(눅19:41-44). 성전을 둘러보신 후 저녁이 되자 베다니로 가셨습니다(막11:11). 월요일(3/30) 아침 성전으로 가시다가 시장하여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고 가셨으나, 열매를 얻지 못하자 주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열매 맺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의 상징이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꾼들을 몰아내시는 등 정결케 하신 뒤, 날이 저물매 성 밖으로 나가셨습니다(막11:12-1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슥9:9).

화요일: 아침에 성전으로 가는 중, 어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본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묻자, 주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0-24)하시고, 형제를 용서해야 응답 받음을 교훈하십니다. 성전에 들어가시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왔습니다: “무슨 권위로 가르치는가?” 그러자 주님은 상속자를 죽이는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대답하십니다(막11:27-12:12). 바리새인들은 헤롯 당과 함께 와서 세금문제로 시험하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는 지혜의 말씀을 듣자 침묵합니다. 이어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왔습니다. 사두개인들은 형제가 죽으면 다른 형제가 그 여자를 취할 수 있는 계대혼을 규정한 모세율법을 따라, 한 여자를 차례대로 취하고 죽은 7명의 형제의 예를 갖고 부활의 문제점을 제기하였습니다. 주님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책망하신 뒤, 부활 시에는 결혼이 없는 하늘의 천사들과 같으며,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음을 가르치십니다(막12:13-27). 마지막 날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이나, 악인의 부활은 심판을 뜻합니다. 따라서 의인의 부활인 생명의 부활만이 의미가 있습니다(요5:28,2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15:51-52).

화요일: 성전에 계실 때 한 서기관이 가장 큰 계명을 물었습니다. 주님은 즉시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언급하십니다(막12:28-34). 그 지혜에 놀란 서기관들, 율법사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이 되묻습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을 마가복음은 증언합니다(막12:35-37). 주님은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또 이를 행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을 질타하시고(마23장; 막12:38-40), 헌금함에 두 렙돈을 넣는 과부를 칭찬하십니다(막12:41-44). 성전에서 나가실 때 웅장한 성전을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철저한 파괴를 선언하십니다. 그날 저녁 제자들은 성전 파괴 시기와 주님이 다시오실 때의 징조를 물었습니다. 주님은 상세하게 답변을 주십니다(마24장, 막13장, 눅21장). 주님은 한 세대 내에 성전이 파괴될 것이고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쌓일 때 신속하게 성에서 빠져나올 것을 분부하시나, 주님의 재림일은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성전은 약 40년 뒤인 AD 70년 로마의 티토 장군에게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베다니로 가신 것으로 보이며 수요일에는 아무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5-46).

목요일: 유월절 하루 전 주님은 큰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유월절을 드셨습니다(눅22:7-13). 식사 중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제자들(가룟유다포함)의 발을 씻기시고 자리에 앉으사 다시 옷을 입으셨습니다. 영광의 주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인간이 되시고 죽고 부활하여 다시 영광의 자리에 앉는 모습의 축약입니다. 가룟 유다는 밀고하러 떠났으며, 베드로는 순교를 장담하자 주님의 경고가 이어지는 등 분위기는 침울하였습니다(요13장). 주님은 곧 영광(십자가와 부활)을 받으실 것과 성령님을 보낸다는 약속 후(요14:16,17,26;15:26;16:7-15), 모든 제자들(후에 믿을 신자들 포함)을 위한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립니다(요17장). 찬미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유다가 인솔하는 무리를 기다리면서, 1시간 동안 피땀의 기도와 함께 통곡합니다. 잡히시자 먼저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이어 그 해의 대제사장 가야바(안나스의 사위)에게 심문과 곤욕을 당합니다. 이 대제사장들은 수일 전 성전에서 ‘무슨 권세로 가르치냐?’고 주님께 직접 힐문한 자들입니다. “네가 찬송받으실 자의 아들이냐”는 가야바의 물음에, 주님은 ‘그렇다’고 하신 뒤 당신이 선지자 다니엘이 예언한(단7:13) 그 ‘인자 人子 Son of Man’임을 밝힙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사형선고를 내렸고(마26:62-66), 주님은 다시 능욕을 당하시는데(마26:67-68), 베드로는 3번 부인하였습니다(눅22:54-62). 이 같이 우리를 위한 주님의 고난은 700년 전 이사야 예언의 성취입니다(사53: 7-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이사야 53: 8).

금요일: 아침에 주님은 총독 빌라도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를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눅23:6-12). 결국 빌라도가 심문합니다: “네가 왕이냐?” 주님은 당신이 왕이나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당신은 진리를 증언하가 위해 세상에 왔음을 밝힙니다(요18:36-37). 진리란 복음을 뜻하며, 복음온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하에 있으나, 주 예수께서 보냄을 받아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부활하셨으며, 이를 믿는 자는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내용입니다. 죄가 없었지만, 군중들의 위세에 눌린 총독은 십자가의 형을 선고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7마디를 하셨습니다 (오전9시-오후3시). (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 (2) 한 명의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4) “내가 목마르다”(요19:28) (5) 오후 3시경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15:34)  (6) 이어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6) (7)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 (요19:30). 오후 3시는 유대인들이 1,500년 동안 유월절 양을 잡아온 바로 그 시간입니다(출12:6). 부자이자 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이 주님의 시체를 받아, 자기 묘실에 둠으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됩니다(마27:59-60;사53:9). 사흘 뒤 부활 시까지 무덤에 계셨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주님의 죽으심이 대속의 죽음인 것을 잘 설명합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1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