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전라북도편
이사야 8:13절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조선시대 사대부에게 중국은 영원한 ‘대국’이었고, 중국인들은 ‘대인’(大人)이었습니다. 그들은 중국 황제가 바뀌어야 비로소 새 세상이 되었다고 여겨서, 조선 왕이 아무리 바뀌어도 만력, 숭정, 강희, 건률, 광서 같은 중국 연호를 고집했습니다.. ‘호남’(湖南)이란 명칭도 같습니다. 양자강 상류에 동정호란 넓은 호수가 있는 그 남쪽에 넓고 비옥한 땅을 ‘호남’이라 하였습니다. 이를 본 따 별로 큰 호수도 없는 전라도의 너른 들을 호남이라 부른 것입니다. 실로 조선 선비들은 조선에 살면서도 중국 땅에 사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미국의 많은 지명이 이주 전 본토인 영국의 지명을 따른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 모습은 성경이 경고하는 인간의 약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은 강해 보이는 존재나, 눈에 보이는 힘에 기대려고 하는데, 우상숭배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이는 두려움으로 인한 우상숭배의 특효약입니다. 도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히스기야 왕의 본보기입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30여년 동안 팔레스틴 지역에 영향력을 키워가던 중 ‘여호와 중심’의 정책으로 돌아선 히스기야를 공격합니다. 주님께 충성스러웠던 히스기야와 선지자 이사야의 필사적인 기도를 들으신 주님은 천사 한 명을 보내어 185,000 명의 앗수르 군사를 하루에 전멸시키고 유다를 구원하셨습니다. 성서는 믿음의 책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편118:8,9)
전도서 7:18절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전도서 7장은 “지혜로운 삶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악을 너무 많이 행하지 말라”, “지나치게 어리석지도 말라”(17)고 하며, 또 “지나치게 의롭거나 지혜롭지도 말라”(16)고 교훈하여 극단을 경계합니다. 본절(18)은 그 결론으로, “이것도 잡고 저것도 놓지 말라”는 말로 지혜로운 균형을 가르칩니다.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전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면 극단의 함정을 벗어난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판단은 언제나 한 극단에 치우칠 수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 마음이 중심을 잡아줍니다. 즉, 오뚜기 같이 ‘경외’가 균형을 만들어 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이라는 불타는 사명과 열심을 가졌으나, 정치적 음모, 경제적 문제, 백성의 피로 등 현실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반대에 직면하였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성벽을 재건하고 모세율법 중심의 생활방식을 확립합니다. 사도들의 예도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를 만나 자신의 복음을 진술하였으나, 베드로는 다른 언급 없이 오직 예루살렘 성도의 궁핍함을 도와줄 것을 요청합니다(갈2:1-10). 두 사도는 모두 순교하면서까지 주님을 사랑한 분들이나 동시에 가난한 자들 구제도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균형잡힌 지성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 외딴 곳으로 온 수만 명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사 오병이어의 표적을 베푸시고, 귀가할 때 기진하지 않게 배려하셨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담겨 있어 우리로 균형잡힌 사고를 갖게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6:11).
전도서 7:19절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압살롬의 반역이 진압된 후,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세력을 규합하여 다윗에게 반역하였습니다. 다윗이 요압과 모든 군대를 보내자 세바는 아벨 성으로 피신하였고 요압의 군대가 아벨 성을 포위합니다. 성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으나, 아벨 성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명이 등장하여 요압과 대화를 나누고 세바의 목을 조건으로 철군 확답을 받습니다. 그녀가 아벨 성의 모든 백성들을 설득하여 세바의 머리를 벤 후, 성벽에서 던지자 요압은 포위를 풀고 돌아갔습니다.(삼하 20장) 지혜는 적을 제압하는 힘을 갖고 있으며, 군사력보다 강합니다. 따라서, 잠언은 “지략을 베풀고 전쟁하라”(20:18)고 조언합니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입니다. 즉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전쟁 전략 4가지를 언급합니다. 적의 의도를 깨뜨리는 것을 상책, 적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을 중책, 적의 군대를 공격하는 것을 하책,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을 최하책으로 놓습니다. 한 여인의 지혜로 아벨 성과 요압 모두 싸우지 않고 승리하였는데, 상책입니다. 그러나 본절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담고 있으므로, 양 극단을 피하고 균형잡힌 생각을 갖고 행동하게 합니다. 그것이 성서가 가르치는 지혜의 본질이고 세상 지혜와 결정적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참된 지혜가 생기고, 그 지혜는 권력보다 강하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만유의 주님을 존경하고 두려워 하는데서 나오며 그것이 삶의 중심을 잡고 삶을 지키는 가장 큰 힘입니다.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잠언 20:15).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이스르엘 골짜기
사무엘하1:21절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본절은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과 전쟁 중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 것을 슬퍼하는 다윗의 ‘활 노래’의 한 대목입니다. 길보아 산은 이스르엘 골짜기 남동쪽에 위치합니다. 이스라엘은 험준한 산지를 가졌으나, 이스르엘 골짜기는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이며 비옥한 평야 지대입니다. 지중해와 요단강, 남북의 대륙을 잇는 이 길목은 붉은 테라로사 토양 덕분에 풍요로운 녹색 물결(곡창지대)을 이뤘고, 고대 근동 무역상들의 중심통로였습니다. 그러나 이 편리한 지형과 풍요로움이 바로 전쟁의 화근이었기에, 가나안 족속은 고대의 전차인 강력한 철 병거를 이 골짜기에 배치하여 지켰습니다. 성경 속 주요 전쟁들도 이곳을 배경으로 합니다. 사사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의 군대를 전멸시킨 곳이며,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 대군에 맞서기 위해 300명의 용사를 선발했던 ‘하롯 샘’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강력한 군사력과 맞닥뜨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던 신앙의 격전지였지만, 환경의 풍요로움이나 세상의 힘(철 병거)이 곧 영적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 승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결정됩니다.미디안을 이긴 기드온은 금 에봇을 만들어 오브라에 두자 그것이 백성의 우상숭배 대상이 되었고, 그 가문의 올무로 변합니다. 세상의 능력도 무시하면 안 되나, 주님의 돌보심을 더 신뢰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영적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세상과 신자
시편 90: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수년 전, 삼성 이재용 회장이 “2030년에 무슨 일이 전개될까”라는 주제로 열린 사장간담회에서, “2050년엔 저도 이 자리에 없습니다”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 당시 서울경제신문에서는 재벌 경영의 장점을 사라지게 만드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뜯어 고치자는 기사를 냈습니다. 그 논지는 막대한 상속세를 내려면 기업을 팔아야 하니 한국의 경제성장의 동인이 사라지므로, 시대에 맞도록 상증법을 고쳐야 2050년에도 번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회장의 말은 지금은 열심히 삼성의 발전을 위해 일하지만, 24년 후의 미래는 모르고, 알아도 자신의 역할은 없다는 점을 진담반 농담반 밝혔다고 생각됩니다. 소규모의 중소기업도 제대로 경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을 지속적 성장으로 이끄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2050년에 이회장은 82살이 되어 지혜와 힘은 다하고, 그 후에는 자신이 살아 온 삶과 세인의 평가만 남게 됩니다. 또한,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가 등장하면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24년 뒤가 아니라 영원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지막 날 부활하여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만 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영원을 가름하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믿음의 열매, 선의 열매, 말씀의 열매,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열매, 성령님의 9가지 열매를 맺어 주님의 제자로 발견되야 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