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6/4/25-30)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전라북도편
요한복음 10: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영조 때(1767년) 전주에 큰 불이 나서 전주 성 안에 천여 채가 넘는 민가와 성문들이 소실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전라 관찰사였던 사도세자의 처남 홍낙인은 전주를 대대적으로 복구한 후, ‘풍패지향’(豊浿之鄕)으로 부르고 귀빈의 객사에 ‘풍패지관’(豊浿之館), 남문에 ‘풍남문’(豊南門), 서문에 ‘패서문’(浿西門)이란 현판을 내걸었습니다. ‘풍패’는 기원전 3세기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 이름입니다. 조선 사대부들은 이를 ‘왕의 본향’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에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를 한고조 유방에 비유하여 이성계의 본향인 전주를 성역화하면서 ‘풍패’라 부른 것입니다. 이 같은 봉건적 ‘사대주의’ 문화가 담긴 전주 유적은 다 사라졌고, 객사와 풍남문만 남아 있습니다. 패서문의 경우 1907년 신작로가 뚫리면서 성곽과 함께 철거되었으나, ‘서문’이란 이름은 그때 이미 세워진 전주 서문교회의 이름에 남았습니다. 교회는 영원한 생명의 문이신 예수께로 인도하는 영적 관문입니다. 세상의 자부심이었던 패서문이 허물어진 자리에 복음을 통해 서문교회가 세워졌듯이, 우리 삶에도 세속적 가치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이 심겨야 합니다. 인간의 계획이 좌절되는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높이려는 ‘풍패’의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이 온전히 서는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 문 위에는 어떤 이름이 걸려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빌1:29,새번역).

전도서 7:20절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7장15절 이후에는 두 가지 주제가 이어집니다. 첫째는 지혜, 의, 악 등 극단을 피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삶의 균형을 잡으라(15–18절). 둘째는 지혜가 권력보다 강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조차 완전하지 않음을 기억하라(19–22절).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본절은 인간의 보편적 불완전성을 선언합니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선지자 모세가 좋은 예입니다. 그는 ‘땅 위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민 12:3)으로 칭찬받았으나, 광야에서 거듭되는 백성들의 불평과 불신앙을 겪자 분노하고 그로 인해 실수합니다. 하나님은 물이 없어 불평하는 백성을 위해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으나, 모세는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쳤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 것을 책망하셨으며, 그 결과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습니다(민 20:12–13). 그럼에도 모세의 겸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아마 과거에 애굽 사람을 쳐죽였던 경솔함에 대한 자각이 겸손의 원인으로 보입니다. 한 인간을 완전하게 만드는 일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마19:26).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일하심을 믿고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속죄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나, 여전히 ‘의인된 죄인들’로 불려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같이 연약하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하나님의 이 온전하심을 우리 삶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합니다.“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전도서 7:21절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0절은 “완전한 의인은 없다”고 선언하고, 21–22절은 그 죄의 보편성이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말은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 자체보다 마음의 중심입니다. 따라서, 지혜자는 사람들의 모든 말을 마음에 담지 않습니다. 본절의 권면은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 것입니다. 후단의 내용은 종들이 주인에 대해 종종 불평하거나 비방하는 현실을 알기에 나온 경험적 조언입니다. 험담을 들으면 누구라도 화가 납니다. 항우가 진중을 시찰 중 진나라 군사의 비방을 듣고 분노하여 20만 명을 죽인 사건은, 분노에 사로잡힌 어리석음이 낳는 비극을 보여줍니다. 반면, 위기에 처한 자신을 저주한 베냐민 지파 시므이를 즉시 죽이지 않고, 그 처리를 솔로몬에게 맡긴 다윗은 민족의 분열을 막아낸 지혜로운 사례입니다. 본문에서 ‘저주하다’라는 단어는 강한 저주라기보다 ‘비방하다’, ‘투덜거리다’에 가까운 의미이지만, 이것 역시 죄의 한 형태입니다. 누구나 죄를 짓고, 누구나 남을 비방할 수 있으며, 그 안에는 주인 자신도 포함됩니다(22절).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불완전함과 죄인됨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는 타인에 대한 관용을 낳습니다. 전도자는 20–22절을 통해 “사람은 완전하지 않다”(20절), “그러므로 타인의 말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라”(21절), “너도 같은 실수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22절)고 말하며, 겸손·관용·자기 성찰이라는 지혜의 핵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잠언3:3).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이스르엘 성
사무엘하21:1절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이스르엘 골짜기는 이스르엘이란 도시를 따라 명명되었고, 이 도시는 곡창지대에 위치해 전략적으로 중요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이 이스르엘 출신인데(삼상25:43), 아마 다윗은 이 결혼을 통해 식량을 지원받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통일왕국을 이은 분열왕국 시대에 이스르엘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고, 특히 아합 왕과 나봇의 포도원, 그리고 엘리야의 심판 선언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아합의 여름 별궁이 이곳에서 발굴되었는데 화려한 상아궁이었고, 그의 아들 요람도 전쟁 부상 후 이곳으로 돌아온 사실을 보면 이스르엘은 견고한 요새 도시였습니다. 예후가 요람을 치러 올 때 파수꾼이 망대에서 그를 보았다 하고, 예후의 말에 여종이 왕비 이세벨을 창에서 던져 죽인 사건은 도시의 높은 성벽 구조를 말합니다. 1987년 지린이라 불린 유적지에서 우연히 유물이 발견되자 대규모 조사가 착수되었고, 아합 시대의 거대한 요새가 발굴되었습니다. 그것은 성벽, 망대, 해자 등 강력한 방어시설을 갖춘 도시였으나 아람 왕 하사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스르엘 성의 흥망의 역사는 권력과 요새, 군사력도 영원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아합의 탐욕, 이세벨의 악행, 요람의 불순종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왔고, 이스르엘 성은 견고했으나 무너졌습니다. 인간이 쌓아 올린 힘과 성취는 잠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참으로 안전하고 영원한 신앙유산을 후손들에게 남깁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편127:1)

세상과 신자(2)
에베소서 6:1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신에게 조모께서 계시질 않았다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며, 조모께서도 신이 없다면 여생을 마칠 수가 없습니다. 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의 목숨이 되어주고 있으므로 이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 멀리 떠날 수가 없습니다.이 글은 제갈량의 출사표, 한유의 제십이랑문과 함께 중국 3대 명문으로 평가받는 이밀의 진정표의 한 대목으로, 진무제의 부름을 받았으나 할머니(96세)의 봉양 때문에 떠날 수 없다는 상주문입니다. 이밀(224-287)은 난지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고, 네 살 때 어머니가 개가하여, 조모 유씨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진무제는 감동하여 노비를 하사하고 조모에게 의식을 제공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 이밀은  충과 효가 충돌하는 지점에 이르러, 효를 택합니다. 그에게 세상은 출세를 위한 곳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곳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유교 이상의 실천이죠!. 세상을 보는 많은 시각이 존재하나, 성경의 관점은 “세상은 하나님의 뜻(계명)을 행하도록 창조된 곳”입니다. 일반계시를 통하여 부모공경의 계명을 행한 이밀은 성경의 관점(특별계시)에서도 칭찬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성경은 부모공경에 대하여 무엇을 말씀합니까?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주님과 부모에 대한 순종이 충돌할 때 주님을 우선시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의 박해가 일어날 때 비취는 중요한 등불입니다. 황제 진무제도 이밀을 돌보았는데, 만유의 주님이 어찌 당신의 백성을 돌보지 않겠습니까?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