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이거두리
호세아 6:6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선지자 호세아는 북왕국 말기(주전 8세기)에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는 겉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실제로는 영적·도덕적 타락이 심하였기에 선지자는 백성들을 질타하였습니다. 그 중 본절은 “형식보다 사랑, 제사보다 관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겼습니다.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자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였습니다. 그때 이 말씀을 인용하시며(마9:13)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 신앙이 아니라 실제적 사랑임을 강조하셨고, 회심한 이보한은 직설적으로 이 말씀을 실천합니다. 그는 서자 출신에다 어려서 열병으로 한쪽 눈을 잃었고 ‘반골’ 기질이 농후했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도 교회의 제도권 밖에서 ‘파격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상갓집에서 노래해 주고 받은 품삯으로 거지들을 먹이거나, 혹은 그들을 끌고 부잣집으로 가서 거둬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소작인들의 빚을 받아오기는커녕 오히려 빚을 탕감해주고 돌아온 이야기, 나무를 팔지 못한 나뭇꾼들을 부잣집에 데리고 다니면서 팔아준 이야기, 부잣집 아들과 거지의 옷을 바꿔 입힌 이야기, 거드름 피는 서울 양반들의 ‘줄 빰’ 돌린 이야기, 교인 변호사를 찾아가 ‘천국에 달아 두라.”며 돈을 빌려 거지들을 먹인 이야기 등, 전라도 땅에는 그의 선행에 관한 이야기들이 풍부합니다. 그 어려운 일제 시대 가난한 이들을 돌본 그의 행동은 율법보다 사랑, 형식보다 긍휼, 종교보다 사람을 선택한 용기 있는 삶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전도서 7:28절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전도자는 인생 전체를 설명하는 궁극적 원리는 찾지 못했지만, 부지런한 탐구 끝에 세 가지 중요한 발견을 기록합니다. ① 악의 유혹은 파괴적이다(7:26) ② 덕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7:28) ③ 인간은 본래 정직하게 지음 받았으나 스스로 타락했다(7:29). 본절(28)은 두 번째 발견, 즉 인간의 도덕적 결핍에 대한 관찰입니다. “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극히 드물다는 뜻으로, 전도자는 “참된 덕을 가진 사람을 거의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는 표현은, 여자가 먼저 유혹되어 타락한 창세기의 증언을 반영하며, 인간 전체의 타락이란 29절의 결론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덕과 의를 갖춘 명철한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전도자뿐 아니라,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신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노아입니다. 노아는 홍수 이전의 시대, 즉 “모든 사람의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던 시대(창 6:5)에 하나님이 찾으신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증언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게 살았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주신 홍수 심판의 경고를 받자 믿음으로 방주를 준비하고 자신과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전12:14). 따라서, 겸손히 주님 뜻을 행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전도서 7:29절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본절은 전도자의 세 번째 관찰로서,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선택 결과임을 밝힙니다. 창세기 1–3장이 그 배경입니다(롱맨).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뒤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렇다면, 본절의 ‘정직함’은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는 도덕적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은 처음부터 악하거나 왜곡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선한 본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많은 꾀”를 찾았습니다. “많은 꾀”는 단순한 계산이나 지적 활동이 아니라 악을 꾀하는 마음의 계략’이며, 창세기 6:5절,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롱맨).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정직함을 버리고 자기 욕망과 계산을 따라 악을 선택하는 존재로 변한 것입니다. 7:26–28절에서 전도자가 여자를 “죽음보다 쓰다”고 표현하거나 “천 사람 중 한 사람만 찾았다”고 말한 궁극적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특정 성별이 초점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보편적 타락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며 일종의 문학적 장치입니다. 따라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 동일하게 타락했지만,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 같은 결론은 신구약 성경과 일치합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돌아간 뒤,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이스르엘 골짜기 – 므깃도
요한계시록 16:16절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므깃도는 지중해변을 이루는 갈멜산 능선을 타고 동쪽으로 내려가면 이스르엘 골짜기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세 방향의 길이 만나는 교통의 핵심입니다: ①남북을 잇는 해변길, ②지중해에서 이스르엘 골짜기로 들어오는 와디 아라, ③요단 계곡으로 이어지는 동서 교통로. 따라서, “므깃도를 지배하는 자가 팔레스타인의 교통을 지배한다”고 일컬어집니다. 실제로 가서 보면 광대한 평야 가장자리에 우뚝 솟은 언덕입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군사적 충돌이 반복되었습니다. 이 므깃도 언덕에서 무려 26개의 도시층이 발견되어 반복된 파괴 · 재건 · 전쟁을 보여주면서, 고고학적으로도 므깃도가 “전쟁의 역사 그 자체” 임을 증명합니다. 므깃도는 성경뿐 아니라 이집트·아시리아·바벨론 문서에도 등장합니다. 투트모세 3세의 유명한 므깃도 전투 기록에, “므깃도를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다”는 문구가 남아 있으며, 아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 에살핫돈, 아슈르바니팔의 원정 기록,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군사 이동 경로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므깃도는 전쟁의 장소로 등장하는데, 드보라와 바락이 야빈의 군대를 무찌른 곳(삿5장), 요시야 왕이 전사한 곳입니다(열하23장). 한편,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전쟁의 장소를 아마겟돈이라 부릅니다. 이는 히브리어 ‘할-므깃도’(므깃도 산)에서 온 말로써, 므깃도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악의 세력의 최종적 충돌을 상징하는 종말론적 장소” 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므깃도의 역사를 보면서 인간의 전쟁은 반복되지만, 역사의 결말은 하나님이 결정하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언21:31).
세상과 신자(6)
창세기 44:33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유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특별계시와 언약을 물려받았고, 할례의 표식도 몸에 가졌지만, 그의 삶은 자격 미달의 연속이었습니다. 동생 요셉을 팔아넘기고, 아버지를 속이고, 가정은 무너졌으며, 창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판 지 22년이 흐르자, 그는 이밀의 진정표보다 더 감동적인 웅변을 하고, 동생과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나서 요셉을 감동시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요?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거친 세파에서 살아가는 ‘노동의 은혜’입니다(창3:17-19). 아담의 자손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수고와 눈물은 죄를 치료하는 하나님의 약입니다. 이때, 유다는 땀 흘려 일하며 가정을 세우려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안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즉, 악한 두 아들의 죽음이란 하나님의 징계를 인내하면서, 악인의 집에는 평강이 없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둘째, 자신과 형제들의 거짓과 죄 때문에 당하는 아버지의 고뇌를 보았습니다. 셋째, 유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그들의 믿음의 삶을 반추하면서, 조상들을 돌보시는 하나님과, 조상들의 믿음과 소망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젠가 야곱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그 약속을 유다도 간직하였습니다. 이제 유다는 마흔이 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길이 인생의 본분임을 깨닫고 그의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