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6/4/13-17)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전라북도편
여호수아 4:7절
“주님의 언약궤 앞에서 요단 강 물이 끊기었다는 것과, 언약궤가 요단 강을 지날 때에 요단 강 물이 끊기었으므로 그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토록 기념물이 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기전 여학교는 선교사의 기념비는 있지만, 항일투쟁과 관련된 ‘기전 결사대’ 기념비는 없습니다. 1915년 기전 학생 임영신, 오자현, 송귀내 등이 숭의 출신 박현숙 선생의 지도로 ‘구국결사대’를 조직해서 매일 구국 기도회를 갖고 ‘천황 사진에 먹칠하기’와 ‘쓰개치마 벗기 운동’을 벌였고, 3·1운동 때 임영신, 김공순, 김신희, 최애경 등 ‘14인 결사대’가 만세 시위를 주도 하였습니다. 광주학생사건 때도 문유덕, 전순덕, 신애덕, ‘삼총사’와 오원애 김순길, 이준례, 진태순 등 ‘결사대’가 만세시위를 이끌었습니다. 따라서, 기전 여학교는 이를 기념하는 무엇인가를 세워야 했습니다. 예전 경기고등학교의 교정에는 4.19 혁명 당시 희생당한 학생들의 기념 부조가 있어 항상 그때의 사건을 회상케 하였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불의에 항거하고 잘못된 제도의 개혁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희생이 따르나, 치루어진 그 희생의 의미는 꼭 남겨야 합니다. 신앙유산도 같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가르침과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희생의 결과가 신앙유산이며, 비로소 후세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신앙유산 없는 신앙은 겨우 자기만 구원받는 정도의 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의 한계이죠!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1:29).  

전도서 7:16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본절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왜 그렇게까지 완전해지려 하는가?” 이는 우리 삶의 목적을 터치하는 말씀입니다.극단은 인간을 무너뜨리므로, 그 교훈의 핵심은 균형과 겸손입니다. 지나치게 의인(특히 종교적 의인)이 되려는 예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의식적 율법을 지키려는 열심이 지나쳐 사람을 정죄하는 자리에 섰고, 그들의 의로움의 추구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무거운 갑옷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려는 사람의 예는 솔로몬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누렸지만, 그 지혜를 통제하지 못해 수많은 아내와 우상을 받아들이며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났습니다. 의로움도 지혜도 모두 좋은 것이나, 극단에 이르면 인간은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상은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입니다. 세상은 이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우리의 능력을 넘는 것은 더 많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절대적입니다. 겸손히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인간의 모습, 그것이 원래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이 목적을 모르고 지나친 ‘의’- 특히 종교적 ‘의’ – 를 추구한다면, ‘의’가 아니라 오히려 판단만 만들어 비판의 죄를 짓게 하며, 지혜의 지나친 추구는 자신을 과신하는 함정에 빠집니다. 전자는 하나님보다 율법을 더 사랑하고, 후자는 자신을 우상의 자리에 놓습니다. 마땅히 피해야 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6:8).

전도서 7:17절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7절은 16절과 구조적으로 평행을 이루며, 네 가지 성품—의로움, 지혜, 악함, 어리석음—을 두 축으로 대비시킵니다. 원문에는 세 가지(의로움, 지혜, 악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라는 수식을 붙이나 우매에 대해서는 없는데, 이는 전도자에게 어리석음은 절대 용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5절은 “의인이 망하고 악인이 장수하는” 모순된 현실의 증언입니다. 보응의 원리가 항상 작동하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16절은 “지나치게 의로워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말라”고 경고했고, 이어 17절은 “지나치게 악하여 일찍 죽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모두 극단이 인간을 파멸로 이끔을 강조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도자가 “지나친 악함”을 경고하면서도, 마치 “적당한 악함”의 여지를 남겨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9:2)는 말씀과 충돌하는 듯 보이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절은 절대적 의가 아니라, 인생의 현실을 관찰하며 그 한계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남는 법”을 말합니다. 악인이 항상 장수하거나 형통하는 것은 아닐 뿐더러, 그 악함도 처세의 수준을 넘어 지나치면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는 지름길입니다. 그 파멸의 원인이 하나님의 심판인지, 악함의 결과인지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어 일찍 죽은 사람의 대표는 나발입니다. 나발은 부자였지만, 교만하고 분별력이 없어 다윗의 손에 죽을 뻔하게 된 사실을 뒤늦게 알자 충격을 받고 몸이 돌처럼 굳어져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함과 어리석음의 길을 떠나, 겸손과 지혜의 길을 걷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언1:8).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이스르엘 골짜기
열왕기상 21:1절
“그 일이 있은 후였습니다. 나봇이라는 사람이 이스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밭은 아합의 궁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새번역)

이스르엘 골짜기는 아합이 탐냈던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곳입니다. 아합은 포도원을 얻지 못하자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도 거부했고, 이를 본 이세벨은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돌로 쳐 죽여 빼앗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어 이세벨의 시신을 이스르엘의 개들이 먹게 될 것이라 선언하셨고, 15년이 흘러 예후의 반란으로 성취됩니다(열하9:30-37). 이 비극의 무대인 이스르엘 골짜기는, 번역이 골짜기이지 넓은 평야요 고대부터 이스라엘의 대표적 곡창지대입니다. 또한, “이스르엘”이란 이름은 “신이 밭을 갈다”는 뜻인데, 이름조차 이 땅의 비옥함을 반영합니다. 지질학적으로 약 200만 년 전 지중해와 요단 계곡 사이에서 형성된 충적 평야이며, 북쪽의 갈릴리, 남쪽의 사마리아 산지, 동쪽의 요단 계곡, 서쪽의 갈멜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므깃도·벧산·이스르엘 등 주요 도시가 여기에 위치해 있으며, 초기 청동기(주전 4500–3300년) 유물이 발견되어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합니다. 특히 므깃도에서는 솔로몬 시대의 성문과 병거 도시 유적이 발굴되어 이 지역의 전략적·경제적 중요성을 입증합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 보듯이, 성경은 이 풍요로운 땅에서 인간의 탐욕이 일으킨 범죄와 전쟁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땅이라도, 그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순간 저주의 장소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 가운데서 주신 것에 만족하는 법인 ‘자족’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

세상 창조의 목적과 사랑
갈라디아서 5:5절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전투기의 1세대는 제트기, 2세대는 초음속 제트기(미그21, F-5), 3세대는 레이다와 공대공 미사일(팬텀, 미그23, 25), 4세대는 첨단 항전장비(-F16, 15), 5세대는 스텔스(F-22, 35)로 특징지울 수 있습니다. 전투기 세대 구분 이유는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3세대는 4세대를 당할 수 없습니다 1982년 베카계곡의 전투에서 F-15,16의 4세대와 미그23,25 3세대가 공중전을 하여 85:1로 승패가 4세대 승리로 판가름 났습니다. 그러나, 4세대도 5세대에는 아예 전투자체가 안됩니다. F-22와 F-15의 모의 공중전에서 144:0으로 F-15가 패배하였습니다. 스텔스인 5세대를 레이다로 탐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전투기를 갈라놓듯이,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이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갈라놓습니다. 그 믿음은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서 아는 지성을 갖추고, 그것의 심장은 사랑이며, 그것의 에너지는 소망의 약속입니다. 세상 창조의 목적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선의 열매를 맺는데 있습니다. 좋은 예가 가정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장 연약한 자가 가장 귀한 돌봄을 받는데, 사랑이외에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창조된 세상은 바로 이 목적을 이루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다른 목적- 명예, 재물, 욕망, 출세 – 이 우선시 되면 이구동성으로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규정합니다. 사랑의 첫 번째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를 도외시 한 삶이 우상숭배이며, 이런 의미에서 무신론자들은 모두 우상숭배자들입니다. 띠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합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