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전라북도편
요한일서 3:18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기전여학교에 오르는 언덕 길 옆에 1956년에 세운 <선교사 인톤 목사 · 인사례 여사 공적 기념비>가 있습니다. 윌리엄 린튼(인톤)은 1912년 내한해서 군산 영명학교와 전주 신흥학교 교장을 지냈고, 해방 후에는 신흥과 기전 재건 사업을 주도했으며 대전 한남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을 지낸 분입니다. 린튼 부인(인사례)은 광주 개척 선교사 벨의 딸로 태어나 1922년 린튼과 결혼해서 해방 후 기전여학교 교장을 역임했습니다. 송기철 장로의 회고입니다. “인톤 목사님은 아주 엄격하고 원리 원칙을 잘 따졌고 일본 사람을 아주 싫어 했어요. 일본 관리가 호구 조사를 나왔는대, ‘이 집 식구가 몇이오?’ 하니깐 손가락을 꼽아 보더니, ‘한 여섯 될라나?’ 하셨대요. 당시 자녀들은 미국에 유학 중이라 내외분만 살고 계셨는디 사정을 알고 있던 일본 사람이 ‘당신네 두 식구 뿐이잖소?’ 하니깐, ‘사람은 둘이지만 우리 집에 개가 한 마리, 쥐가 두 마리,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그들도 밥을 같이 먹고 있으니 우리 식구 아니요?’ 했다고 해요. 반면에 인사례 부인은 자상하고 정이 많았어요. 밤 새워 색실로 뜨개질을 해서 수건 같은 것을 만들어 시골 가난한 부인들에게 나누어주며 격려했지요.” 인톤 부부는 40년 간 전라지역 선교의 핵심 인물로서, 섬김이란 말이 아니라 행동이며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삶입니다. 그의 셋째 아들 휴 린튼, 손자 스티브 린튼과 손자 존 린튼 모두 한국 선교를 위해 헌신한 분들입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전도서 7: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본문은 인생의 밝음과 어두움, 좋은 날과 나쁜 날 모두를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인간은 미래를 통제 못하고 다만 겸손히 수용하라는 교훈입니다(롱맨).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인생의 두 날을 섞어 놓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의지케 하시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지혜자도 내일을 모르고, 경건한 자도 고난을 피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고생스러울 때는, “왜 이런 날이 왔는가”를 묻지 말고, “이 날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형제들의 질투를 받아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힙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자, 총리가 된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가정은 물론 만 백성의 생명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입니다. 형제들이 두려워 하여 요셉에게 엎드려 용서를 구할 때에도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50:20)라고 말하며 간곡히 위로하였습니다. 요셉은 좋고 나쁜 모든 날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알았으니, 미래가 보이지 않은 날에도 하나님은 모두의 선을 위해 길을 만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도 이렇습니다(롬8:28). 따라서, 기쁨의 날은 감사로 채우고, 고난의 날은 성찰과 신뢰로 채우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계십니다. 오늘이 어떤 날이든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드리기 바랍니다.“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잠언16:9).
전도서 7:15절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이라는 표현은 지혜롭고 부유했던 전도자의 삶조차 결국 덧없음을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사랑 없는 삶이 도달하는 종착점이며,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세상이 겪는 영적 저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천하는 사랑의 수고는 전혀 다릅니다. 그 삶은 보람과 소망이 넘칩니다. 이는 욥이나 요셉처럼 삶을 회고할 때 선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깨닫게 되고 그분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전단에서 언급한 “그 모든 일”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즉 그가 직접 경험한 삶의 모든 현실을 가리킵니다. 그 안에는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하며 장수하는, 우리가 기대하는 질서와는 전혀 다른 부조리한 현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도자는 이를 억지로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시험을 피할 수 없고, 심판받아야 할 악인이 오히려 번성하는 이유를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불확실하고 불가해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에 전도자는 왜곡된 세상에 당황해 하지 말며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에스더서의 증언입니다. 모르드개는 잠시 동안은 악한 자가 득세하나 이윽고 의로운 자를 높이고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였고, 그를 높이시자 동족 유대인들을 보호하며 지혜롭게 통치합니다. “악인은 백 번이나 죄를 짓고도 장수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이 잘 될 것이다.”(전8:12,쉬운성경).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벧산/ 벧 스안
마태복음 24:2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본문은 성전 건물을 찬탄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로마 도시 스키토볼리(벧산)의운명도 같습니다. 도시 기둥들은 로마식 홈이 파여 있고 고린도·이오니아의 화려한 양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도로마다 건설을 후원한 인물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남북을 가르는 실바누스 도로는 56m 길이에 7m 높이의 기둥이 입구를 지킵니다. 주변에는 디오니소스 신전, 바실리카 광장, 샘터, 목욕탕 등이 늘어서 있습니다. 도로는 검은 현무암으로 포장되었고 공공건물은 흰 석회석과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도시의 부유함을 보여줍니다. 특히 70×30m 규모의 바실리카 시장과 110m 지름의 극장은 7000명을 수용할 만큼 거대했습니다. 도시는 주후 363년 지진으로 파괴되었으나 409년 팔레스티나 세쿤다의 수도가 되며 다시 번영합니다. 로마가 기독교화되자 제우스 신전은 교회로 대체되고, 도로를 따라 교회와 회당이 함께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749년 강진으로 완전히 파괴돼 사라집니다. 어거스틴은 『신국론』에서 이 땅의 도성은 욕망과 권력 위에 세워지기 때문에 반드시 흔들리고 무너진다고 말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도성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백성의 삶 속에서 세워집니다. 스키토볼리의 흥망성쇠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남깁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도성은 무너지는 돌과 기둥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지혜의 자녀누가복음 7:35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본문은 지혜는 말이 아니라 열매로 판명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은 침례 요한이 떡도 포도주도 먹고 마시지 아니하자 귀신들렸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은 먹고 마시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사역이 맺은 회개의 열매들이 이분들의 삶과 일의 참됨을 증언합니다. 오늘날도 같습니다. 신앙은 말이나 주장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열매로 드러나며, 그 열매는 주님 뜻을 행하는 자녀, 제자 등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포사이드 선교사의 삶입니다. 그는 위급한 오웬 선교사를 치료하고자 광주 제중원으로 가던 중 길에서 죽어가는 한 나병환자를 발견하고, 손수 안아 자신의 말에 태워 갔습니다. 도착했을 때 오웬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포사이드의 헌신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 나환자도 얼마 후 사망합니다. 그러나 조선판 선한 사마리아인의 그 모습은 세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1)후배 의사인 윌슨은 40년 동안 나환자들을 맡아 치료하면서 애양원을 설립하였고, (2) 청년 최흥종은 자신의 봉선동 토지 1000평을 나환자를 위해 기증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후 나환자의 대부가 됩니다. (3) 오웬의 미망인 휘팅은 나환자와 함께 늦게 도착하여 남편을 치료하지 못한 포사이드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염을 두려워 하지 않고 성심껏 불쌍한 나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나환자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남장로본부에 선교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로써 포사이드의 행실은 세상에 알려집니다(1910).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