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서문교회(1)
느헤미야 2:17절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유다 총독 느헤미야는 유다 방백과 귀족들을 모은 뒤, 예루살렘 성 중건의 취지와 하나님의 선하신 도움을 간증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다의 각계각층이 연합하여, 많은 음모와 반대를 물리치고 52일 만에 성벽은 완성됩니다(느 3장-6장). ‘전주 이씨’ 양반 가문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1905년을 기점으로 전주 교회는 크게 성장합니다. 주일 예배는 3백 명이 넘어 예배당은 비좁았고, ‘양반 교인’의 참여로 용기를 얻은 선교사들은 새 예배당을 개울 건너 시내 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서문 밖에 미나리 밭 780평을 마련했습니다. 지금 서문교회가 위치한 곳입니다. ‘전주 양반’들이 교회에 나오면서 재정 형편도 좋아졌습니다. 예배당 건물은 정부 당국과 협의하여 은송리에 있던 테이트 사택을 옮겨 세웠습니다. 테이트 사택은 조선 기와 지붕을 올린 붉은 벽돌 건물(57평)이었는데 선교부가 화산동으로 옮긴 후 5년 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를 ‘서문밖교회’라 했고 해방 후에 ‘서문교회’가 되었습니다. 전주 이씨 양반 가문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성장하고, 예배당이 확장되고, 재정이 안정되고, 지역 복음화가 가속화된 과정은 하나님께서 한 공동체의 마음을 움직여 교회를 세우시는 방식입니다. 돌이켜보면 ‘양반의 참여’는 단순한 교인의 증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는 섭리의 시작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
전도서 8: 5절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전도자는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고 말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와 판단”을 분별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단순히 권력 앞에서 순종하라는 말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는 법을 말합니다. 앞선 2–4절에서 전도자는 왕의 권세가 절대적으로 보이는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왕의 말은 법이 되고, 그의 결정 앞에서 감히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모하게 맞서거나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면 화를 부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권력자 앞에서 비굴한 처신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지혜자는 상황을 읽고 적절한 때를 분별합니다. 때로는 침묵이 지혜이고, 때로는 물러남이 용기입니다. 춘추시대 말기, 범려와 문종은 구천을 도와 월나라를 재건하고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이때 범려는 구천의 성품을 꿰뚫어 보고는,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진다.”(토사구팽)는 말로 문종에게 함께 월나라를 떠나자고 권고한 뒤 떠났지만, 문종은 듣지 않고 남아 있다 구천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고 현실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지혜자는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셨기에(롬13:1) 때가 오기 전에는 지혜자 임의로 처리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주어졌으나 손대지 않고 불레셋으로 도피하여 사울을 심판하실 때를 기다렸습니다. 현실은 강해 보이나,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분별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언16:3).
전도서 8:6절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전도자는 5절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때와 판단”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 뒤, 6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무슨 일에든지 때와 판단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질서와 때를 정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후단은 역설적 진실을 덧붙입니다.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하다” 즉, 때와 판단은 분명히 존재하나, 하나님만 그런 것들을 아시므로 인간은 큰 고통을 겪게 된다고 솔직히 토로합니다. ‘모든 일에 기한과 때’가 있지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3:11)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고난은 단순히 삶의 어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인간의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혜자조차 능히 알아낼 수 없습니다(8:17). 전도자는 9장 11, 12절에서 이 주제를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인간의 지혜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지혜는 모든 것을 아는 능력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때로 “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언제 이 상황이 끝날까”를 묻지만, 하나님은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명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길을 걷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공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죠! 요셉과 다윗은 때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성공하였지만, 사울은 때도 모르고 하나님도 의지하지 않아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길보아 산에서 세 아들과 함께 전사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3:6).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 므깃도(4)
여호수아 12:21절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본절은 가나안 정복 당시 이미 므깃도 왕국의 존재를 알려줍니다. 이 므깃도에서 초기 청동기 시대(BC 3000~2000년)에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 제단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제단은 지름이 약 10m에 달하며 돌을 층층이 쌓아 단상을 이루고,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과 낮은 난간이 설치되었습니다. 제단 주변에서는 불에 탄 어린 수양, 비둘기, 송아지의 뼈가 발견되어 당시 희생제사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주전 14세기 아마르나 문서에는 므깃도가 마케티, 마키투 등으로 불리는 중요한 요새 도시로서, 견고한 성벽과 양쪽에 방이 있는 시리아식 성문을 갖췄습니다. 이 성문은 후대 솔로몬 시대에도 복구되어 재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주전 1478년 이집트 투트모세 3세가 가나안 연맹군과 므깃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룩소르 카르낙 신전의 부조에 남아 있습니다. 므깃도는 철병거를 갖고 있어 므낫세 지파는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삿 1:27). 이 시기의 유물로는 상아판에 새겨진 왕과 왕비, 시녀, 포로, 내시의 모습이 있으며, 이집트·앗수르 문화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또한 2010년 발굴에서는 토기 주전자에 담긴 홍옥석 목걸이, 반지, 귀걸이 등이 발견되어 주전 1400~1000년경 므깃도의 귀족층의 부유한 삶을 보여줍니다. 므깃도 도시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받았습니다(BC722). 무엇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들은 영생의 소망을 갖고 주님의 뜻을 즐겁게 실천하면서 땀을 흘리는 수고 중에 희락을 누리기 때문입니다(전3:13).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눅12:30).
믿음과 느헤미야(2)
느헤미야 1:1절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신명기 28장은 이스라엘이 언약에 순종하면 축복, 불순종하면 형벌이 따른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들은 죄로 인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BC 722), 남유다는 바벨론(BC 586)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후 바벨론이 BC 538년에 무너지자 약 5만 명이 귀환했지만, 대부분은 이방 땅에 남아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이루었고, 느헤미야도 그 후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1세 (재위 BC465-424)의 신임을 받는 술관원이었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영향력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제국의 충성스러운 관료였지만 동시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스라엘인이었습니다. 당시 성전은 재건되었으나 성벽은 무너진 채 방치되어 백성들이 외적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결심합니다. 마침 페르시아는 이집트 전쟁과 시리아 반란으로 서방 지역이 불안정했기에, 신뢰할 만한 인물을 유다 총독으로 보내는 것이 제국에도 유익한 상황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일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은 넉 달 후 왕의 허락을 통해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으며, 제국의 상황까지 사용하여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셨다는 성경의 증언은 중요한 균형을 가르칩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타인의 유익이나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현실만 바라보다 하나님의 뜻을 잃어서도 안 됩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용기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1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