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10/20-24)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소록도와 애양원의 차이
누가복음 10:36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조선 총독부가 운영하던 소록도 나병원(1916년 창립)처럼, 애양원도 철조망과 감시 초소를 세우는 등 삼엄한 경비와 통제가 있었으나 오래지 않아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배병심 장로의 증언입니다. “소록도에서는 환자들이 죽어도 나가야겠다며 탈출하다가 죽은 사람이 허다했는디 애양원에서는 반대로 죽어도 안나겠다고 버쳤다는 것 아니요? 소록도에서는 당국의 비인도적인 처사에 환자들이 항의하여 폭력 시위를 종종 벌였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애양원에서 제일 큰 벌은 퇴소명령이라. 환자들은 이곳에서 쫓겨날까 봐 겁을 냈다잖여?” 이처럼 애양원이 ‘나환자천국’이 된 데는 이곳 의사와 직원들이 보여준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사랑’이 큰 몫을 차지하지만, 선교사들이 취한 자립과 자활 정책도 중요했는데, 선교부는 치료를 넘어 자립 생활인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애양원은 치료가 끝난 환자 중에서 의사와 간호사 직원을 뽑아 진료와 행정 사무를 맡겼습니다. 이런 조치는 나환자들의 자존감과 사회적 회복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수십 만평의 땅을 준비하여 거동이 가능한 환자들은 직접 농사에 참여, 일한 만큼 소득을 얻게 하였고 소득도 높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많은 나병환자들을 치유하셨으나, 자립은 각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승천 후 교회는 고아와 과부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았고, 2천년의 유산을 이어받은 광주선교부는 애양원을 세워 나환자들의 치료는 물론, 자립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영적인 삶은 현실과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10:37).  

전도서 5:4절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인생의 허무는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분과 동행하면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경건한 삶으로 첫째 예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제사)와 기도입니다(1-3). 둘째 예는 서원이며 전도자는 교훈 3개를 말합니다(4-6). ‘서원’이란 히브리어 ‘나다르’의 번역으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어떤 것을 약속한다’는 뜻입니다. 한나의 서원(삼상1:11)이 좋은 예입니다. ‘맹세’는 ‘샤바’의 번역이며 ‘하나님 혹은 사람 앞에서 진실을 담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언약(창21:31)이 그렇습니다. 본절은 ‘서원하였으면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서원을 한 뒤 속히 이행하지 않으면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우롱하는 처사입니다. 전도자는 그를 ‘우매한 자’로 정의하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희생제사를 드리는 자와 같이 취급합니다(5:1). 모범 사례는 한나입니다. 브닌나의 멸시를 받은 한나는 자녀를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눈물어린 서원을 하였고, 사무엘을 주시자 그 약속을 지켜 성막봉사를 위해 드렸습니다. 성막봉사는 레위인만 가능합니다만, 사무엘은 그핫 자손으로 레위인입니다. 따라서, 한나의 서원은 신중했고, 그 이행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한나의 경우처럼 살다보면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 서원이 필요하고, 그 자체가 경건한 삶의 하나입니다. 시편 116: 18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공동체 앞에서 서원을 지키는 신실함을 선포하는데 좋은 본보기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시편116:18).

전도서 5:5절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민수기는 하나님께 서원하면 반드시 갚으라고 규정합니다(민30:2). 이에 따라 전도자는 서원은, “갚기를 더디말라”(4절)고 한 뒤, “서원하고 갚지 않는다면, 아예 서원하지 말라”(5절)고 교훈합니다. 기도할 때 어려운 처지에 있거나,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본 뒤, 혹은 감정에 북받쳐 즉흥적으로 서원을 하고는 이행이 없다면 죄를 얻게 됩니다. 1980년 여의도에서 열린 민족대복음화대성회 시, 은혜에 감격하여 많은 사람들이 선교의 서원을 하였지만, 그 서원을 이행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 신실한 일본인 신자가 있습니다. 임상병리학자 기무라 선생은 고등학생 시절 방치된 네팔 한센환자의 참담한 사진을 보자, 그 자리에서 의사가 되어 이들을 돌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후 30년이 흐르면서 그는 임상병리학의 석학이 되었으나 어린 시절 약속은 분주함 속에 묻혀졌습니다. 어느 날 ‘해부병리학자를 구한다’는 간곡한 호소의 편지가 네팔에서 전 세계로 발송되었고 일본에도 도착하여, 부인이 받았습니다. 퇴근하는 남편에게 그 소식지를 전하면서 “이제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부인 수니타 여사는 말하였습니다. 기무라 선생은 이미 대학으로부터 종신교수 청빙을 받아 놓았으나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집 한 칸 없었지만, 사재를 털어 병리학 연구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였습니다. 기무라 선생은 7년 동안 네팔에서 제자를 양성하는 등 많은 임상병리학 공헌을 한 뒤  귀국하였습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종신교수직’이고 얻은 것은 ‘주님의 인정’입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언22:1).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찌포리(2)
전도서 1:11절
“지나간 세대는 잊혀지고, 앞으로 올 세대도 그 다음 세대가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새번역)

나사렛 인근의 유적지 찌포리는 로마에 협력하여(AD66) 번성하였으나, 완전히 로마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동전으로 사람이나 신이 아닌 식물 문양이 새겨져 유대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이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도시는 바르 코크바 반란(AD 135)이후, 유대인들이 대거 유입되며 갈릴리 유대인의 종교 중심지가 되었고, 랍비 유다 하나시도 이주하여 미쉬나를 편집하였습니다. 지진으로 일시적으로 파괴된 적도 있으나, 유대인·로마인·기독교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발전하였습니다. 찌포리의 부유함은 ‘갈릴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모자이크가 있는 로마 빌라에서 확인됩니다. 주후 200년경 건축된 이 빌라는 연회 공간과 디오니소스, 판, 헬라클레스가 등장하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으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비너스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시 곳곳에서는 유대인의 흔적도 풍부하게 발견됩니다. 자갈길 위 낙서, 정결례탕 ‘미크베’, 성전 촛대 그림 등이 있으며, 5세기경 회당 바닥의 모자이크에는 제사 장면과 함께 헬리오스와 황동 12궁도가 묘사되어 유대교에 미친 로마 문화의 영향을 알게 합니다. 한편, 기독교의 세력이 커지면서 유대교는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습니다. 지금 찌포리는 고고학적 유적지일 뿐, 현대 도시로서의 찌포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뿐으로 지금 세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어린 양 예수의 피뿌림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는 용사들입니다.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전도서 7:13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새번역)

시인 오인태(1962~)의 시‘인생’입니다.
  “
밥술 뜨다 뜨리라”

그의 인생입니다: “나는 진학도 진로도 내 원대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교대에 들어간 건 그때로서는 등록금이 가장 싼 교대 외엔 대학 갈 형편이 못 되었던 까닭이 컸다. 교대를 나와 저절로 교사가 되었고, 뒤늦게 공부에 재미를 붙여 학위도 받고 모교에서 시간 강사도 했다. 그러나 교육 전문직 공채에 응시해서 장학사도 하고, 교육 연구사를 겨쳐 교육 연구관을 지낸 끝에 지금은 시골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교직에 들어와서 해 볼 건 다 해 본 셈이다. 그러나 어떤 성취나 직위를 위해 목을 맨 적은 없었다. 살다 보니 어떻게든 된 것일 뿐. 여러 단체에 참가하면서 소신껏 발언하며 살아왔다. …..사실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큰 자산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자각과 자부심이다.…..살아오면서 어떤 갈림길에 썼을 때 늘 선택의 기준은 이 길을 가면 시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분의 정체성은 시인입니다. 그러나, 시인보다는 난독증·난서증 등의 문제를 갖고 괴로워 하는 학생을 조기발견하여 한 사람의 인격체로 세워주는 교직이 더 낫다고 보입니다. 그 만큼 교직은 하나님의 일에 가깝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것들 -난독증, 난서증 등 -을 펴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영혼이 자기중심으로 구부려진 사람들을 주님 앞에 인도하는 복음의 제사장들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살전5:14,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