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9/29-10/3)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여수 애양원(4)
잠언 22:2절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옛날 조선시대 유서 깊은 고을 어귀엔 어김없이 그곳을 거쳐 간 관리들의 선정비와 공덕비가 줄지어 있듯, 애양원 입구에도 화강암 비석 네 개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애양원 설립의 계기를 만들어 준 포사이드 선교사, 초대 원장 윌슨과 그를 이은 보이어와 토플 원장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 그것들입니다. 그 중에 포사이드와 윌슨 것은 모양이나 크기가 같습니다. 광주에 있던 나환자들이 동냥을 해서 세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석을 세운 날짜가 똑같이 1926년 11월 13일로 광주나병원이 철수 명령을 받은 지 나흘째 되는 날입니다. 나환자들은 이 비석을 세운 직후 여수 신풍리 애양원으로 ‘출애굽 여정’을 시작하였고 그때 비석도 함께 왔습니다. 보이어의 것은 1965년 9월 정년 은퇴하고 미국으로 들어갈 때, 토플 것은 1981년 한국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난 이듬해 세웠습니다. 애양원 입구의 네 비석은 소외된 이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의 흔적이며, 포사이드, 윌슨, 보이어, 토플 네 분에 대한 나환자들의 깊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인류애로 아프리카를 섬겼듯, 이들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여 섬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에게 맡겨진 나환자들은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양들이었습니다. 세상은 그 차이를 작게 여기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섬김의 동기가 하늘에 속한 증거가 됩니다. 그들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영원한 비석입니다.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요21:16).

전도서 5:1절 (1)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5장의 주제는 두 개이며, ‘언어와 예배’(1-7)와 ‘해 아래 세상’(8-20)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발걸음을 조심하라고 권고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거주지이므로 무심히 접근하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국 말기,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전 문 앞에서,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고, 오히려 “너희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러면 가나안 땅에 계속 살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렘7:1-4). 신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의 희생”을 바치기보다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성전에 가야합니다. ‘희생제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달래고 자신의 양심을 침묵시키려는 의도’가 문제입니다. 전도자는 그런 피상적인 예배의 위험성을 알고 있습니다. 시편 40:6절 후단, “당신께서 나를 위하여 귀를 파셨나이다” 라는 은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기 어려움을 감동적으로 표현합니다. 피터슨의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경청해야 하나 경청하는 귀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서 하나님은 곡갱이와 삽을 들고 두개골의 화강암을 파내어 안에 깊숙이 있는 생각과 마음에 접근할 통로를 여신다….그 결과는 성경의 회복이며, “눈은 귀로 변한다.” 이런 경청은 통상 공적 예배에서 이루어집니다. 예배는 ‘은혜의 방편’ 중 하나로서, 예배 중 하나님이 지혜를 가르치시며 바로 그때 우리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귀를 돌리고 율법을 듣지 않으면, 그의 기도마저도 역겹게 된다.”(잠언28:9,새번역).

전도서 5:1절 (2)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바보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자로서,  순종이 결여되어 있다”(머피). 어리석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책망이 필요하여 잠언에는 ‘책망’이란 단어가 12번 등장합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솔로몬의 열망이 느껴집니다. 구약의 지혜는 구약의 율법과 상통합니다. 본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표현은,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율법을 읽고 가르침으로써 받을 교훈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로핑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세의 율법을 듣는 것을 전혀 배제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본절은 성전의 이중적 기능을 드러냅니다. 하나는 율법과 그 율법을 통해 제사장들이 백성을 가르치는 장소이며, 다른 하나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백성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브리젠은, “야훼께서 어떤 장소에 자신을 나타내실 때, 이는 사실 항상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행해진다. … 그분의 임재로 영원히 거룩해진 성전에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거듭거듭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물리적 성전이 아니라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요4:24)안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물리적 성전이 아니라 ‘예배공동체’(고전3:16)와 ‘신자의 몸’(6:19)이라는 영적 성전에 거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과 공동체가 성전이라면 우리는 각자의 공동체와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할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며, 그 지침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8).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베이트 쉐아림의 공동묘지
마태복음 27:52,53절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두 개의 문들을 가진 집’이라는 뜻의 ‘베이트 쉐아림’ 도시는 주전 1세기경 건설되었으며 주로 유대인들의 거주지로 사용되다가 주후 352년 반란으로 황폐하였습니다. 가장 큰 유적지는 유대인 공동묘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2002).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대의 최고 법원인 산헤드린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도시는 번성하였습니다. 특히 주후 220년 산헤드린 최고 수장이었던 랍비 유다 하나시는 이곳에서 미쉬나를 편집하다가 묻혔는데, 실제 14번 무덤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됐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 주변에 무덤을 갖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이며, 유대교 전통에서는 메시야가 재림할 장소로서 그때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성전 근처에 묻힌다는 것은 경건하고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는 사회적 인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예루살렘으로 갈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베이트 쉐아림’을 공동묘지로 삼았습니다. 이곳에서는 바위를 깎아 만든 커다란 방을 지하에 만든 30여 개의 무덤들, 다양한 언어로 기록된 비문들과 함께 화려한 장식이 조각된 석관들이 발견됐습니다. 이들의 믿음대로 메시야가 과연 왔고 죽은 많은 성도들이 부활한 바 있음을 본절은 증언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의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증거를 배척하고 자신들의 율법해석만 고집하였습니다. 최후의 심판 때 이들은 모세오경의 저자인 부활한 모세와 다투어야 할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창세기 32:10절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본문은 에서를 두려워 하여 야곱이 드린 기도 중 감사의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야곱을 에서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강성갑 목사님은 기독교 농촌교육을 실현하고자 한얼 중학교를 세웠습니다(1948). 6.25 동란으로 부산에 피난 갔던 30살의 김형석 선생은 그 학교를 방문한 뒤 힘껏 도우리라 다짐하고 잠들었습니다(1950.8.1). 그날 밤 꿈에 평양에 있던 여동생이 나타나서 “오빠, 여기가 어디라고 오셨어요? 잠에서 깨어나는 대로 곧 떠나셔야 합니다.”라고 또렸이 말했습니다. 심상치 않다고 느낀 김선생은 급한 일이 있다고 말씀드린 후 떠났습니다. 그때는 다시 걸음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다음 날 조간 신문에 소위 “김해 지역 양민 학살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군이 명령한 불순분자 색출에 따라 강성갑 목사님 등 양민 200여명이 총살되었습니다. 김교수님은 회상합니다. “그분들의 죽음은 참 가슴아프지만, 그 급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 내신 것에 대하여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사건을 겪다 보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으며,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는, 내 마음대로, 내 뜻으로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움직이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것들은 그 무엇이든지 자랑할 것이 없고, 또 상실하였다고 분노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할 따름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