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2019.2.11 – 15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 – 1630)는 우주를 연구하면서, “나는 하나님을 좇아 하나님의 사고를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연구하는 이에게는 더욱 합당한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을 쫓아 하나님의 생각을 사고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은 바로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의사소통되는 것은 우리의 지성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생각을 읽는 것입니다. 과학적 조사와 성경 연구 모두에서 하나님을 좇아 하나님의 생각을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지성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창조주를 부인하는 것이며, 또 우리의 합리성의 중요한 일부인 인간성과 모순되는 것입니다. 지성의 적절한 활용이야말로 창조주를 영화롭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만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1:9-11)

Continue reading “매일말씀나눔”

매일말씀나눔

2019. 2. 7-8

예전이나 지금이나 복음주의 기독교계에 생겨난 심상치 않은 동향들 중 하나는 반(反)지성주의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하고도 심상치 않은 조짐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이런 예화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호주 멜버른 대학 출신의 한 학생이 스웨덴에서 개최된 수련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수련회장에서 그는 조국에 학생 소요가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 학생은 당황하여 손을 쥐어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주에 돌아가야 하는데,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일어난 걸까?” 이 학생은 지식 없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조국에 돌아가 소요에 가담해야 한다고 결정하기 전에 소요의 전모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어야만 합니다. 성찰 없이 행동에 헌신하는 것은 광신주의이며, 헌신 없는 성찰은 모든 행동을 마비시키고 맙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성찰과 헌신 둘 다이지, 성찰 없는 헌신이나 헌신 없는 성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4:20에 나오는 말씀을 우리는 잘 묵상해야만 합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같은 구절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을 금하는 동시에 어린아이가 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입니다. 악, 사악함 등에 대해서는 갓난아이처럼 무지하고 순결하고 미숙해야만 하나, 지성과 사고의 영역에서는 어른이 되어야만 합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16:19).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2019. 1. 28 – 2.1

오늘부터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가지고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1980년 영국에서 개최된 그리스도인 의대생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저자가 강의한 것을 담고 있습니다. 목차는 1장 온전한 인격(인격), 2장 직업과 소명(소명), 3장 사회적 책임(참여), 4장 세상과 구별된 삶(윤리) 그리고 5장 세상을 품은 그리스도인(선교)의 다석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제1장 온전한 인격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예수님의 주권적인 사랑의 통치 아래 복종시키는 것으로써,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헌신은 부분적이지 않고 전체적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평일에는 비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집에서는 그리스도인이고 직장에서는 비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란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삶은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사적인 영역이나 공적인 영역에서 그리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온통 번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서12:1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제단에 바쳐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삶의 여러 부분이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말 안에 통합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2019. 1. 21 – 25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네 번째 그리스도의 모습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신 모습입니다. 그분은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고”(히5:8)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복수하시는 대신 그분은 자신과 자신의 사정을 온 인류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맡기셨고(벧전2:23),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불순종하라는 마귀의 무모한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참고 마4:1-11). 이렇듯 그분의 삶과 사역은 시종일관 신뢰와 순종으로 점철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께서 신약성경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셨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셨고, 원수를 사랑하셨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셨습니다. 겸손, 희생적인 섬김, 보복 없는 용서, 믿음과 순종,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나사렛 예수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으니 이제 그것을 반사해야 합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5-16).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2019.1.14 – 18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드시는 좋은 방법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분과 닮게 되고, 사랑하는 것을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예로서 이번 주일 설교에 언급한 크리스웰 목사님의 목회 경험담을 들 수 있습니다. 크리스웰 목사님은 달라스 first Baptist church(제일침례교회) 에서 오랜 동안 목회를 하셨습니다. 어느날 이 분이 궁궐같이 호화로운 집을 가진 집사님의 집을 방문 하였습니다. 그 집사님의 집 서재에서 어떤 그림 앞에 이르렀을 때 그 집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저분은 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께서 내 아주 어린 시절 돌아가셔서 나는 결코 그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내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주님을 먼저 뵈옵고 나서 제일 먼저 내 어머니의 얼굴을 보러 가기를 원합니다.” 이때 크리스웰 목사님은 회고하기를, “저것이 당신의 어머니입니까? 저것은 단지 종이와 잉크로 그려진 그림일 뿐입니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그림은 그 집사님의 어머니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날인가는 천국에 갔을 때  그 어머니의 얼굴을 직접보고 함께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꿈꾸며 고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집사님이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어머니를 그리워 하고 감사하듯이 정확히 우리가 주님에게 대한 것도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단지 성경에 기록된 사도들의 증언을 믿고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사랑하며 고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과의 교제를 실제로 나누면서, 언젠가는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표상을 우리는 마음에 그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여야만 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과 최초의 회심과 지속적인 성화와 최후의 영화 가운데 무엇을 생각하든 부각되는 주제는 동일합니다. 각 단계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 혹은 그분의 ‘형상’이 언급됩니다. 완성된 구원이란 바로 그분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지혜는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들려올 때가 많은데 , 이 내용도 아이들의 노래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되고 싶어요. 사랑하는 나의 예수님 나 날마다 예수님처럼 그렇게 자라고 싶어요.” 이렇게 그리스도를 닮는 일은 중요한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서 보기 원하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은 또한 이를 지켜보는 세상이 보기 원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입술에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말하고 그분을 노래하고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을 증거합니다. 따라서 세상은 그토록 우리의 입을 떠나지 않는 예수님을 우리 안에서 볼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주장과 행위 사이의 괴리, 우리가 말로 선포하는 그리스도와 행동으로 보이는 그리스도 사이의 널따란 간격만큼 기독교의 증언을 방해하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보다 먼저 우리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요일 3:18-19).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진젠도르프 백작은 열아홉 살 때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졸업하였습니다. 18세기의 모든 귀족들이 그랬듯이 대학을 갓 졸업한 그도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뒤셀도르프에 있는 어느 화랑에 갔다가 17세기 초의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페티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그림에 마음이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는 작품으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한 후에 무리 앞에 도로 내놓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예수님은 자주색 옷을 걸치고 가시 면류관을 쓰고 밧줄에 묶여 있습니다. 진젠도르프는 그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시선이 그의 심장을 꿰뚫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림의 위아래에 라틴어로 쓰인 그리스도의 말씀은 꼭 그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내 너를 위하여 이렇게 했거늘 너 나를 위하여 무엇하고 있느냐?” A.J. 루이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날 거기서 젊은 백작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자신도 ‘그 고난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평생 그분을 섬기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목표는 결국 예수님을 증거하고 우리가 그분의 제자인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진젠도르프 그리고 지난 세월 수많은 예배자들이 그러했듯이 2019년을 맞이하는 우리 역시 이 그림 앞에 서서, 주님이 우리에게 큰 사랑을 베푸셨으니 우리도 주님을 위해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0-12).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2018. 12. 24 – 28

이제 내일이면 2018년도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성탄절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이 태어나신 그 날에 하늘에 있는 천군천사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그리고 자신들이 늘 경배하던 그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들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그 겸손과 신비를 하늘의 존재들은 알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날 밤에 한 천사가 베들레헴의 인접 지역에 있는 들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목자들이 밤에 양을 치고 있었는데 그 들에 있는 양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장소에서 기르는 양들과는 달리 그 양들은 성전 제사를 위한 양들로서, 만백성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드릴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양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목자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하자 홀연히 천군들이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 오셨던 것입니다. 기쁜 성탄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찬송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으로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예수님 때문에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3-14).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2018. 12. 17 – 21

선교사 헨리 마틴은 1805년에 영국을 떠나 인도에 갔으나 후에 이란으로 옮겨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의 훌륭한 학자였던 그는 힌두어와 페르시아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였는데, 그 두 언어를 사용하는 무슬림들에게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헌신은 어찌나 강렬하고 뜨거웠던지 예수님을 욕하는 말을 들으면 자신을 찌르는 비수로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가 31세의 나이로 요절하기 1년 전쯤에 시라즈에서 누군가 그의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페르시아 왕세자가 전투에서 러시아 그리스도인들을 하도 많이 죽여서 그리스도가 무함마드의 옷자락을 붙들고 중단을 애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무함마드 앞에 무릎을 꿇었다니 그것은 어이없다 못해 충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 헨리 마틴은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그 말이 내 영혼을 쩔렀다. 예수님이 영광을받지 못하신다면 나는 견딜 수 없다. 그분이 늘 그렇게 욕을 입는다면 그것은 내게 지옥과 같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자신이 느낀 부끄러움과 놀람이 살아 생전에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정도로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삶에 동화시킨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2018. 12. 10 – 14

우리는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있고, 그분의 가르침이라는 견고한 기초 ‘위에’ 우리의 삶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순종의 이론적 근거를 이해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순종을 명하시는 분의 독특성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입니다. 어부 시절의 시몬 베드로가 좋은 예입니다. 갈릴리 호숫가에 뿌옇게 먼동이 틀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호수에서 어부로동업하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밤새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호반에서 맥없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배를 빌려 띄우고 그것을 강단으로 삼아 사람들을 가르치신 후에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이르셨습니다. 시몬은 밤새 노력했지만 잡지 못하였다고 항변하였는데 이는 어부로서 아버지에게 배우고 고된 경험으로 다져온 전문 지식으로 그분의 제안에 저항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명하신 분은 다른 동료가 아닌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베드로의 순종의 결과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혀 다른 배를 불러야 했고, 결국 두 배 모두 고기의 무게로 가라앉기 직전이 되었습니다(눅5:1-11).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순종이 다른 모든 순종과 어떻게 차이가 나겠습니까? “그(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롬1:5-6)”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