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함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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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자신을 점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으며, 생각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은 잘 알아챌 수 있지만 자신 안에 있는 그런 성향은 간과해 버리곤 합니다. 그러므로 자아의 가치를 고양하거나 도피주의적인 혹은 자기 탐닉이나 자기 과장을 유도하는 느낌을 하나님의 인도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런 느낌들을 간파하여 그것을 믿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이성간 느낌의 경우에 특히 더 그렇습니다. 생물학자이자 신학자인 바클레이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종종 사랑에 빠지는 것에 수반되는 기쁨과 행복감은 쉽사리 양심을 침묵시키고 비판적 사고를 억제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결혼하도록이끌림 받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그들은 주님이 아주 분명하게 인도해 주셨다고 말할 것이다) 말하는가! 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묘사하는 것은 호르몬의 신비로운 균형 상태로서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극도로 쾌활하고 행복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그런 특정 행동을 왜 옳다고 느끼는지 물어야 하며, 스스로 이유를 대보아야 하는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자문을 받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139:23-24).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함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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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특정인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교만과 자기 기만을 깊이 인식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것이 있음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때로 선의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그럴 듯하게 설명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정신과 양심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기만적인 사람들에게 홀려서 정상적인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재능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 그런 위험을 알고 자중하려 해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천사나 선지자로 취급하여 그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탁월한 사람들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반드시 옳은 것 또한 아닙니다! 그들과 그들의 견해를 존중해야 하지만 우상화해서는 안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5:21).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함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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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라는 말은 시편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며, 하나님이 종종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도록 하시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행동하는 데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미래에 대하여 알려주신다거나, 한 번에 한 걸음 이상을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의심이 가거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행동이 필요할 때가 되면, 그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편1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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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인도를 받았다고 여긴 후에 평탄한 길을 걷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인도를 받았다는 증거는 아님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것 같은 길을 따라왔으나 이제 그 길을 따르지 않았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많은 새로운 문제들에 빠질 수도 았습니다. 고립, 비난, 친구들의 배신, 온갖 종류의 좌절과 같은 것들입니다. 문제에 빠지게 되면 그들은 즉시 염려하며 선지자 요나를 상기하곤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고 동쪽으로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나고 바다에 던져서 물고기의 밥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요나의 잘못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일어난 일인데 자신을 요나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지혜로운 사람들은 새로이 겪는 어려움을 보면서 자신이 인도받은 길을 주의 깊게 검토해 보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어려움은 언제나 우리의 앞길을 검토해 보라는 부르심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반드시 곁길로 벗어나 있다는 표시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SBC매일성경

2017/1/9~1/13

성경은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명백한 약속을 담고 있으며 우리는 그 약속을 통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32:8). 이사야 58:11은 만일 백성들이 회개하고 순종하면,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겠다는 확신을 담고 있습니다. 인도를 주제로 하는 시편25편은,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8-9,12)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잠언3: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 가운데 공통점은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할 때만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뜻을 가르치사 우리로 깨닫게하신 후에야 우리가 그 뜻을 행할 수 있고 그 다음에 우리를 당신의 뜻 가운데 인도하실 수 있다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신약에도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동일한 기대가 나타납니다. 골로새 교회 사람들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게 해 달라는 바울의 기도와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게 해 달라는 에바브라디도의 기도( 1:9; 4:12)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알릴 준비가 되어 있으시며 기꺼이 알리신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라는 말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삶을 안정되게 하는 행동에 대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그리하면 주시리라라는 야고보 1:5의 약속은 사실상 인도에 대한 약속입니다. 또한 바울은 너희는 이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 라고 권면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는 것이고 그 지혜는 역시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하여 가르치는 성경의 진리로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들이 무지와 무능으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해 줄 책임이 육신의 부모에게 있다면, 하나님의 가족도 그와 같다는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좋은 가르침을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주고 계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으로 구하는 모든 자에게 선한 것을 주실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인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이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이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7:11-12)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접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인도를 받기 위해 가장 선결되어야할 전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교훈이란 교리와 윤리, 하나님의 역사와 뜻에 대한 포괄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며,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이란 이 교훈을 우리의 무질서한 삶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는, 즉 하나님의 길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삶은 약속된 결과입니다. 이런 삶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삶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궁극적인 목적이요, 열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들 중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8:29).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성경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의 인도는 특히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 구원의 방법, 영생의 약속등에 대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올바른 믿음을 가지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가 하신 일이 어떤 것인지, 그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사죄의 은총과 영생의 확신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심은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기름부으심이요 가르침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0, 27)

SBC 매일성경

오늘부터는 제임스 페커 박사의 하나님의 인도라는 IVP소책자를 중심으로 묵상하기로 하겠습니다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인도와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습니다그 이유는 하나님이 정말 자신을 인도하시는지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라하나님이 분명히 그들을 인도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인도하실 수 있으며또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또한 책을 읽거나 친구 혹은 설교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도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자신의 어떤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또 다른 경우에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인도하시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염려합니다그런데 그 염려는 여러분의 안전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올바른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하나님의 인도를 논의하는 올바른 맥락은 우리 영혼을 망치도록 놓아 두지 않으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우리 안전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우리의 안전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한편하나님의 인도가 실재한다는 믿음은 두 가지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첫째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재한다는 것이며둘째는 하나님이 우리와 의사소통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성경은 이 두 사실을 잘 뒷받침해 줍니다이 두 가지 사실을 뒷받침할 성경적 사건은 무엇일까요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1:9-11).

 

하나님의 계획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성서적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사건입니다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시기 전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5:13-14) 하셨습니다이런 계획을 따라 야곱의 집안 70명이 애굽으로 들어갔고 그 후 사백 삼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으로 성장하였고 하나님은 이들이 애굽에 종 살이를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그리고 계획한 세월이 차가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 이스라엘 이백만 명을 이끄사 애굽을 나오게 하시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바다와 사막에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또한예수님의 모든 지상 사역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4:34). 하나님은 바울을 위한 계획도 가지고 계셨습니다(21:14; 22:14; 26:16-19).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자녀들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8-29).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셨다는 성서의 많은 구절과 사건을 믿은 뒤에도 한 가지 의문은 그분이 당신의 계획을 우리에게 전달하실 수 있을까요물론 그렇습니다인간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역시 의사소통을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과 계획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셨습니다하나님은 예수님과 바울을 인도하셨습니다사도행전은 서너 번에 걸쳐 이러한 상세한 인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광야로 보내사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는 빌립(8:26, 29),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들이도록 지시를 받은 베드로(10:19-20),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내라는 명령을 받는 안디옥 교회(13:2)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이렇게 꿈과 환상과 직접적인 말을 통한 인도는 사도들과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조차 예외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들은 적어도 하나님이 자신의 종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시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6). 

 

오늘은 하나님의 인도라는 주제를 잠시 벗어나서 우리가 어떻게 튼튼한 믿음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튼튼한 믿음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무슨 일을 하셨느지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면 증거에 기반을 두어야만 합니다우리가 증거를 가지려면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우리의 근거는 바로 성경입니다우리는 성경이 설명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의 집으로 인도받은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좋은 소식 즉복음을 설명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님이신 사실을 먼저 언급한 뒤어떻게 유대와 갈릴리에서 전도하시며 귀신을 내쫓으시는 등 착한 일을 하신 사실그리고 유대인들이 로마사람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죽인 사실과 부활하신 사건을 언급하였습니다그리고 자신들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 함께 식사를 하였고이 분이야말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재판장으로서 이 분을 힘입어야만 죄사함을 받는다는 진리를 선포한 것입니다이런 자세한 사항을 베드로는 마가에게 구술하였고 그래서 기록된 것이 마가복음입니다당연히 성경을 읽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우리 마음과 삶을 형성시키지 않고는 확고한 믿음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SBC 매일 큐티

이미 우리가 최순실 사건으로 세상이 얼마나 도덕적 혼란과 부패의 수렁에 있는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상은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 자들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믿음 안에서 걸어온 그 이상으로는 사람들을 인도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주님과 함께 항상 그 다음 단계를 밟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면, 우리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이며, 모든 상황에서 상처받은 세상에 하나님의 인도에 따른 확신에 찬 변혁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님의 대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0-21).

 

유혹을 이기는 비결 중의 하나는 좋은 습관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습관이란 특정한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인간은 모두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은 건강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반복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 삶 속에 훈련된 패턴입니다. , 좋은 습관은 행동으로 표현되도록 훈련된 최선의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잘못된 습관은 태만에서 생깁니다. 우리는 단순히 잘못된 일을 일관성 있게 반복하여 나쁜 습관을 만들곤 합니다. 잠언 25:28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개발하고 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손쉽게 정복당하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 영역의 방어벽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머지않아 다른 영역도 무너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6:12-13). 

 

우리의 믿음의 방벽이 뚫리면 우리의 신앙적인 양심을 괴롭히던 것들을 더 이상 꺼리지 않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되는 날이 오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진짜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반면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보호해 주는 방어벽에 벽돌을 더 쌓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좋은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경건한 반응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유혹하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기보다는, 애를 쓰며 노력하지 않아도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을 훈련하면 됩니다.그렇게 해서 한 영역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면 다른 영역의 통제도 성공적으로 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곧 튼튼한 방어벽의 보호를 받는 강한 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좋은 습관은 나쁜 습관 못지않게 깨뜨리기 어렵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6: 16).

 

유혹에 잘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이 말은 어쩌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실제로 한 번도 시험받지 않은 영역들에서는 자신이 강하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리스도께 깊이 헌신한 어떤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과 결혼하였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혼 생활에 절대적으로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두려는 유혹은 그녀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수련회 첫날 아침 그녀는 같은 소그룹의 한 기혼 남성에게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가 겪은 결혼 생활의 문제와 유사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이 가지지 못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점심 식사를 하였고 이후에 저녁 식사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그는 그녀를 호텔 숙소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방 앞 복도에 함께 서 있는 순간 그녀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어제만 하더라도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 지금 현실이 되어 그녀를 강하게 유혹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진 뒤 바로 그들은 소그룹을 바꾸고 다시는 서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그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무서워 하지 않던 길에서 들짐승이 당신을 덮친다라는 중국 격언과 같이, 우리의 삶에서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는 영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우리의 강점에 대해 기억할 또 한 가지는, 강점에는 어두운 부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소 사적이고 불경건한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얻기 위하여 우리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유혹은 보통 우리의 강점이나 재능이 있는 분야에서 발생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자신의 강점과 재능을 이용해 이루고 싶은 유혹은 무엇이 있을지 자문해 보십시오.이것은 매우 효과적인 유혹에 대한 방어 전략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배워야만 합니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4:3-4).

SBC 매일 성경

2016. 11. 28 12. 2

톰 아이젠맨은 이렇게 유혹을 이긴 자신의 사례를 적고 있습니다. 저는 강연을 위해 혼자 여행을 가서 호텔에 투숙할 경우 성적인 순결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 서원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절, 저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유료 시설 채널의 성인용 프로그램을 즐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년 전 이러한 제 자신에 대해 슬퍼하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지속적인 순종을 위해 도움이 되는 전략을 개발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호텔 방에 들어서면 저는 제일 먼저 텔레비전의 유료시청채널을 지우는 코드를 리모콘에서 찾아냅니다. 아직 영적으로 깨어 있고 예민한 상태에 있을 때 그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가족 사진을 전부 꺼내어 탁자 위에 세워 놓고 모든 가족이 저를 지켜보도록 합니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전 아내의 손을 잡고 내가 돌아 오면 가족을 떠나있을 때 순결하게 생활하였는지 물어보게 합니다. 그의 아내는 항상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가 집에 돌아오면 즉시 상횡이 어떠했는지 묻는다고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유혹과 함정들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범죄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어 그때마다 치안을 유지하지 못한 경찰을 탓하곤 합니다. 이 배후에는 이 세상의 어두움의 지배자들인 마귀와 그 부하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는 좋은 방법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세계에 끊임없이 드러내며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이신 주님으로부터 힘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해야 하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간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 갈수록, 그분이 누구시며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이 이루실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사탄에게 속을 가능성이 낮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14:38).

 

성경은 사탄이 존재하며 그의 주된 일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악한 그는 간교하고 영리하며 속이는 자이고 거짓말하는 자입니다(창3:1; 행 13:10; 요8:44). 사탄이 우리를 하나님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성도들로 하여금 사도행전적인 믿음으로 무장하게 하고자 전 교회적으로 사도행전 읽기를 시작하여 40일 동안 40번을 완독하였습니다. 그러자3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한 무리는 별 반응이 없이 무덤덤하였고, 다른 한 무리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삶을 새롭게 변화하는 사람들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이단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이단으로 변질 된 사람은 함께 교회의 가이드를 따라 읽은 것이 아니라 혼자 집에서 읽고 잘못된 해석에 사로잡혀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1-12).

 

사탄이 우리를 유혹에 빠뜨리기 위해 시도하는 첫 번째 작업은 우리를 죄에 대한 대화에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이나 의미에 대하여 혹은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의 최선의 유익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에 대하여 의심을 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로.라고 말씀하시더냐? 그의 전략은 우리가 의심하거나 합리화할 기회를 많이 주고 우리의 욕망을 매력적이지만 금지된 대상이나 생각 혹은 경험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 전략에 빠진 전형적인 사람은 바로 하와입니다(창3:1-5). 사탄과 죄에 대한 대화에 끌려들어간 하와는 종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그러면 우리가 이 단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은 무엇일까요?

 

사탄이 하와에게처럼 우리에게 죄에 대한 대화를 걸어온 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은 그러한 대화를 우리 마음에서 몰아내고 대신 하나님과 대화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논쟁에서 사탄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그런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애초에 그런 논리를 거부하십시오. 완전히 끊어 버리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어떤 것이 당신의 인생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식의 잘못된 생각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악한 것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혹은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누구에게 빼앗기고 있으며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매일큐티

11/14/16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맺는 의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성령님의 열매는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동안 성령님께서 일생에 걸쳐 맺어주시는 열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수고와 능력의 역사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는 불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된 모습에 낙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11/15/16

야고보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야고보는 유혹이란 우리 내면의 욕망과 외부 세계의 어떤 대상이 결합한 산물이므로,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고 그 악한 욕망에 따라 행동할 때 죄를 낳게 됩니다. 죄가 자라면 사망을 낳습니다. 로마서 6:23은 죄의 삯은 언제나 사망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죄가 삶 가운데 자라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간입니다. 아간은 여리고 성에 있는 어떤 물건도 전리품으로 가질 수 없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히 둗고도 그만 금덩어리와 페르시아산 외투를 보고 탐심이 생겼고 그 결과 그와 그 가족은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심판의 한 모형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며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11/16/16

이기적인 필요나 욕망 그리고 세상이 제공하는 것들은 우리를 쉽게 유혹에 빠뜨립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유혹의 과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우리 삶 속에 악한 어부가 활동하도 있다고 여깁니다. 악한 어부는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과 세상을 결합시키고 그것을 활성화시킵니다. 이 악한 자는 한 번 잡은 물고기를 절대 놓아 주려 하지 않습니다. 밧세바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간음 죄를 범한 다윗 왕은 이의 결과를 피할려고 애를 쓰다가 좌절되자 결국 충신인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이도록 명령하기에 이릅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힘을 다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11/17/16

야고보는 악한 자가 한 번 잡은 물고기를 절대 놓아 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낚시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낚시 고리에 끼워져 있는 미끼는 물고기를 유혹할 것이고 한 번 걸려들게 되면 그 물고기는 자기 의사에 반하여 끌려 물밖으로 나와 죽게 됩니다. 이와 같이 유혹을 받는 자는 끌려 미혹됩니다. 즉, 우리는 굶주려 있던 차에 마침 미끼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미끼에 끌리게 되고 마침내 그것을 입에 뭅니다. 우리는 욕망 때문에 낚싯줄에 걸리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는 곧장 그리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유혹에 굴복할 때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손상됩니다. 그러므로 상습적인 죄로 굳어지기 전에 이런한 과정을 끊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11/18/16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바울이 죽기 전에 남긴 증언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이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싸움입니다. 물론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원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 강인한 성품을 키워 가도록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성품을 좀먹고 교회의 복음 증거를 무력하게 하려는 위협적인 유혹에 맞서 씨름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이어 성령님 안에서 새로워지는 법을 배워야 하고, 우리의 적이 어떤 존재인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비전을 가지고 좋은 습관을 개발하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됩니다. 다음 주부터는 이에 대하여 상술하도록 하겠습니다.  

SBC 매일큐티

16/10/31

어느 심리학자가 한 마을에 가서 집집마다 10달러씩을 문 앞에 두고는 관찰을 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문 앞에 놓여 있는 10달러 지폐를 발견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튿날 또 지폐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는 똑 같은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더니 며칠 지나서는 당연하게 자기 돈을 집듯 집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학자는 지폐를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지폐를 집으려 하다가 돈이 없는 걸 발견하고는 거의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내 돈 어디 갔어?” 우리가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고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 감사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16/11/1

어느 나라의 왕이 백성을 사랑하여 지혜로운 신하들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백성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세상의 지혜를 정리하도록 하시오.”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지혜를 모아 백성을 가르칠 수 있도록 12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왕에게 가지고 나아오니 왕이 하는 말이 “12권의 책은 너무나 많으니 그것을 더 줄여서 오시오.” 신하들은 지혜를 모아 한 권으로 줄였습니다. 왕은 또 말하기를 “아직도 많으니 더 요약해 오시오.” 세상의 지혜를 줄이고 정리한 신하들은 마침내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하였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There’s No Free Lunch!)” 그렇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 역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라는 가장 큰 대가를 치루고 확보하신 것입니다(벧전 1: 18-19). 그러므로 우리는 값으로 사신 바 되었으니 우리의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16/11/2

미국의 한 중환자 병동에 아주 심한 화상을 입고 사경에 헤매이는 십대 초반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자원 봉사를 나온 대학생이 이 소년의 기록을 보고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영어 문법의 동사 변화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정을 받은 이 소년의 상태가 점점 더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두 주가 지나면서 완전히 고비를 넘기고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의 붕대를 풀던 날 소년에게 그 원인을 물으니 소년이 하는 말이 놀라웠습니다. “사실은 저도 가망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는데,한 대학생 형이 들어와서 다음 학기 영어 시간에 배울 동사 변화를 가르쳐 주기 시작해서 놀랐습니다. 그 형은‘네가 나아서 학교에 돌아가게 되면 이것들을 알아 두어야 공부에 뒤떨어지지 않을 거야’ 라고 하여더군요. 그때 저는 확신했죠. ‘아, 의사 선생님들이 내가 나을 수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 다음 학기 동사 변화를 가르쳐줄 리가 없지.’ 그때부터 마음이 기쁘고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소망은 이런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다시 오실 때 그것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소망을 붙잡고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6/11/3

미국의 어떤 부인이 병으로 그만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실명한 아내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 이제 나도 내 일을 좀 해야 하니까 내일부터는 당신 스스로 회사를 다니도록 합시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말을 듣자 부인은 이를 악물었습니다.”긴 병에 효자 업다더니 이제 나에 대한 사랑도 식었구나. 좋다. 내 힘으로 해볼 테다.” 부인은 다음날부터 혼자서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넘어지고 부딪치고 다치고 길을 헤매고 외롭고 힘들었지만 2년 동안 그렇게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늘 타고 다니는 버스 기사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는 부인만큼 남편의 사랑을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남편께서는 매일 부인의 뒤를 조용히 따라 와서 꼭 뒷자리에 앉고는 부인이 회사의 문 안에 들어설 때까지 지켜보고는 돌아가시더군요” 부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어느새 홀로 설 수 있게 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님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혼자서 맞이하는 것 같지만 늘상 주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설 수 있도록 도와 주고 계십니다.

SBC매일 큐티

2016. 10.24 – 28

하나님께서 세우신 조직이 3개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입니다. 가정은 유일하게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에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이 가정은 사회의

기본이며 가정의  기본은 가족입니다. 또한 가족의 기본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따라서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다이아나 루먼스의 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일 내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음악가 브람스는 효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트럼펫주자였는데 한번은 굳이 아들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트럼펫주자를 하겠다고 우겼습니다. 브람스는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연습을 시작하였지만 워낙 아버지가 틀리니까 참다못해 연습을 중단하고 한마디 하려고 할 때 그의 아버지가 먼저 나서서 하는 말 “애야,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 잘 아니까 제발 조용히 해다오”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배려하는 브람스는 한번은 아버지에게 악보를 주면서 “아버지 어려우시면 이 악보를 보도록 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준 악보를 그냥 보관하다가 어려움이 닥쳐 아들의 말을 기억하고 악보를 열어보니 그 속에 상당한 돈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지방의 작은 마을에 조그마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바로 그 마을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온 70대 노부부의 금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집은 깨끗하게 정돈되었지만 거실 탁자 위에 깨진 꽃병이 놓여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 속에서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 세월이 참 빠릅니다. 남편과 결혼한지 벌써 50년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제가 이때까지 아무 탈 없이 결혼 생활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 탁자 위의 깨진 꽃병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실망을 느낄 때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빠져 괴로울 때 저 꽃병이 나를 지켜주었지요. 51년 전 늠름한 청년이었던 남편이 제 방에서 청혼을 하였습니다. 그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지요. 감격한 나머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그만 탁자 위의 꽃병을 깨고 말았답니다. 저 깨진 꽃병은 그날의 내가 느낀 감격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 감격을 늘 되새기기 위해 꽃병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고 있답니다.” 결혼은 가정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이 결혼을 거룩하게 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늘 기억하여야 합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매우 슬퍼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던 4살박이 꼬마가 다가가서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앉아 있다가 돌아온 아이에게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무슨 말씀을 드렸냐고 물었습니다.꼬마는 대답하였습니다. “아무 말도 안했어요. 실컷 우시게 도와드렸어요.”옥한음 목사님이 목회를 하실 때 사랑의 교회 여집사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조문을 하러 장례식장에 가셨습니다. 도착했을 때 무슨 말로 위로를 하여야 할 지 모르겠더랍니다. 그래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함께 있다가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그 미망인에게 편지가 오기를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함께 계시다가 가신 옥목사님이 가장 고마웠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참된 사랑과 위로는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친족이나 이웃 그리고 친구들을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1845년 영국에서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뱃길을 탐험하기 위해 프랭클린 원정대가 출항하였습니다. 선원들은 두 척의 배에 항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많은 물건들을 실었습니다. 1,200권의 책들, 고급 도자기, 순은제 식기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조 연료로 사용되는 석탄은 겨우 12일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배는 얼음 바다 위에서 좌초되었고 몇 달 후 프랭클린 경우 사망했습니다. 선원들은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얼음 위를 걸어서 안전 지역을 찾아나섰으나 결국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 중에 한 그룹은 두 명의 장교로 구성되었는데 큰 썰매를 끌면서 얼음판 위를 65마일이나 이동하였습니다. 후에 수색대는 그들의 시체와 그 썰매 위에 가득 실려 있는 은식기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끌고 다니다가 자신들의 목숨과 바꿨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쫓으면서 주님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SBC매일큐티

마태복음 25장 31-46 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매우 엄숙한 이야기를 직접 묘사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행위와 관계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배웠는데 다시 오신 주님은 지극히 작은 형제를 돌보아 주지 않은 행위를 가지고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댜고 믿는 것은 올바른 신앙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신약 기자들은 우리의 믿음이 진실하고, 살아 있으며, 구원받은 믿음이라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선한 행동으로 표출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미 언급된 마태복음 25:31-45에 나오는 비유에서 주님은 자신에 대한 우리들의 진정한 태도는 그의 형제들(이는 먼저 그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2:18)고 외쳤으며, 바울은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5:6)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을 확고하게 보여 주는 유일한 증거는 사랑에서 나오는 선행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선행은 우리의 믿음의 표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칭의)은 믿음만으로 이루어지지만, 우리의 심판은 행위, 즉 선행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네가 진정으로 나를 믿었느냐 그렇다면 나를 쫓아 살았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의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바로 여기서 진정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신칭의(이 말은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뜻이며, 의롭다함을 얻는다라는 뜻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죄인은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며 오직 의인이라야 바른 관계를 하나님과 가질 수 있습니다.)의 교리를 깊이 연구하고 강조한 로마서에서, 또한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영생을 주실 사람은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롬2:7)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크 가이피어스(Mark Guypearce)가 한 어떤 사람의 믿음이 그를 이기심에서 섬김으로 구출해 내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분명 그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출해 내지도 못할 것이다.라는 말은 정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당신의 본을 따르라고, 선을 행함으로써, 즉,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그러한 사랑의 선행이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 즉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우리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참된 예수님을 딸고 그의 발자취를 좇으려 한다면, 선행을 할 만한 모든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선행은 우리 사랑이 진실됨을 보여 줄 것이며 그 사랑은 우리 믿음이 진실됨을 보여 줄 것입니다.

 

SBC 매일큐티

2016. 10. 10 – 14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한 주님의 가르침에 우리 역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사람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바리새인들의 유희이지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때때로 다른 신앙(정령주의자, 불교도, 이슬람교도, 힌두교도등)을 가지거나 다른 인종 혹은 국적의 사람들을 돕는 것을 꺼리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는 우리가 베푸는 도움이 복음에 마음을 열게 하는 수단이 아닐 경우에는 그들을 섬기길 꺼리지는 않는가 역시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들과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행의 동기가 순수한 관심이 아니라면, 우리의 수고는 무가치하게 되고 심지어 하나님을 욕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물질적 축복과 영적 부요함 둘 다를 나누게 하는 것이 주님이 명령한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선행에 대한 두 번째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하느냐, 즉, 어떻게 섬길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의 섬김은 강도 만난 자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강도를 만나 야만적으로 폭행을 당해 벌거벗겨지고 피를 흘리며, 기진맥진해 거의 죽게 된 그가 긴급히 필요로 한 것은 바로 상처를 치료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은 그의 상처를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돌보아 주고, 필요한 부대 비용을 주막 주인에게 더 주었습니다. 이때 그는 유대인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부었지만 그의 주머니에 전도지를 넣지는 않았습니다. 최근까지 교회 내에서 복음 전도와 사회 활동의 우선순위에 관한 논쟁이 있었는데, 사실 이 논쟁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양자택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양자간의 우선순위의 결정은 우리의 이웃이 처한 긴급한 필요가 무엇인가에 의해 되는 것입니다. 실로 이 두가지는 모두 이웃 사랑의 진정한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이웃은 누구이겠습니까? 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사랑할 이웃은 육체 없는 영혼이 아니고, 영혼없는 육체도 아니며,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격리된 한 개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육체적, 영적, 사회적 존재로 만드셨고, 따라서 우리 이웃은 사회 속에 있는 영적, 육체적 존재입니다. 우리 이웃의 영혼이나 육체나 사회성 중 한 측면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읏울 사랑한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여셨다는 죄사함의 복음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원의 소식을 우리의 이웃과 나누어야만 합니다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우리 할 바를 충분히 다 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부 사람들이 복음전도에 대하여 매우 어리석고 편협한 생각을 품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오직 구세주일 뿐이며 인간의 창조주는 아닌 것처럼, 예수님이 단지 설교만 하셨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시거나 병든 자를 치료하신 적은 결코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적이고 영원한 문제가 물질적이고 일시적인 문제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며 예수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시고 두 가지를 병행하셨습니다(눅 8:1). 그리고 주님은 어느 한 가지를 한다는 것이 다른 일을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이나 구실이 되지않았습니다. 이 둘은 인간들을 향한 그의 깊은 동정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표현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에 새기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 중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주님은 선행을 그분의 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셨는데, 이 기준이야말로 그분의 모범과 가르침의 중요성을 날카롭게 인식하게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자신의 재림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이 그분 앞에 모일 것이며, 심판의 기준은 사랑의 선행이 있느냐 없느냐가 될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마 25장 31절 이하). 이 구절은 종종 ‘양과 염소의 비유’라고 불려집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비유가 아니라 구원 받은 자들과 잃어버린 자들을 양과 염소에 비유한 것을 제외하면, 그것은 최후 심판의 매우 엄숙한 이야기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