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그분의 육신 안에서 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내리시고 죽음이라는 벌을 집행하신 목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뜻인 율법(도덕법)이 실천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칭의(의롭다고 선언하심)는 성화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즉 불의한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심판을 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막중하신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결단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능력과 인도를 받아야만 비로서 자기를 부정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성화 즉 거룩한 삶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거룩한 삶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으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성육신), 그 아들의 육신 안에서 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속죄).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성화가 우리 안에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죄의 삯을 치루신 것입니다. (2) 거룩이라는 것은 율법의 의, 곧 율법이 우리에게 주장하는 의로운 요구들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4절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율법(도덕법)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율법 폐기론자들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의 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3) 거룩은 성령님의 사역이기에 우리는 성령님께 순종해야만 육신(자기 중심성)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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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에베소서 6장 1-4절
오늘 본문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정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져야만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자녀들은 고등학교 이상 결혼 전의 청년들을 말합니다. 청년들은 마땅히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공경하여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축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기업에서 중시하는 인성 역시 부모공경을 해 본 사람만이 제대로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이 계명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는 우선적인 목적은 자녀가 세상에서 잘되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경외하도록 만드는데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여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자녀들은 자연히 세상에서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라는 책을 쓴 이소영 마이크로소프트 이사는 지금 이시대는 함께 공존하며 함께 번영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사람을 요구하는 감성의 시대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혼자만 공부하여 똑똑한 사람이 되도록 하면 실패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관심있는 분야를 개발하고, 커뮤니티에 참가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런 커뮤니티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하여 인성도 길러라는 대안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이미 그런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 생활, 교회 생활을 잘 하면 저절로 그런 능력이 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속의 가르침이 알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적은 주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안되는 경우 역시 많습니다. 그 만큼 자녀 양육은 쉽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지혜와 은혜를 받도록 그리고 자녀들을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넘어 주님을 만나서 함께 영원한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녀 양육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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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을 끝낸 우리는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로마서 8장에 와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사랑받는 장들 중 하나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율법의 위치에 대하여 주목하였다면, 여기서는 성령님이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울이 역설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대조는 율법의 연약함과 성령님의 능력 사이에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정당한 뜻을 보여주고 명령하나 자기중심성에 물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율법은 우리의 부패성을 자극하게 되어 우리로 하여금 죄를 낳게 만들고, 그 결과 사망(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촉진하는 원리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사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의 눈을 여시사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시는 것은 물론, 그런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우리의 손을 붙잡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인도하심으로 죄 대신 의를, 사망 대신 생명(영생)을 낳도록 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사과나 딸기가 맛있다고 설명을 해도 그 맛을 깨닫게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이, 이런 진리는 설명으로는 안되고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 그것은 본질적으로 성령님 안에서의 삶입니다. 만약 성령님의 인도와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자신을 부정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참된 제자도는 생각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준행하느냐 아니면 탐심을 따르느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사역을 적은 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 불변하신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구원은 확실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8장은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성령님의 사역(1-27) (2)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28-39).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살피고 맛보십시오. 그분께 피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시34:8, 쉬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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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화목과 그리스도 (베드로전서 3: 1-7)
가정에서는 약한 자가 오히려 관심을 받고, 힘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부자는 가난한 자를, 지식이 많은 자는 지식이 없는 자를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가정은 그야말로 천당은 아니어도 팔백당 정도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사랑은 질서를 전제로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두 기둥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현재 이런 이상에 도달한 가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가정은 비그리스도인들의 가정과는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3장 1-6절까지 사도 베드로는 아내의 측면에서 어떻게 남편, 그것도 믿지 않는 남편을 섬길 수 있는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말에 있지 않고 순종에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내의 착한 행실을 보게 된 남편은, 도대체 그런 행실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 할 것이고 그런 행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오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면 구원에 이르는 길로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행실을 올바르게 가지고 남편에게 부드러운 말과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정에 어려움이나 여러 문제가 닥쳐 남편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경우, 이제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해결할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열심히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깨끗이 해결되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체험한 남편은 반드시 주님 앞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적인 행실과 기도 두 가지는 아내된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만 하는 미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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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7장 14-8:4은 율법은 정당하고 의로우나 타락한 본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신자 자신의 힘으로는 율법(도덕법)을 준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처하나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이기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사도는 7장 14-17절과 18-25절에서 동일한 내용을 두 번 반복함으로써 그 내용을 강조합니다. 먼저 두 단락은 우리의 상태,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솔직한 인식으로 시작합니다. 14절은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자아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자기 중심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정당한 하나님의 뜻인 율법(도덕법)을 지킬 수가 없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도는 자신이 “죄의 노예로 팔린 자가 되었다”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이에 상응되는 18절 역시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이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알아야 할 문제의 본질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경험을 통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처해 있는 엄중한 현실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예를 들어 “탐내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있는 자녀들을 얻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리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더라도 심한 갈등속에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육신의 욕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두 단락(14-17절; 18-25절)에서 반복하여 그로 인해 생긴 갈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처절한 갈등에서 당신의 영을 보내사 힘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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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논쟁과 그리스도 – 심판과 구원 (요한복음 5: 19-24)
유대인의 어느 명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이적으로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이적을 도외시하고 분이 나서 주님께 온 유대인들은 왜 구태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졌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안식일에 일하실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 역시 안식일에 일하고 있다는 논지로 대답하시자, 유대인들은 더욱 주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아버지께서 안식일에 하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이 하는 것이며, 실상 아버지께서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와 같이 하고 있다는 취지로 변론을 펴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아버지께서 아들인 자신을 사랑하시기에, 자신이 행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이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실상 아들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자신이 아버지와 독립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가장 큰 소원은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그 근거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며, 역시 그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둘러싸여 이런 변론을 하시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불순종이라는 원죄를 치유하시는 일환이라고 판단됩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아버지께 그렇게 순종하셨는데 하물며 일개 피조물인 인간이야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여야만 하겠습니까? 이런 순종하시는 아들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 큰 권위를 주심으로써 반대자들을 놀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부활의 권능과 영원한 심판을 행하시는 심판자로서의 권능입니다. 심판을 행하시기 전 주님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구원을 받아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됩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하나님은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이 진리의 말씀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매일말씀나눔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10절) 라고 사도는 탄식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한편으로는 생명을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을까요?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망이 율법의 허물인 것일까요? 이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은 단호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죄악 된 우리의 본성은 나쁜 목적을 위해 선한 것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에 대해 율법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되고 죄악 자체를 비난해야 합니다.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죄를 범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체포된 후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뒤 형을 선고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그가 자신의 범법행위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감옥에 가둔 법을 비난하고픈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정죄한 것은 법이지만 법을 어긴 것은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은 율법 그 자체를 악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죄를 폭로하고, 그것을 유발시키며, 그것을 정죄할 뿐입니다. 우리의 죄와 사망에 대한 책임을 율법에 돌려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율법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율법 폐기론자들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부패성이 문제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해 율법 자체만으로는 우리를 구원시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려는 독립성, 즉 죄된 마음이 내주하고 있기에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뜻인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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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하시는 그리스도 – 안식일 논쟁 (요한복음 5장 15-18)
유대인의 어느 명절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주님은 38년된 병자를 고치시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장로들의 구전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물건 이동도 금하였고,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병을 고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당국자들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이중으로 안식일을 범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이를 따지는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선포하시면서 안식일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도 하나님만은 안식일에도 우주를 보존하시기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도 사람이 태어나고, 죽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기 때문에 나도 일하고 있다”라고 선포하시자 유대인들은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고 있는 주님을 신성모독으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는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바로 성전뜰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변론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야만 합니다. 한편, 주님이 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모든 이적의 의미들은 전부 인간을 구원하는 표적들입니다. 그러나 죄와 사망을 정복하지 못하고 이적만 행한다면 인간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죽어 심판의 자리로 나가는 상황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리스도는 주님도 아니고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후 2년이 지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대권을 가지신 만유의 주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저자이며, 영원히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런 주님을 신뢰하고 한 주간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매일말씀나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종된 것은 ‘영의 새로운 것’을 위한 것이지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로마서 7장 6절에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공동번역)라는 메시지를 기록한 이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같은 메시지를 고린도 후서 3:6에서 옛 언약과 새 언약, 율법과 복음 사이의 철저한 대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새로운 계약을 이행하게 하셨을 따름입니다. 이 계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고후3:6, 공동번역). 옛 언약은 문자, 곧 우리 밖에 있는 돌판에 새긴 외적인 계약입니다. 새로운 계약 즉 새 언약은 복음, 곧 성령님에 의해 우리 마음에서 맺어진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속에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마음의 할례요,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방법이요, 현재 우리의 새로운 종의 신분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지금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에서는 율법은 우리를 구속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들을 완전히 충족시키심으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이 반면, 우리의 새로운 삶에서 우리는 여전히 종의 신분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종인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남편이시며, 우리 또한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한 순종이 구원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받은 지위에서 나오는 감사가 율법에 대한 복종의 원인입니다. 율법은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라고 말합니다만, 복음은 “살아났으니 이것을 행하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동기가 완전히 변한 것입니다. 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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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그리스도 (로마서4:25)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2천년 전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시다가, 은 30량에 유대지도층에 팔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입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증거하는 것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입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고 죽었다가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고, 신약성경은 그 일을 예수께서 행하심으로 대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대명제는 바로 신구약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사망을 철폐하시고 썩지 아니하실 것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망은 죄의 삯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주님이 십자가를 통한 속죄사역이 완성되었음과 이제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복된 소식을 선포한 사건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심으로 온 세상의 심판자가 누구이심을 명백히 알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하여 점점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할 때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사망이 영원히 철폐될 때입니다. 그때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김이 어디에 있느냐,”하고 노래할 것입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부활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