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범죄자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눅23:32-43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골고다에서 십자가 처형이 있던 그 날 예수님 혼자만 집행 당하신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예수님의 비중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명의 범죄자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날 로마의 법정에서는 3명이 재판을 받았습니다. 한 명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고, 다른 두 명은 강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23:32-33).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미움과 조롱의 말이 터지고 그리고 절망의 모습이 드려지는 중에, 범죄자 중 한 명은 예수님의 말과 정체성을 옹호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23:42). 사실 로마의 십자가 처형의 모든 절차를 보면 예수님을 비하하면서, 그의 신뢰성을 추락시키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병정들은 예수님을 때리고, 조롱하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옷을 벗기고,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붙여놓았습니다. 범죄자 중 한 명은 함께 달린 예수님을 보고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등의 비난 섞인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편에 달려 있던 범죄자가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겉모습은 범죄자와 같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그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사실은 800년 전 이미 선지자 이사야가 잘 예언해 놓고 있습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사53:9).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골고다에서 예수님과 함께 달려 있는 두 범죄자의 존재는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거부와 수용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확인해 주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와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에 관한 수 많은 예와 비유들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대표적인 예들은 오른 편에 구분된 양들과 왼편에 구분된 염소들의 비유(마25:31-46),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13:24-30), 못된 고기와 좋은 고기를 가르는 비유입니다. (마13:47-50). 그러므로 이런 매우 극적인 순간에 일어난 결과를 보고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참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고난 주간을 보내야만 할 것입니다 (마틴, a visual guide to Gospel events 178-79).

매일말씀나눔

2019.4.8 – 12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섬김은 일생의 직업을 포함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일생의 직업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행하는 섬김의 핵심으로 보아야 합니다. 진실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직업과 관련하여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을 섬기는 일에 바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인 이상, 이 점은 타협할 수 없습니다. 장차 갖고자 하는 직업이 무엇이든, 그리스도인이라면 섬김이라는 관점에서 평생의 직업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직업을 유감스러운 것으로, 불가피한 숙명으로, 때론 노골적으로 귀찮은 것으로까지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생계비를 벌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가족들을 부양해야 합니다.이런 관점에서는 직업이란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개인적 야망의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 지위, 권력, 안정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그와 같은 표준에 의해 일생의 직업을 결정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이에 반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복음 전도를 위한 유용한 영역으로, 다른 방법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나 이것은 직업을 택하는 이유가 되기에는 전적으로 부적합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직업을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부르신 섬김 그 자체로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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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요한복음 9:24-25

종교당국자들은 두 번째로 맹인이었던 그 남자를 불러 이르기를,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우리가 이 사람은 죄인인 것을 알고 있다’ 라고하니, 그는 ‘나는 그가 죄인인지는 모르나 하나를 아는데 맹인이었지만 지금 본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파문을 당할지라도 그가 아는 ​​한 가지,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한 가지는 ‘그는 맹인이었고, 이제 본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전체적으로 목격자 주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들에게 ‘결정적인 믿음은 개인적 목격자가 가지는  증거가 특징이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전 세대를 거쳐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히 자신의 변화, 즉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는 자신의 경험에 똑같은 말을 적용해 왔습니다. ‘ 한 가지를 내가 아는바, 내가 맹인이었지만 지금 나는 본다.’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라는 소책자에는 박영덕 목사님의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이분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두 가지로 증거합니다 첫째가 성경이 증거하는 객관적 진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들고, 둘째 주관적인 증거로 기도응답의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대학원을 마치고 카투사에 입대하여 일병을 단 때였습니다. 그해 5월에 서울의 중앙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8월에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적인 수련회가 부산에서 개최되는데 자신이 강사로 왔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팜플렛에 강사로 소개해 버렸습니다. 박일병은 영락없이 8월에 강사로 가야만 했고 그 때부터 8월 수련회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6-7월 경에 한 형제를 만났는데,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신앙 생활을 하다가 대학 시절에 신앙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박영덕 일병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박일병은 그에게 두 가지 증거, 즉 객관적 증거인 예수님의 부활과 주관적 증거인 기도의 응답에 대해 설명했습니다.그리고 앞으로 부산에서 개최될 수련회에 비록 일병 신분이지만 참석하려고 기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그 형제는 고개를 저으며 수련회에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사과에 근무하고 있던 터라 누구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박일병은 반문했습니다. “만약 내가 수련회에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만약 박일병이 정말 8월 수련회에 참석하게 된다면,나도 하나님 계심을 인정하고 교회에 나가겠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시 일병인 지위에서 박영덕 청년은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였습니다. 다만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군 생활을 하던 중 부대에 대구 지역 모범 사병 선발 대회가 있어 상부에서 참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 명령에 따라 응시하였는데 어쩌다 보니 박영덕 일병이 뽑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들려오는 말이 대구 지역 모범 사병으로 뽑힌 사람은 우리 사령부 선발 대회에 나가게 되고 거기서 3등이 되면 3-4일간 휴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더 알아보니 1등이나 2등은 의무적으로 10월에 있을 전국 카투사 선발 대회에 후보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박일병은 선발 대회에서 1,2 등이 아니라 반드시 3등을 해야만 했습니다. 참으로 난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가 8월에 있을 의대생 수련회에 가야 하는데 이번 전국 대회에 나가 꼭 3등을 하게 해주십시오” 그 때부터 박일병은 수시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드디어 선발 시험을 치렀고 결국 박일병은 3등을 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며칠간의 휴가 외에도 부대의 배려로 총8박9일의 포상 휴가를 얻어 부산 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수련회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던 그 형제는 박일병과 함께 부대에 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p 112-115)  

매일말씀나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소명으로서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의 자리로 부르신다’는 말씀을 두 번째로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도록 부름받았다고 할 때, 그 의미는 그분의 노예와 종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노예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해야 하고, 더 나아가 신약성경에 의하면 이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합니다. 또 같은 장 13절은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는 죄의식으로부터의 자유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자기 중심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데 ‘자기 중심성’을 말콤 머거리지는 “내 자아의 어둡고 작은 토굴 감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도록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름받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죽음심을 통하여 받은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기회를 삼는 일은 없도록 특히 주의해야만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웃 사랑을 가지고 서로 섬겨야만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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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다!

로마서 8:28-29

방선오 장로가 대한항공에 재직시 겪었던 일입니다. 자신이 막 과장으로 승진한 후 CRS(컴퓨터 예약 시스템) 개발 업무 T/F 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뿌듯했는데 알고 보니 모두 다 기피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본사로 전입된 신임 과장에게 그 업무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막상 맡고 보니 그 업무의 팀장 역할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항공의 CRS 시스템을 도입하여 그것을 회사와 한국시장 실정에 맞도록 수정하고 보완하여 DB를 구축해야 하는 일인데, IT에 경험이 일천한 자신으로서는 수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6개월간 T/F를 마치고 시스템을 오픈하자 새로운 과제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여행사에도 CRS 시스템을 배포해야 하는데, 여행사 단말기는 미국 CRS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카고 취항이 영향을 받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먼저 영국으로 출장을 가서 영국항공과 회의를 하였지만 어떤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짐을 싸서 일본항공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당시 일본항공은 영국의 시스템을 도입하여 잘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담당자들과 수차례에 걸쳐 해결방안을 강구했지만, 얻은 결론은 불가능이었습니다. 시스템을 만든 곳에서도 시스템을 가장 잘 사용하는 곳에서도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절망감이 몰려 왔습니다. 같이 갔던 동료가 저녁 먹으러 가자는 제안도 뿌리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습니다.그때 호텔의 자그마한 책상에 놓인 성경책이 눈에 띠었습니다. 성경을 펴서 읽으니 사무엘하 22장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삼하22:7, 30). 이 말씀이 방선오 형제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고, 상황이 변한 것은 없었지만 마음에 평안이 밀려오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에 방선오 과장은 “주님,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호텔에서 조금 더 쉬었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동경지점의 대한항공 직원이 일본항공의 시스템 개발자 한 사람만 더 만나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30분 정도 시간을 할애해 호텔 근처에서 미팅을 하기로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짧은 시간에 어제 읽은 그 말씀대로 방선오 형제로 하여금 성벽을 뛰어넘게 하셨습니다. 실상 일본의 개발자는 자신들의 데이터 구축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하였을 뿐이나 그의 설명 속에서 뜻밖의 해법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방선오 과장은 “할렐루야!”를 외치고 돌아왔습니다. 모두 다 기피했던 CRS T/F 업무를 얼떨결에 맡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고 절망도 했지만, 주님의 은혜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 업무 경험으로 인해 10여년 후 회사의 주요 보직인 마케팅팀장도 맡게 되고, 더 나아가 20여년 후에 회사에서 퇴직할 때 국내 최대 CRS 회사인 대한항공 계열사 토파스여행정보의 대표이사로 근무하게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상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지 보는 것으로 살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는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하는 자를 위해 좋은 지혜를 준비해 두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이 중의 복이 굴러 들어 오는 것입니다.

매일말씀나눔

이제 다시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반역적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이를 갈고 주먹을 불끈 쥐면서 “왜 나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한단 말인가?”라고 말하곤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시여, 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요한복음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고뇌하신 후에 군병들이 그를 체포하러 오고 베드로가 방어하려 했을 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이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시키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의지이며, 그분의 의지는 하나님의 아들조차 복종하실 만큼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두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으며 그의 경외하심으로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그럴 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는 적극적이고 건설적이며 사랑에 찬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 하늘 아버지의 의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반역하는 것은 몹시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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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적 인도

잠언 16:1-9

송도 고등학교 오성삼 교장 선생님의 자서전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라는 책의 후기를 읽으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애에 가장 큰 충격은 대학 졸업과 더불어 찾아온 늑막염이란 질병이었다. 대학시절 열악한 경제적 여건의 후유증이었다. 삶의 과정에서 한 번의 뒤틀림은 오랜 파장을 낳았다. ROTC 임관 탈락은 뒤늦은 군 입대로 이어졌고, 2년 3개월의 장교복무 기간도 어긋나 34개월의 사병생활로 이어졌다. 대학원 공부도 늦어졌고 미국 유학도 늦어졌다. 그래서 직장 생활 기간도 남들보다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어렵사리 이뤄 낸 나의 준비과정이 65세에 마감되다니.. 하나님 좀 억울하네요. 목사님들은 70세에 정년을 한다던데….. 종종 중얼거리며 투정하던 나의 직장생활의 아쉬움을 송도고등학교를 통해 해결해 주셨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에 대한 그 감사의 마음을 월드비전을 통해 돌려주기로 하였다.” 이분은 2018년 2월 28일 송도고등학교에서 5년 반의 기간을 교장으로 일하고 72세에 은퇴하는 것을 하였습니다. 대학 동기들 상당수가 50대 나이에 IMF를 맞아 구조 조정되었고, 교수직을 유지하던 친구들 또한 65세 나이로 현직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에 보너스를 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2012년 8월 31일 대학교수 정년을 끝내고 다음 날 9월 1일자로 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크고 작은 자신의 기도를 오랫동안 잊지 아니하고 기억해 두셨다가 꼭 필요한 시점에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로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오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삶에 “만약”이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라는 질문은 지난 세월의 갈림길에서 더러는 본인이 선택했고 더러는 운명에 이끌려 온 날들에 대한 사후 평가적 해석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예를 언급합니다. 60년대 중반 농고를 나와 별 실력이 없던 자신에게 떠오른 생각, “정원이 미달되는 학과를 찾아낸다면 나도 대학엘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따라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선호하는 대학, 경쟁이 치열한 학과에 대한 무모한 도전을 내려놓고 실현가능한 답을 찾았던 그 시절 자신의 초라한 결정은 훗날 오교장 선생님의 삶에 전화위복의 씨앗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운명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만 하지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훗날 되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