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전도서 12:11-14

요새 김형석 교수님은 100세가 되셨어도 여러 책을 출판하시는 등 왕성한 노년을 보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는 아니 그 이상의 활동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미술가 해리 리버만입니다. “폴란드 태생인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 1880~1983)은 랍비의 조카로서 랍비의 길을 준비하다가 버리고 1906년 26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처음에는 옷을 재단하는 사람으로, 그 다음에는 캔디 제조자 일하다가 70대 후반에 은퇴하여 뉴욕의 노인 클럽(Golden Age club)에 가입하여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체스 친구가 오지 못하자 무료하게 보내던 중 미술 수업을 받는 것이 어떻냐고 제의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큰 흥미를 갖게된 리버만은 미술 재료를 갖추고 미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탈무드, 게메라, 갈바라, 구약성경 그리고 히브리 문학과 관련된 주제들을 그렸습니다. 그는 회상하기를 “선생님이었던 래리 리버스씨는 다른 사람들은 전부 가서 돌보아 주고, 말을 하면서 나에게는 결코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약간 의기소침하였습니다: 내가 그렇게 못 그리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가서 ‘리버스씨 모든 사람들에게 가서 지도하면서 왜 나에게는 오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내가 천연두나 다른 병을 가지고 있어 두려워 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리버만 씨, 나는 당신이 지금 하고 계시는 것 이상으로 당신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리버스씨 내가 당신을 가르치기를 원하십니까?” 하니. 그는 내게 이르기를 “리버만씨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몇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할 수 있는 몇가지를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는 것이 옳은 방식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미술가와 평론가들에게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2019.1.14 – 18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드시는 좋은 방법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분과 닮게 되고, 사랑하는 것을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예로서 이번 주일 설교에 언급한 크리스웰 목사님의 목회 경험담을 들 수 있습니다. 크리스웰 목사님은 달라스 first Baptist church(제일침례교회) 에서 오랜 동안 목회를 하셨습니다. 어느날 이 분이 궁궐같이 호화로운 집을 가진 집사님의 집을 방문 하였습니다. 그 집사님의 집 서재에서 어떤 그림 앞에 이르렀을 때 그 집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저분은 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께서 내 아주 어린 시절 돌아가셔서 나는 결코 그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내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주님을 먼저 뵈옵고 나서 제일 먼저 내 어머니의 얼굴을 보러 가기를 원합니다.” 이때 크리스웰 목사님은 회고하기를, “저것이 당신의 어머니입니까? 저것은 단지 종이와 잉크로 그려진 그림일 뿐입니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그림은 그 집사님의 어머니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날인가는 천국에 갔을 때  그 어머니의 얼굴을 직접보고 함께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꿈꾸며 고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집사님이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어머니를 그리워 하고 감사하듯이 정확히 우리가 주님에게 대한 것도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단지 성경에 기록된 사도들의 증언을 믿고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사랑하며 고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과의 교제를 실제로 나누면서, 언젠가는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표상을 우리는 마음에 그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여야만 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

더 읽기

수요일터예배

마태복음 7: 7-12

인터넷 사이트 예화세상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신옥진 씨는 부산 공간화랑 대표입니다. 흔히 그는 ‘그림 기증하는 화상(畵商)’으로 불립니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시립박물관, 경남도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에 800여점(총 시가 24억 원 이상)을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에도 기증을 시작해서 현재 모두 53점을 보냈습니다.”

그는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증자 10명 중 최다 기증자로서 12월 5일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자 축제에서 ‘망설임에서 결정까지’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그 강연에서 신 대표는 “기증의 가장 큰 기쁨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갈등을 이겨 내놓고 나면 ‘내가 나를 극복했다’는 쾌감이 오지요. 그 희열이 말도 못해요. 게다가 ‘내가 미술 덕에 밥 먹고 있는데, 미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는 자부심도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가 그림을 기증할 때의 원칙은 일반인들의 것과 사뭇 다릅니다. 그 원칙이란 ‘내가 아끼는 작품부터 기증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중 가장 아끼는 것은 이우환의 1977년 작 ‘선으로부터’입니다. 20호짜리 과슈(불투명 수채 물감) 작품으로 5년 전 일본 경매에서 사들여 안방에 걸어놓고 보던 것입니다. “이런 거 기증할 때는 ‘독한 마음’ 먹어야해요. 싫증 난 작품을 기증하면 덜 아깝긴 하겠지만 기증받는 쪽에 실례지요. 나는 직업 화상이니까 안목으로 먹고사는 셈인데, 그저 그런 작품을 기증했다가 ‘저 사람이 저 정도 안목밖에 없었나’ 하면 창피하기도 하고.”

2009년에는 아예 기증할 목적으로 일본 근·현대미술작 100여점을 사들여 부산시립미술관에 내놓았습니다. 내 고향 미술관에 다른 곳과는 다른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증할 작품을 골라내 포장하고 있자면 손이 바들바들 떨려요. ‘이 아까운 걸 공짜로 내놓다니 내게 정신병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요. 기증은 아무리 오래 해도 ‘면역’이 안 생깁디다.” 그는 지난 13년간 총 850점의 미술품을 기증했지만 “보낼 때마다 아까워 손이 떨렸다” 고 말합니다.

1975년부터 화랑을 경영하고 있는 그가 본격적으로 기증을 시작한 것은 1998년 결핵 후유증으로 크게 앓으면서부터입니다. “곧 죽을 줄 알고 주변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박수근 스케치, 장욱진 수채화 등 50여점을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했어요. 그런데 막상 살아나고 나니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묘하게도 ‘처음 기증이라 부족했으니 앞으로는 제대로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지은 지 40년 돼 불도 잘 안 들어오는 30평 아파트에 사는데, 기증할 때마다 고민합니다. ‘차라리 이 그림을 팔아 새 아파트로 옮겨?’ 그렇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매일 자기 앞만 닦다가 죽는다면 그 삶은 너무나 안이한 것 아닐까요. 신옥진는 떨리는 손으로 기증할 물품을 포장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까워하는 마음을 이겨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어느 노신사의 아내가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주님께서 아직 내가 할 일을 남겨두셨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분이 나를 이 세상에 남겨두셨겠습니까?” 하자, 누군가가 대답하기를 “주님을 여전히 사랑하는 것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것을 하도록 당신을 남겨두지는 않으셨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몸을 생축과 같이 희생을 드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은 삶은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삶을 영위하여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이에 반해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인격을 갖기를 원하고 계십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여러가지 테스트와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귀한 선물을 주시듯이 이런 것들이 주님의 허락하에 온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고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목적이 주님을 사랑하여 그의 모습을 닯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기도의 끈을 놓치 말아야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과 최초의 회심과 지속적인 성화와 최후의 영화 가운데 무엇을 생각하든 부각되는 주제는 동일합니다. 각 단계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 혹은 그분의 ‘형상’이 언급됩니다. 완성된 구원이란 바로 그분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지혜는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들려올 때가 많은데 , 이 내용도 아이들의 노래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되고 싶어요. 사랑하는 나의 예수님 나 날마다 예수님처럼 그렇게 자라고 싶어요.” 이렇게 그리스도를 닮는 일은 중요한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서 보기 원하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은 또한 이를 지켜보는 세상이 보기 원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입술에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말하고 그분을 노래하고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을 증거합니다. 따라서 세상은 그토록 우리의 입을 떠나지 않는 예수님을 우리 안에서 볼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주장과 행위 사이의 괴리, 우리가 말로 선포하는 그리스도와 행동으로 보이는 그리스도 사이의 널따란 간격만큼 기독교의 증언을 방해하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보다 먼저 우리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요일 3:18-19).

더 읽기

수요일터예배

예레미야29:13

김형석 교수님에게는 친한 두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두 친구는 H와 P이며 중,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벗이어서 서로의 관심과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H는 장로의 아들이었고 흔히 말하는 기독학생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반도를 떠나 만주 등지에서 자랐기 때문에 유달리 민족의식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말에 학도병을 피하고자 부모가 있는 만주로 갔습니다. 한국에서 가까운 지역에서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어 연안으로 갔다가 김두봉 일파와 알게되면서 좌경사상을 접했고, 마침내 공산당에 들어가 활약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해방된 뒤 교수님과 H는 평양에서 다시 만나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교수님은 H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평양 공산당 선전부장이 되었고 교수님은 38선을 넘어 남하하는 신세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두 분 사이의 우정은 정치 이념의 차이 때문에 금이 갈 수밖에 없었으며 기독교 신앙에서도 결별의 길을 택하였고, 각기 남과 북에서 자신들의 일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후에H는 지성인이며 연안파에 속했기 때문에 점점 핵심부에서 떨어져 나갔고 나중에는 완전히 밀려 함경도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거의 확실한 소식에 따르면 자살을 했다고 하며 능히 그럴 친구라고 교수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더 읽기

매일말씀나눔

진젠도르프 백작은 열아홉 살 때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졸업하였습니다. 18세기의 모든 귀족들이 그랬듯이 대학을 갓 졸업한 그도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뒤셀도르프에 있는 어느 화랑에 갔다가 17세기 초의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페티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그림에 마음이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는 작품으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한 후에 무리 앞에 도로 내놓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예수님은 자주색 옷을 걸치고 가시 면류관을 쓰고 밧줄에 묶여 있습니다. 진젠도르프는 그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시선이 그의 심장을 꿰뚫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림의 위아래에 라틴어로 쓰인 그리스도의 말씀은 꼭 그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내 너를 위하여 이렇게 했거늘 너 나를 위하여 무엇하고 있느냐?” A.J. 루이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날 거기서 젊은 백작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자신도 ‘그 고난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평생 그분을 섬기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목표는 결국 예수님을 증거하고 우리가 그분의 제자인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진젠도르프 그리고 지난 세월 수많은 예배자들이 그러했듯이 2019년을 맞이하는 우리 역시 이 그림 앞에 서서, 주님이 우리에게 큰 사랑을 베푸셨으니 우리도 주님을 위해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0-12).

더 읽기

수요일터예배

누가복음 8: 4-15

네이버에 올려진 케빈 함이라는 한국계 캐나다 교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케빈 함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무너져내린 이후 ‘도메인 사업’으로 기회를 잡아 일반인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CNN에 따르면 그는 ‘인터넷의 실소유주’로 선정되었고 3천억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2명의 남동생들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밴쿠버에서 세탁소를 어렵게 운영했고 어머니는 간호사 일을 했습니다. 그는 엄격한 부모 아래 열심히 공부해서 캐나다의 명문대인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UBC)에 입학했고 의대 과정을 마치고 정식 의사가 되었습니다. 높으면서 안정적인 의사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그였지만, 케빈 함은 다른 기회를 잡았습니다. 1993년 처음 인터넷을 접하게 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는 낮에 환자들을 진료해주고 밤에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방법과 코딩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1998년, 그의 첫 인터넷 사업인 ‘Hostglobal.com’이라는 호스팅업체 비교 및 리뷰 사이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6개월 뒤에 그는 광고비로만 월 1,000만원을 벌어들였습니다.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