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앞에 놓인 근본적인 질문은 “누가 주님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입니까? 그렇다면 교회는 마음에 드는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하면서 편집하고 조작할 자유가 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6:46)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삶을 모래 위에 세우는 일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 문화와 두 가치 체계와 두 기준과 두 생활 방식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우리 주변 세상의 방식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선하고 기뻐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분별하여 살아가야만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새롭게 변화를 받아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헬렌 이라는 미국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 여성은 여러 해 동안 낙태 업종에 종사해 왔습니다. 그리스도께 오기 전 그녀는 날마다 시술고에서 버려지는 태아 조직을 봐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건 것들은 그녀에게는 물건에 불과하였고 자신의 일 처리의 대상으로만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를 그리스도께 인도한 부부는 그녀에게 고린도 후서 5:17을 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단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외모가 달라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영접 기도를 한 후 거울을 보았을 때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똑 같은 헬렌이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실망하였고 자기 기도가 제대로 통한 건지 의아해 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직장에 가서야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시술소에서 낙태 현장을 보면서도 그녀에게는 태아의 조직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날 아침에는 죽은 아기들이 보였습니다. 헬렌 안에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의 결과입니다. 처음 시작은 이렇게 성령님의 새 창조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게 되어 우리의 속사람의 변화는 겉사람의 생활 방식에도 여러가지 중요한 변화를 낳게 됩니다.(앤디 스탠리, 성품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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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묻는 율법사와 그리스도
누가복음 10: 17-24
오늘 본문에서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께 찾아 와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구원, 영생, 죄사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은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그것은 부활하여 불멸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며 메시야가 올 때 이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이 당시 유대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가 매일 암송하는 율법은 무엇이냐는 취지로 역질문을 하셨고,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흡족하게 여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게 할 만큼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통해 죄에 대한 지식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죄사함 받아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된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데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삶임을 알아야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명과 영생과의 관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우리가 명백히 주장하고 확립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최종성입니다. 그 분의 성육신이 유일하며(그는 한 분이자 유일하신 신–인(God-man)이심), 그 분의 속죄가 유일하며 (그분만이 세상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음), 그분의 부활이 유일하기(그분만이 죽음을 정복하셨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 외에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고(탄생),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죽음), 죽음을 이기신(부활) 이가 없으므로 오직 그분만이 죄인들을 구원할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이순신 장군으로 부를 수 있지만 위대한 예수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 그분은 ‘위대한’ 분이 아니라 ‘유일하신’(the Only)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과 같은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니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수요일터예배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1Co 15:58 KOR)
소망 교도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효진 장로의 책 “하나님은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청송 교도소에서 8년간 일한 뒤 어느날 갑자기 박효진 교감이 서울 구치소로 발령이 났습니다. 다른 공무원 부서도 그렇지만 서울 구치소는 교정 일 번지이기에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박효진 교감은 아무 줄도, 빽도 없었으며 더구나 유력한 인물을 아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습니다. 가슴에 가득 꿈을 품고 상경 했지만 서울 구치소의 분위기는 너무나 싸늘했습니다. 소장은 전입신고도 받지 않았고, 보안과장 역시 인상이 비틀어져 박교감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마땅히 중책을 지고 분주히 일해야 할 박교감에게 책상과 사물함조차 마련되지 않은 채, 간부회의에도 출입금지였습니다. 매일 할 일 없이 휴게실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모두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맞이하여 울화가 치밀어 올랐고 당장 소장실에 뛰어들어가 사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겨우 자리가 정해진 것이 나이 어린 동기생의 보좌역이었습니다. 공직 사회에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것입니다. 아내는 “여보 어떤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서울 구치소로 보내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껀데 지금의 억울한 마음 때문에 주님의 일을 그르쳐선 안 되잖아요? 참고 또 참고 기도합시다” 라고 위로에 힘입어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 서러운 시기 약 6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보내던 박교감에게 사형수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불안에 흔들리는 동공을 번뜩이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의 친구가 되어주며 위로자가 되어주는 것은 발령을 받은 후 상관들에게 이유모를 무시를 당하며 쓰라린 마음으로 하릴없이 빈둥거리던 박교감에게는 좋은 영적 피난처이자 안식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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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의 보고와 그리스도
누가복음 10:17-24
오늘 본문에서 70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선교보고를 하면서, 귀신들 조차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겨나가는 것을 체험하고는 기뻐하였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주님께서 마귀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므로 당연히 마귀가 지배하던 세상과는 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마귀는 쫓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소원대로 이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계시되어 영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 이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지금 확장일로에 있으며 마지막날 주님의 재림으로 불멸의 나라를 이룩하시면서 완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여 죄사함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육체의 남은 때를 신실하게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 가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2017. 4. 17-21
어제 4월 16일 주일은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의 첫 증인은 단연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은 4개의 복음서 전부 부활의 첫 증인으로 나옵니다. 주님의 부활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나사로는 죽은지 4흘만에 주님의 권능에 의해 다시 살아났지만 그것은 다시 죽을 몸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결국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주님의 부활의 가장 큰 의미는 이런 불멸의 몸을 가지시고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만유의 주님으로 등극하셨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불멸의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을 당신 발 아래 복종시킬 때까지 주님은 반드시 왕으로 통치하셔야만 합니다. 맨 마지막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입니다. 사망이 없어질 때는 모든 신자가 불멸의 몸으로 부활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입니다. 그때까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뒤 주님은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고 자신도 복종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유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실 것입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복음의 능력
눅 19:1-10
RA 토레이 목사님은 100년 전에 목회하시던 분입니다. 그 분의 책 “일화 및 예화들”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내가 미니아폴리스에서 어느 뜨거운 여름 밤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설교 장소는 대부분 남자들로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창문들은 창틀에서 제거되어 좀 더 많은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 내가 설교를 끝내고 믿음의 초청을 하고 있을 때, 문 가까이에 있는 이 창문들 중 한 창문 옆에서 있던 어떤 남자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축도를 하자마자 그는 새신자를 축하하는 모임을 기다리지 않고 그 문을 통해 쏟살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계단을 타고 아랫층으로 내려갔을 때 그에게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 위에 놓고 말하기를
‘친구여,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오늘밤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새신자 모임에는 참가하지 않습니까?’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모르고 계십니다. 나는 미네아폴리스에서 가장 비열한 도둑입니다’
나는 말하기를 ‘그래요, 만약 당신이 미네아폴리스에서 가장 비열한 도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나는 성경을 펴서 로마서 5:8을 찾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당신은 확실히 죄인입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지금 만약 당신이 미네아폴리스에서 가장 비열한 도둑이라면, 당신은 확실히 죄인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는 조용히 나와 함께 내 사무실로 갔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마을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9: 51-56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뒤 부활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을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이란 이런 주님을 본받은 ‘자기 부인’의 삶입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사욕을 위한 대통령 권력의 남용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가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자기 부인’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쫒아가는 것은 지금은 심판의 시기가 아니라 구원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님을 보내실 것이고 그 후에 주님이 하실 심판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보다 훨씬 무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 대해 증거와 표적이 되도록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전도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1.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하여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이 어느 시기인 줄 깨달아야만 합니다.
3. 그리스도인들의 전도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성경나눔
2017.3.6 – 10
고통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된 인격을 낳으며, 그러한 인격은 소망을 낳게 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롬5:2)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넘어선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바로 지금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어 가실 것을 소망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고 이 소망은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면 살수록 우리가 변화되며, 또 스스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점점 예수님을 닮아 갑니다. 자신이 점점 더 사려 깊어지고, 인정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도 더 많아지고, 더 강해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더 순전해지며, 더 오래 참게 됩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하나님이 약속대로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