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서의 그리스도

성경봉독: 누가복음  2장 40 – 52절

오늘 본문에서 12살 되던 해에 예수님은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유월절 축제에 참가를 하였습니다. 유월절 축제는 비시 1446년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자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초태생을 죽이실 때 오직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집만 사망을 면할 수 있었던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실상 이 유월절 어린양은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세상에 들어오사 죄의 대가로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부활하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0년을 어린 시절과 가족의 부양을 위한 평범한 삶을 보내셨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의 삶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중요한 순간들이며 이런 일상의 삶을 영위할 때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정상적인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려주셨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삼 면적인 관계를 가지고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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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7-11

제2계명

둘째, 우상 숭배자는 영으로(즉, 하나님은 영이시며 따라서 영적인 경배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외형적이고 가시적이며 만져 볼 수 있는 대상에 몰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조차 형식주의에 치우치는 경향과 심지어 노골적인 외식에 빠져들기도 하였습니다. 주전 7 -8 세기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공허한 종교성을 가차 없이 비난했으며, 예수님도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비판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막7:6). 그러므로 예식, 순례 행진, 드라마, 각종 의식, 무릎을 꿇거나 두 팔을 올리는 등,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외형적인 형식을 사용하든지 간에, 영과 진리로라는 이중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우상 숭배라는 죄목을 벗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두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묘사하십니다. 이 말에 혼란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질투는 라이벌에 대한 분노이며,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라이벌이 상대편 자리에 있을 권리를 가졌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시며 다른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분만을 섬기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마6:24)고 하신 말씀은 물질문명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반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은 우리에게는 세상살이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고 그 나라와 그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돌보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야 돈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마6:25-34). 

또한 두 번째 계명은 하나님을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우리 각자에게 지우신다는 사실은 성경 후반부에 가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예, 에스겔18: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계명은 영구적이고 중대한 한 가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악의 사회적인 속성 때문에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녀는 종종 부모가 지은 죄의 결과로 인해 고난을 받습니다. 이런 결과는 신체적으로(유전된 질병등), 사회적으로 (술과 도박으로 인한 가난), 정신적으로(불행한 가정에서의 긴장과 분쟁), 그리고 도적적으로 (자녀가 배우는 부모등의 악습) 자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제3계명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망령되게의 국어사전의 뜻은 정신이 흐려 정상을 벗어나서의 뜻이나 원어의 의미는 헛되이 in vain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경우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이는 모두 세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명백한 경우는 나쁜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분이 친히 알려주신 칭호들(, 하나님, 전능자, 그리스도, 예수등)을 가르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그 칭호들을 덧붙이는 말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맹세 같은 데 사용하는 것은 그분을 경시하는 명백한 증거이며 그분을 경배하려는 열망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영어에서 사용하는 gosh, gee 처럼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단축해서 표현하는 변조된 용어들을 사용하지도 기억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제3계명에서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는 약속이나 맹세를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나서 그 약속을 깨뜨린다면, 그것은 곧 거짓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존경심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 당시의 일부 사람들은 맹세할 때 올바른 방식을 사용하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는 없지만, 하늘에 두고’ 나 그 밖에 땅에 두고 혹은 그 밖의 것을 두고 맹세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마5:33-37). 주님은 이에 대하여 무슨 명령을 하셨습니까? 그저 간단하게 혹은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주의해야할 대목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바알 숭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뒤, 광야에서 기적으로 돌보시고,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을 경우 받는 위험들이 무엇이며,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과 국가로 삼으신 목적과 이유를 알려주셨다. 그러나 사사기에서 바로 이들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가나안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하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였는가?이에 대한 한 가지 중요한 단서가 바로 가나안 땅이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특성과 기후 때문이었다. 고대 가나안 땅에는 곡식 즉, 밀과 보리의 추수만큼 중요한 식량원은 없는 것이었다. 풍성한 추수를 하기 위해 충분한 물의 공급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늘상 비가 내리거나 이집트와 같은 거대한 나일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씨를 뿌릴 때와 곡식이 익을 때 즈음에 알맞은 비가 내려야만 그 해의 곡물을 거둘 수가 있었다. 적당한 비가 없다면 목초지도 시들어가고, 우물이나 저수지도 바짝 마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밀과 보리는 추수하기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졌지만 최근에 정복자로서 이민하여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비로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하는 가나안식 농업을 체득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가나안식 농업을 배우는 동안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우상인 바알을 경배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가나안 신학에 따르면 사람들의 일상은 신들의 조정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었다. 천둥, 사망, 가뭄 그리고 전쟁조차 신들 행동때문에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신학에 등장하는 신들은 비도덕하고 능력은 있지만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 욕망을 인간들이 조작할 수 있다면 신들의 능력을 빌어 가뭄이나 전쟁등 인간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조작의 방법으로 각종 음란한 행위등이 포함되어 가나안 백성 전체를 타락시킨 것이었다.

가나안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업에서 성공하려면 단순히 때를 따라 씨를 뿌리고 가꾸는 행동뿐만 아니라 바알 숭배와 관련된 가증스러운 행동들을 하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매우 증오스러운 문화에 보내셨다는 것을 알고 이런 문화들을 철저히 파괴하고 궤멸시키도록 명령하셨고(신11:10-15), 더 나아가 가나안 땅은 농업의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시고 풍성한 추수를 위하여 가나안의 신들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할 것을 경고하셨다(신11:10-15).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성한 추수를 담보한다는 명목하에 바알 숭배를 음란하듯이 시행하였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예측할 수 없는 기후에 직면하여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하였다면 주변의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충분히 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경우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내를 요구하기는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비라는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알리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신뢰하는 쪽을 택하였던 것이다. 시편 4편은 이런 가나안 땅의 특색을 전제로 역경에 처한 시인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시인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66-67 참조).

신예현 – 약속의 밭 lifeisyea.com

구원과 그리스도

구원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2장 22-39절)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성전에 들어가서 모세 율법을 따라 3가지를 준행했습니다.이때 성령님의 인도로 시므온이 와서 이 아기는 “만민 앞에서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으로서 언급하여 예수님 구원 사역을 예언하고 나아가 예수님이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고 흥하게 하기 위한 표적으로 세움받았으며,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들을 드러나게 하실 것으로 마리아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시므온의 말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돌이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심판의 돌이되고, 각 사람들의 생각이 드러나게 하는 시험하는 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심판을 면하게 됩니다. 이미 믿은 우리는 이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돌이 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심판의 돌이 됩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시험하는 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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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15) 십계명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선포로 시작됩니다 :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2) 그리고 자연스럽게 첫 번째 계명이 이어집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요구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속량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노예 생활에서 구해 주시고 시내 산에서 그들과 맺은 언약에 따라 그들을 자기 소유로 주장하셨습니다(출19:3-6).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적인 통찰력을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며 그리고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우리 죄 사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골1:13-14).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언약 하에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12/01/15) 제1계명에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고 선포하신 것은 그분이 구원과 언약을 통해 우리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분이 유알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6), 나는 낸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고 말씀하심으로 제1계명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명확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만을 절대적으로 섬겨야 할 근거는 바로 그분만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2/02/15)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경배는 단순히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만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한 시간 동안 말로 표현하는 경배가 평소에 지속적이고 포괄적으로 드려 온 우리 마음의 표현일 때에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제1순위에 두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천국을 살짝 엿볼 수 있는데, 천국에 대한 환상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밖의 모든 것은 다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계 4-7장). 우리는 이런한 하나님 중심의 천국 생활을 지상에서 미리 실천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godliness)의 참뜻입니다.

(12/0315)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예배를 요구한다면, 둘째 계명은 그 예배가 참되고 영적이어야 하며 우상 숭배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계명 자체를 적어보겠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12/04/15) 요한복음4장23-24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되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를 2계명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을 진리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대로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예배하지 아니하고 그분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주를 그분이 만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의 형상으로 표현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행17:24-31;롬1:21-25). 우상의 형상들은 외적인 형태를 띠기 전에 이미 정신적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거짓되고 무익한 모든 개념이 곧 우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 (잠언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명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5-6)

마이크 홈 그렌은 고교시절 미국 대표 풋볼팀의 쿼터백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UCLA에서 풋볼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학창 시절 그의 꿈은 단 하나 미국프로 풋볼리그인 NFL에 진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에서 그를 영입했을 때 그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팀에서 방출되었고 다른 팀에서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훗날 마이크는 그때를 회상하며 그 일로 저는 완전히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풋볼 선수로 활약하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왔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정말이지 완전히 패배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마이크는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며칠이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그의 눈에 문득 먼지가 수북이 쌓인 낡은 성경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11세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표를 풋볼에만 두고 사느라 하나님을 완전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성경을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여기저기 흝어보았는데 잠언 3장5-6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마이크는 자기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마이크는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로부터 풋볼 코치를 맡아 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이일을 계기로 게속 코치로 일하게 되어 나중에는 미국에서 가장 눈부신 성공 신화를 이룬 NFL 코치 가운데 한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제게 정말로 중요한 건 슈퍼볼 반지가 아니라 영생의 면류관이니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승리를 통해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그 영광스러운 면류관 말입니다.(강준민, 기다림은 길을 엽니다, 293-29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환경과 말씀으로 마이크를 찾아가셨을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는 대목입니다. 이는 그가 주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받은 것을 안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려고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런 삶을 통해 신앙이 자라갔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셔야만 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편집권을 갖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고 이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장 중요한 선물을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영혼에 닻과 같아서 우리 마음이 쉼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큰 선물을 주신 분이 아까우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에게는 우리 인생의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이 있다고 마이크가 당장 NFL프로 선수로 영입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의 묘미가 있습니다. 마이크는 모교의 코치로 요청받았고 이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이 길이 마이크를 위해 준비한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겸손해진 마이크는 이 길을 갈 수 밖에 없고 드디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코치로서의 자질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을 움직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생에 두어야 하며 나머지 삶은 하나님의 인도와 돌보심을 믿고 한 걸음씩 지혜를 다해 살아가야만 합니다.

nfl_walsh_02Mike Holmgren –  http://espn.go.com/

목자들과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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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들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2장 8 – 21절)

하나님은 베들레헴에 태어난 당신의 아들을 증거하기 위하여 천사를 목자들에게 보내셨습니다.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천군과 천사의 찬송을 들은 목자들은 비로서 인류를 위한 구주 즉, 그리스도와 주님 되신 분이 태어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예수께서 그리스도요 주님이신 사실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를 위해 진실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 분은 33년 지나자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담당하사 죽으신 뒤 성경대로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가지도록 하신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삽화: Don Clark – The Biggest Stories

성도의 기업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약속의 땅 배분

하나님의 도움과 여호수아의 영도력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과 아모리 족속의 주력부대를 궤멸시켰다. 그러나 아직 많은 땅이 정복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기에 여호수아는 공식적으로 각 지파와 개인들에게 땅을 배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수13-21). 이 배분시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각 지파의 인구수여서 수가 많은 지파는 기업을 더 많이 배분하고 적은 지파는 적게 배분하는 방식을 취하였다(민26:52-56). 그러나 기업을 배분시 몇가지 고려사항이 있었다. 먼저 가나안 땅의 주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이 땅 배분의 전제인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인도하에 제비를 뽑게 함으로써 배분 받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및 섭리를 인정하게 하였다. 셋째, 지형적 특색과 포함될 도시목록을 열거함으로써 각 지파에게 소속될 지역을 분명히 하여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넷째,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경우는 특별히 원하는 지역을 할당하여 정복하게 함으로써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보상을 받도록 하였다(민14:24; 수14:12-13). 다섯째, 레위지파는 분배에 참여하지 못한 대신 이스라엘 전체에서 48개 성읍을 할당 받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 기업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기 위함이었다(수13:33; 21:1-42). 이스라엘 각 지파는 이런 원칙하에 공정히 약속의 땅을 배분받았다. 하나님은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셨던 것이다(수21:45). 따라서 이들이 양떼를 치고 땅을 갈아 농사를 지을 때마다 신실하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게 되었던 것이다(출3:17). 그러나 이 약속의 땅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의 세상적인 필요와 예배를 위하여만 주신 땅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자손이 전 세계를 구원하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모든 열방에 선포할 사명을 진 곳이었고, 그 구원을 이루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셔서 인간들과 함께 거하실 땅이었던 것이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64-65 참조).

이 가나안 땅의 분배는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다가올 세상을 기업으로 받는 아주 좋은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의 헬라식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의 분배는 바로 예수님의 인도로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의 몫을 분배받는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땅에 1400년이 지나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가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의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죄사함을 받고 다가올 영원한 하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믿은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았으므로 주님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함을 넘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골2:6-7).

Spies-Background Journeys of the Israelites. Illustration from the 1897 Bible Pictures and What They Teach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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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하신 그리스도

탄생하신  그리스도 (누가복음  2장 1 – 7절)

오늘 본문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시대를 배경으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호적하기 위해 유대 산골 베들레헴으로 여행하는 요셉과 마리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죄와 사망과 마귀로부터 구원하시고자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나 로마나 전부 세상나라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섭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황제의 칙령을 수행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으나 거기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가져올 그리스도를 낳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할 것을 예언한 미가5장 2절을 성취하셨습니다. 한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짐승의 구유에 놓여졌습니다. 이는 그 분의 겸손을 보여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신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2.     하나님은 섭리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을 배워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