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의 믿음과 그리스도

Albertinelli_Visitation엘리사벳의 믿음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1장 39-45절)

오늘 본문에서 침례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은 자신을 방문한 마리아의 소리를 듣자 잉태한 아이가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어놀고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았으며 곧 마리아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와 그 복중에 있는 아기 예수님을 축복하고 마리아의 믿음을 칭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과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의 축복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의 성취에 그 근본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중에 우리는 엘리사벳과 마리아 처럼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동참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2.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의 성취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함을 영광스러워 하여야 합니다.

Mariotto Albertinelli – Elizabeth and Mary (1503)

구원하시는 하나님

구원하시는 하나님: 계7:9-12

찬송가 가사에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라는 곡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글인데 왜 찬송가를 작사하신 분은 이런 가사를 썼을까요? 이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이런 사고가 뒷받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시내산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려고 바란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꾼 12명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40일동안 탐지한 후 와서 10명이 가나안 백성들은 신장이 장대하다느니 우리는 도저히 들어가서 얻을 수 없다니 하는 악평을 하는 통에 이스라엘은 울부짖었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되돌아 가자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죽게 하시고 그 후의 세대를 이끌고 가나안 땅을 우회하여 사해 동쪽을 지나 이제 요단강 동쪽 모압평지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진격하려니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요단강이었습니다. 이 요단강을 넘으면 바로 하나님께서 그토록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 땅으로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간다는 의미로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고 부른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편, 이 요단강은 봄철 추수때에는 항상 강뚝을 넘칠 정도로 위세가 당당한 강이었고 물살이 급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요단강에 막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3장에 따르면 이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셔서 제사장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서면 창일하던 요단의 물이 멈춰서리라 그러면 그때 백성들로 하여금 건너가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 그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이 온전히 끊어졌고 백성은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던 것입니다(수3:15-17).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첫째,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가지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멀리 우회하여 요단강을 건너게 하였을까요?

최소한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을 항상 기억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신자들에게는 절대적인 힘이 됩니다. 비록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감으로 약속의 땅 밖에서 체류하게 되었지만, 주님께서 이들을 큰 민족으로 만드시어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내실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도 없었습니다 (창46:3-4).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면서 출애굽한 불순종의 세대가 전부 죽자 비로서 그 때가 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 앞에 다시 요단강이라는 물의 장벽이 나타났습니다. 또 한번 주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흐르던 강물은 저 멀리에서 무더기로 쌓이고 진흙투성이던 물 밑바닥은 금새 말라붙어서 홍해를 건너듯이 마른 땅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두 개의 건넘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신다는 점을 늘 상 기억하도록 가견적 체험을 주셨던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수4:23). 이 때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홍해로부터 시작되어 40년을 보냈던 것처럼, 요단강을 건넘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양자 모두 유월절을 전후한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것은 유월절 후 얼마 안되어 발생된 사건이고, 요단강을 건너자 마자 유월절을 가나안 땅에서 보냈던 것입니다(출12:3; 수5:10). 또한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과 연결되어 일어났다는 것 역시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하여 당신의 뜻을 보이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출발을 하게 하심으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려는 의도이신 것입니다(수4:24). 셋째, 요단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 모두에게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단강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물 속을 걷는 방법이고 물이 범람할 시기에는 이 지역의 물 깊이는 3미터 60센티미터에 달하고 빠르고 격렬한 격류가 동반되므로 이는 어린아이들 까지 생각하면 이루기 어려운 현실인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제사장의 발들이 다시 땅을 밟자 끊어졌던 요단의 격류는 다시 흘러서 여전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수4:18).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런 난관을 돌파한 사실 그 자체는 엄청난 메시지를 피아에게 모두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수4:23-24). 한편, 홍해를 건넌 사실은 주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에 대한 좋은 증거였지만 이는 가나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세대 역시 바뀌었습니다. 이제 여리고 가까이에 있는 요단강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경계요 중요한 관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요단강 바닥에 있는 돌 12개를 날라 길갈에 유적지를 건축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항상 기억나게 하는 역사적 체험학습장을 만든 것입니다(수4:20-24).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56-57 참조)

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삶에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불평스럽고 불만족스러운 것들이 있어도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여러분들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고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임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이 사건 역시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먼저 여호수아는 히브리어식 발음이고 이를 그리스어로 읽으면 예수가 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끌고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리는 신약의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요단강을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이 요단강을 건너면 바로 천국으로 상징되는 가나안 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갈 수 없도록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죄의 담이며 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산출됩니다. 이것은 율법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율법은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으로 의롭고 선하지만 율법의 수명자인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욕망 중심으로 살려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의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과 사망을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서 33년간 사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로 가셔서 율법의 저주를 한 몸에 받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모두 다 해결하셨습니다. 이제 요단강과 같이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키는 율법의 문제 죄의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사망의 문제도 그의 부활로 이기셨고 때가 오면 우리 모두를 부활시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예수님은 그 피로 세우는 새언약을 하나님과 체결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의 길로 우리 성도들을 이끌고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사 이제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님을 따르는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셨던 것입니다.

구원하심은 항상 우리 하나님과 하나님의 어린양 곧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Salvation_Mountain 사진: Salvation Mountain, Niland CA  (http://proof.nationalgeographic.com)

마리아와 그리스도

마리아와 그리스도 (누가복음 1장 26 – 38절)

오늘 본문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수태할 것을 고지하였습니다. 이것은 죄와 사망으로 말미암아 절망에 처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고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셔서 자신을 비어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인간이 되시고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자 십자가로 가서 죽으사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셔서 다윗의 왕위에 앉게 하시고 영원히 야곱의 집에서 왕노릇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마리아의 믿음의 순종입니다. 우리 역시 이런 순종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의 순종을 배워야만 합니다.

두 가지의 길

두 가지의 길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톰이라는 분이 어느날 밤 결혼한 아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려고 진통 중에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아내와 이를 상의하니 당장 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땅이 커서 가까운 도시가 보통 3-4시간 걸립니다. 비행기도 이미 끊어졌고 차를 운전하고 이 밤에 가려니 쉬지 않고 달려도 9시간을 여러 산등성이를 넘어 가야하는 문제에 봉착하였습니다. 가려고 준비하는데도 여러시간 걸리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중에 아내는 불과 20분만에 출발 준비를 마쳤고 당신이 운전하는 것이 힘이들면 자신이 운전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중간에 10분만 쉬고 내내 달려 9시간 걸려 도착을 하니 비로 이미 출산을 하였어도 그렇게 늦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톰의 아내를 채근하였을까요? 사명감입니다. 할머니로서의 사명감이 어머니로서의 사명감이 그녀를 몰아세운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길을 걷는데 무슨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최고의 사명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이에 대하여 상반된 예가 비스가 산과 관련된 두 사람의 이야기로써 민수기와 신명기에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산과 얽힌 일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모리아산과 아브라함이요, 호렙산과 모세, 그리고 갈멜산과 엘리야인 것입니다. 비스가 산은 사해 북쪽끝에서 동쪽으로 20킬로미터 지점에 서있는 느보산의 남서쪽 바로 밑에 위치되어 모압평지를 바라다보는 좋은 장소였습니다(신34:1). 모압평지는 사해의 북동쪽으로 요단강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 편에 위치한 땅이었으며(민22:1)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진공하기 직전에 여기서 캠프를 쳤던 것입니다. 여기 비슷한 시기에 비스가산에 오른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 하나는 발람이요 다른 이는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산에 오른 이유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발람은 모압왕 발락의 초청으로 모압을 방문하였습니다. 발람은 유브라테스 강 북쪽 갈그미스 밑에 위치한 브돌이 고향이었습니다 (비스가산에서 북동쪽으로 약 650킬로 떨어짐). 모압 왕 발락이 하나님의 뜻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을 정도였기에 그는 돈을 요구할 수 있었고 그 돈 때문에 발락의 요구대로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가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중의 한 곳이 바로 비스가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을 축복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비스가산은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준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후 오래지 않아 모세가 비스가산에 올랐습니다(신34:1). 모세는 신광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땅에서 죽어야만 하였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산 위에서 가나안 온 땅을 볼 수 있었고 결국 여기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던 그의 일생을 마감하였던 것입니다(신34:1-7). 모세가 바라본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약속의 땅으로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하신 바로 그 땅인 것입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50-51 참조).

여러분 누구의 길을 따르겠습니까? 발람의 길입니까 아니면 모세의 길입니까? 모세의 길을 따라가야합니다. 모세는 장성하였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좁은 길을 걷는 비법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상주시는 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비법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이 자신을 높이고 성공시키려는 것과 정반대의 마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께 칭찬과 상을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 역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던 것입니다.

삽화: 신예현 (www.lifeisyea.com)

사가랴 부부와 그리스도

2015.10.11 | 사가랴 부부와 그리스도 (누가복음 1장 5 – 25절)

오늘 본문에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는 경건하여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지만 늙도록 자식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하나님은 이들의 기도를 응답하시어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사 아들 침례 요한을 잉태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한 선구자로서 보내심을 받을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함을 받을 사람으로 구성되게 되어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하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되 당신의 때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신실하게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경건한 자를 선택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천국백성의 표지 (마7:21-23)

천국 백성으로 인정되는 사람 :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 자

천국백성이 아닌 사람 :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있는 자

 요사이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사건이 신문에 떠들석하게 보도되어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폭스바겐 회사는 아우디, 벤틀리, 포르쉐, 스즈키등의 자동차 회사를 가진 공룡 자동차 회사로 세계를 군림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이 배출가스를 조작한 사실은 최근 미국에서 드러났습니다. 폭스바겐이 미국에 판 디젤차량에는 특수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 장치에 의해 실험실 테스트에선 차량의 배출가스가 실제 운행 시보다 적게 나오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미국의 배출가스 규제 조항은 유럽보다도 2배난 높기 때문에 이런 부정을 저지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폭스바겐이라는 회사의 차량은 중저가여서 배출가스를 줄여 규제를 통과하려면 자동차의 주행성능과 연비, 출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그 경우 차량의 매력이 감소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최대 20조원의 징벌적 배상금을 요구할 수 있으며 각국 정부도 자체 조사에 착수하였고 우리 나라 역시 최근에 수입한 차량을 기준으로 조사에 착수하였다고 합니다. 실상 폭스바겐은 운전대의 상태에 따라 장치가 작동하도록 꼼수를 쓴 것입니다.  통상 실험실에서는 운전대를 조작하지 않고 정면으로 달리는 테스트만 하는데 운전대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배출가스를 줄이는 장치가 켜지고 운전대가 움직이면 배출가스가 정상치로 나오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니 실제 운행시에 비해 실험실에서 배출가스가 적게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정부의 규제를 피하고 구매자들을 속여 왔으니 이 회사의 작태는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고 법적인 처벌이 주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폭스바겐 회사는 이 사태로 약 84조정도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회사가 보유한 현금은82조정도로 현재 폭스바겐 회사의 파산도 가능하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신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분명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을 하고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정작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는 신자들입니다. 천국에서는 이런 속임수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우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여야만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있어 이런 것들이 있어 흡족한즉 우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을 것이며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Scan 21 copy

삽화: 신예현-cars (www.lifeisyea.com)

 

데오빌로와 그리스도

Filippino_lippi_e_masaccio,_san_pietro_in_cattedra,_cappella_brancacci

2015.10.4 | 데오빌로와 그리스도 (누가복음 1장 1 – 4절)

누가복음의 저자 의사 누가는 그리스도의 사건의 처음 목격자는 아니나 자신이 들은 바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조사하고 살펴 누가복음을 작성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영적인 제자인 데오빌로 각하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근원부터 자세히 조사하고 살펴야 우리의 믿음이 확고히 기틀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선포하면서 우리가 본받아 살아야할 주님의 삶의 모습과 가르침을 적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복음서를 읽고 누가가 선포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붙잡고 마음에 간직하여 구원에 이르고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누가복음서를 읽어야만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위에 어떻게 굳게 설 수 있는지 깨달아야만 합니다.

Filippino_lippi_e_masaccio,_san_pietro_in_cattedra,_cappella_brancacciFilippino Lippi – Raising of the Son of Theophilus (1436)

다시 사신 그리스도

2015.09.27 |  다시 사신   그리스도 (마가복음 16장 1-8)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민의 심판자인 것을 온 천하에 선포한 사건이고, 우리를 위한 속죄의 과업을  완성하신 의미이며,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실 것에 대한 확실한 약속인 것입니다. 이 새 세상에서는 다시는 죽음, 곡하는 것, 고통이 없는 것입니다. 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부인하고 사라졌던 제자들과 베드로를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천사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증하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유와 목적을 깨달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3.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신뢰하여야만 합니다.

 

 

 

 

우선순위 II

우선 순위를 바로 잡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첫 걸음입니다 (마태복음 6:33)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한 강연과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화심리학과 관련하여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지도교수가 “자네의 이론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받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가들의 이론을 달달 외워가지고는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독일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는가를 유심히 지켜보니 이들은 자신들이 공부한 것을 다양한 크기의 카드에 잘 정리하고 이를 박스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 카드는 맨 위에 키워드를 적고 그 바로 밑에 연관된 개념과 출처, 날짜를 카드의 앞면과 뒷면에는 내용을 요약해 넣었고 그 후 이들은 정리한 카드들을 자신의 이론에 맞게 다시 재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세운 기준에 따라 일관성 있게 자기만의 이론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무릎을 쳤습니다. “그게 바로 창조적인 편집이라는 걸 그때 알았어여 그들에게서 편집의 가능성을 배운 거죠. 창조라는 게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새롭게 편집하는 거에요. 지금 갖고 있는 내 생각도 내 기억의 조각들이 편집된 결과예요.” 라고 김정운 교수는 이야기 하였습니다(명사들의 문장강화, 122-126).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두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우선순위를 먼저 세우고 이 세운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재편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뒤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재 편집하여 성막을 만들고, 열두지파의 사람들을 재배열하여 하나님의 군대를 만들고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우선순위를 정해줍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의가 산출되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4개가 있습니다. 이 복음서들은 같은 주님의 사건들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 재배열함으로써 각각 독특한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삶을 재편집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의가 산출되기 위해서입니다. 그 방법으로 성경은“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약속까지 주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까요? 제가 인생을 살면서 관찰하여 보니 돈이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살고 돈으로 교육시키려는 태도가 있습니다. 돈을 중심으로 만사를 결정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없는 사람은 그 대신 삶의 지혜를 자녀들에게 가르칩니다. 없는 모습 그 자체가 교육입니다. 그래서 없는 집에서 독립심이 강한 자녀들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놓으신 것입니다.우리 신자들은 물질의 문제에서 세금을 내고 먼저 하나님을 위해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을 작정합니다. 그 다음으로 부모님 봉양을 위해 일정금액을 할당합니다. 그러고 나면 자녀들의 교육비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데 이 가운데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매일 기도하니까요!).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끈기와 인내를 어떻게 가르쳐 주겠습니까? 여러분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삶을 통해 자녀들은 그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둘째, 세워진 삶의 우선순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지혜). 이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은 경험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므로써 우리는 전문지식을 쌓고 전문지식을 쌓은 와중에 어떻게 살지를 잘 알게 됩니다. 치과의사가 의술을 배운 다음 가장 유익한 것은 자신의 이를 잘 관리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독서가 필요합니다. 짐 콜린스의 “성공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스티브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이나 여덟가지 습관” 과 같은 책을 읽어 두어야 세상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혼자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 모든 지혜를 모아 주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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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tbscene.com/

무덤에 장사된 그리스도

2015.09.20 | 무덤에 장사된  그리스도 (마가복음  15장 42 – 47절)

empty tomb by Mike Torevell

오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고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의 무덤에 장사됨으로 이사야 53장 9절의 예언 “…죽은 뒤에는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무덤 속에까지 내려오신 것은 그의 비교할 수 없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는 열망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 삶에 절망이나 어려움이 오도록 허락을 하시는데 이는 다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잡고 마음을 정하십시요 그리고 지혜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도하십시요.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도 주시는 큰 은혜를 맛볼 것입니다.

1.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가 절망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놓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삽화: Empty Tomb by Mike Torev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