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나눔
이제 다시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반역적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이를 갈고 주먹을 불끈 쥐면서 “왜 나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한단 말인가?”라고 말하곤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시여, 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요한복음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고뇌하신 후에 군병들이 그를 체포하러 오고 베드로가 방어하려 했을 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이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시키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의지이며, 그분의 의지는 하나님의 아들조차 복종하실 만큼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두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으며 그의 경외하심으로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그럴 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는 적극적이고 건설적이며 사랑에 찬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 하늘 아버지의 의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반역하는 것은 몹시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Continue reading “매일말씀나눔”하나님의 주권적 인도
잠언 16:1-9
송도 고등학교 오성삼 교장 선생님의 자서전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라는 책의 후기를 읽으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애에 가장 큰 충격은 대학 졸업과 더불어 찾아온 늑막염이란 질병이었다. 대학시절 열악한 경제적 여건의 후유증이었다. 삶의 과정에서 한 번의 뒤틀림은 오랜 파장을 낳았다. ROTC 임관 탈락은 뒤늦은 군 입대로 이어졌고, 2년 3개월의 장교복무 기간도 어긋나 34개월의 사병생활로 이어졌다. 대학원 공부도 늦어졌고 미국 유학도 늦어졌다. 그래서 직장 생활 기간도 남들보다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어렵사리 이뤄 낸 나의 준비과정이 65세에 마감되다니.. 하나님 좀 억울하네요. 목사님들은 70세에 정년을 한다던데….. 종종 중얼거리며 투정하던 나의 직장생활의 아쉬움을 송도고등학교를 통해 해결해 주셨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에 대한 그 감사의 마음을 월드비전을 통해 돌려주기로 하였다.” 이분은 2018년 2월 28일 송도고등학교에서 5년 반의 기간을 교장으로 일하고 72세에 은퇴하는 것을 하였습니다. 대학 동기들 상당수가 50대 나이에 IMF를 맞아 구조 조정되었고, 교수직을 유지하던 친구들 또한 65세 나이로 현직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에 보너스를 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2012년 8월 31일 대학교수 정년을 끝내고 다음 날 9월 1일자로 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크고 작은 자신의 기도를 오랫동안 잊지 아니하고 기억해 두셨다가 꼭 필요한 시점에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로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오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삶에 “만약”이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라는 질문은 지난 세월의 갈림길에서 더러는 본인이 선택했고 더러는 운명에 이끌려 온 날들에 대한 사후 평가적 해석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예를 언급합니다. 60년대 중반 농고를 나와 별 실력이 없던 자신에게 떠오른 생각, “정원이 미달되는 학과를 찾아낸다면 나도 대학엘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따라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선호하는 대학, 경쟁이 치열한 학과에 대한 무모한 도전을 내려놓고 실현가능한 답을 찾았던 그 시절 자신의 초라한 결정은 훗날 오교장 선생님의 삶에 전화위복의 씨앗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운명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만 하지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훗날 되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신자의 삶과 그리스도
매일말씀나눔
3.9일 오전 일찍 그리스의 네압볼리를 떠나 터어키로 건너왔습니다. 국경을 통과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트로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시가 넘었으므로 결국 트로이 목마를 보지 못하고 드로아 항구로 내려왔습니다. 드로아 항구는 사도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였을 때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마게도냐 지역으로 전도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 지역이었습니다. 즉 성령님께서 흑해지역으로 나가던 바울의 일행을 그리스쪽으로 돌리신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게 하여주신 것이었습니다(AD 51년경). 또한 이 항구는 제3차전도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바울의 일행이 집결하여 드로아지역에 세워진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행20장). 그리고 예배를 드리다가 3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린 기적도 발생한 곳입니다 (AD58년경). 그러나 사도 바울 당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선교를 위한 항구로 사용되었던 역사적 기록만 남긴 채 오늘날은 터어키의 땅으로 모슬렘 사원만이 가득합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16: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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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아버지를 거슬러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지도 않으셨고, 반면에 자신의 의지를 거두어들여 아버지께 흡수되기를 갈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계속 지닌 채 아버지께 복종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이 주인보다 높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의지의 반역이나 소멸이 아니라 의지의 자발적인 복종 가운데서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분은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지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자유의지는 모든 권위와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적의지에 흡수되기 위하여 자신의 존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림으로써 자신에게 속박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킴으로서 참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 속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2).
Continue reading “매일말씀나눔”베드로의 부인 예고와 그리스도
누가복음 22:31-34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불과 몇 시간 후면 체포 당하여 심문을 받을 때,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당신을 떠나 흩어지고, 베드로는 자신을 3번이나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경우 베드로는 이런 자신의 연약한 믿음에 절망하여 믿음에서 떠날 수도 있는 절박한 사정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충분히 응답을 받아 베드로는 사도들의 수장으로 초대 교회의 선교 사역의 총 책임자가 되었고, 복음은 전 세계에 뻗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진실한 것이냐의 여부는 항상 사탄의 공격 대상이었고, 이를 시험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나님께 청구하기 때문에, 그런 때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한편, 베드로는 깨어 기도하지 않다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었으나, 그 위기를 예수님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 넘겼습니다.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승천하셨고,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기에 처해서도 주님의 중보 기도 덕에 넘기고 구원 받게 되는 은총을 감사드리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어려움에 빠진 형제 자매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 우리 믿음의 진실성 여부를 시험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만 합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중보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2019. 2. 25 – 3.1
인간성의 모든 부분이 타락으로 인해 비뚤어지고 왜곡되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은 무엇이 선하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길잡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은 우리의 지성에 의하여 검열을 받아야만 합니다. 좋은 예가 분노와 사랑과 관련된 것입니다. 분노에는 의로운 분노가 있고 불의한 분노가 있습니다. 의로운 분노에 대한 가장 좋은 본보기는 악에 대하여 하나님이 의로운 분노를 발하시는 경우입니다. 예수님도 완악한 바리새인들의 행태에 분노하셨습니다. 또한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불의한 분노가 역시 있기 때문에 야고보서에서는 “사람이 분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의로운 분노의 경우 우리는 분노를 발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의 분노의 대부분의 경우는 불의한 분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내부에서 분노의 감정이 일 때, 우리의 지성을 사용하여 이것이 ‘의로운 분노인가 불의한 분노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옳은가?’라고 자문하기 전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지성에 의해 검증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4:26-27).
Continue reading “매일말씀나눔”수요일터예배
요한복음 14:1 – 3
CTS에서 발간한 격월지 2019년 1,2월호를 보면 부산방송 김광득 팀장의 간증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김광득 팀장은 육군에서 소령으로 전역한 분입니다. 과거에는 군복무가 천직이라고 생각할 만큼 육군 장교로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지냈지만, 소령으로 전역하고 응시한 군무관 시험에 계속해서 낙방하자 하나님을 극도로 원망하는 상황까지 내몰렸습니다. 모태신앙인 김광득 씨의 입에서 “하나님 정말 있기는 한 건가!” “이렇게 망하게 하려고 제대 시켰나” “난 이제 마음대로 살아 갈 거야! 하나님은 없어”라는 원망의 말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김광득 씨의 마음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김광득 씨의 입과 머리로는 화가 나 원망하는 가운데,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피할 길을 내어 능히 감당케 할 테니 걱정하지마라”는 확신 넘치는 평안함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김광득 씨는 늘 이때를 생각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넘쳐 가슴이 떨려온다고 합니다. 많은 장애물도 있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자 경력이 없던 김광득 씨는 CTS 공체 PD로 입사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9년 동안 영상 선교사역을 펼쳐오던 중 제작한 ‘바이블 코치’가 2015년도 ‘CTS 전국 최우수프로그램’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고, 이후 ‘하나님의 경제, 세상의 경제’등이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게 되는 등 CTS에서의 삶에 많은 보람과 은혜가 넘쳤다고 합니다.그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고, 앞으로도 CTS에 몸담고 사역하는 제작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모두 충성하고자 결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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