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대한 탄식과 그리스도

성경말씀: 누가복음 13장 30-35

오늘 본문에서 어느 바리새인들이 무리를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현 지역을 떠나도록 경고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죽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헤롯 안티파스는 침례 요한을 죽인바 있기에 이 위협은 현실이었고 주님의 신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각 사람을 이미 잘 알고 계신 주님은 헤롯의 정체를 파악하시고 ‘여우’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단을 두려워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헤롯의 손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에 의하여 로마 총독에게 넘겨져 예루살렘에서 죽으셔야만 하였습니다. 그 때까지는 당신이 보내심을 받은 사명을 이루셔야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탄식하시기를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은 유대 지도자들이 다스리는 예루살렘으로 보내심을 받아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벌을 선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워하게 되고 순교를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국에는 멸망을 받게 될 것이며 유대인들 가운데 오직 남은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심판을 받는 것은 선지자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의 메시지를 듣고 청종하여 하나님의 뜻이 자신들의 삶 가운데 열매를 맺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탄식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도록 살아가야만 합니다.

1.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단을 두려워 하여야만 합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이외에서는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식을 듣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열매를 맺도록 살아가야만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로제타 홀의 큰 업적 중 하나는 조선 여성을 의사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1890년 조선에 온 로제타는 김점동이란 아이, 후에는 박에스더라 불렸던 한 여성을 자기의 통역겸 간호사로 키웠습니다. 원래 김정동은 이화학당 근처에서 태어난(1876년생) 가난한 집 딸로서 정신여학교의 초대 교사였던 신마리아의 동생입니다. 김점동은 1887년 겨울 어머니의 손에 이끌리어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턴 부인을 만나고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그녀는 특히 영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1890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보구여관에서 일하고 있던 여의사 로제타 홀의 통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보구여관(保救女館, 여성을 보호하고 구한다)은 병에 걸려도 아픈 부위를 의사에게 보이는 것을 꺼려하던 조선 여성들을 위해 이화학당 구내에 개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이었습니다. 로제타 홀은 남편과 함께 1895년 평양으로 갈 때에도 김점동을 데리고 갔으며, 남편이 죽은 뒤 1895년 미국으로 갈 때도 데리고 가서 의과 대학에 입학시켜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 여성의 본명이 김점동인데도 불구하고 박에스더라 부르게 된 것은 그녀의 남편 성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국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의 민족을 위한 희생봉사와 남편 박유산의 부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분 모두 남을 위해 애를 쓰다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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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의 삶의 비밀

마태복음 13:44-46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논어에 보면 “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이라는 물리학자에게 딱 들어맞습니다. 그는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힌 동시에 재기넘치는 유모와 익살이 주특기였으며, 훌륭한 봉고 드럼 연주자였으며, 말년에는 중앙아시아의 투바를 여행할 계획을 세울 정도로 끝없는 열정의 소유자였습니다. 게다가 마야의 고문서를 해독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그의 삶에 관해 동료였던 다이슨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습니다. ‘나는 코넬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1948년에 영국에 있는 부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저희 학교에 파인만이라는 젊은 미국인 교수가 있는데요, 반은 천재고 반은 익살꾼이예요. 그의 생기 넘치는 농담 덕분에 물리학과 교수님들과 아이들은 웃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하지만 저도 최근에 알았는데, 그분에게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난 1988년에 다이슨은 또 한 장의 편지를 썼다. “제가 잘못 알았어요. 파인만은 100% 천재에 100% 익살꾼이에요. 그의 깊은 사고력과 재기 넘치는 익살은 분리될 수 없는 그만의 특성이더군요… 파인만은 생각과 농담을 동시에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파인만은 1965년 양자전기 역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에 대한 소감을 얘기하는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왜 과학적 탐구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밝힌바 있습니다. “나는 그 전에 이미 상을 받았어요.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상은 없습니다. 사물의 이치를 발견하는 그 짜릿함, 남들이 내 연구 결과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런 것이 진짜 상이죠. 내게 명예라는 건 비현실적인 거예요. 나는 명예라는 걸 믿지도 않아요. 그건 나를 괴롭히기만 합니다. 명예는 귀찮아요.” 파인만은 잘 들어맞지 않는 것들, 절대 불변할 듯 보이지만 작은 변칙들이 나타나면서 깨어지는 법칙들에 대해서 관찰과 탐구의 대상으로 파악하며, 세상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탐구하여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과학자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인물 사전 및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39628).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자신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하신 세상이요 온 세상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된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할 책임을 부여받았지만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린 이래 죄와 사망과 사탄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속죄의 길이 열렸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발견한 가장 큰 보물이며 진주입니다.
그러면 이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을 가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동기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을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죄에서 건지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 주님을 범사에 즐겁게 해드리고 있다는 그 기쁨에 의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의 삶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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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6-10

오늘부터는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평양 지역의 개척 선교사였습니다. 홀은 의사이자 목사였습니다 1860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1894년 11월 24일 한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과 34살의 아까운 나이였으며, 1891년 12월 한국에 파송된지 불과 2년 11개월만이었고 다음날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업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와 감화를 끼쳤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평안하고 살기 좋은 서울을 떠나 멀리 평양에 가서 선교하기를 무척 원했고 청일전쟁이 끝난 바로 직후 평양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병자를 돌보고 신자들을 심방하고 밤 예배를 인도하는 등 평양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장티푸스에 감염이 되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홀이 죽자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부인과 아들은 수십년 간에 걸쳐 병과 가난으로 버려진 한국민들을 섬김으로써 위대한 업적을 한국 땅에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활동은 양적인 면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평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죽음을 지켜본 선교사 마펫은 “홀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살다가 죽었다. 주님이 명령하매 기꺼이 한국에 왔고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그는 위대한 신앙, 위대한 사랑, 위대한 자비의 사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날 생명의 부활로 무덤 속에서 나올 것입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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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가버나움으로 이전하심

이사야 9:1-7

마태복음 4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나사렛의 북동쪽지역인 갈릴리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이주하신 장면이 나온다. 나사렛과 가버나움은 약 32킬로정도 떨어져 있다. 이 두도시간의 거리야 얼마안된다고 생각되지만 예수님의 이주는 엄청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 중 2가지는 특히 중요하다. 첫째, 이사야 9: 1-7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마태복음은 “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3-16)라고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약 700년 전에 기록된 이 예언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당시의 일뿐만 아니라 미래에 그들이 기대할 수 도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먼저 가버나움은 납달리 지파의 땅에 속하고, 이방의 갈릴리 지역이며, 해변의 길이라는 국제간선도로상에 위치하여 있어 이사야의 이 예언이 직접 적용되는 지역인 것이다. 이사야는 스불론과 납달리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시리아의 정복 (BC722년에 북이스라엘 왕국멸망)으로 깊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이 지역은 하나님의 왕국을 개별적으로 체험할 것이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왕국은 메시야 자신이신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실 때 도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앗시리아의 침공과 이방인들이 이주하여 점령함으로써(앗시리아인은 타 민족을 사마리아 땅에 강제 이주시켰다) 너무나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 지역에 빛이 비추일 것이다(눅2:32; 요8:12참조). 이후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들이 얼마나 어둡과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알 수있다. 이사야가 생존할 시 이 지역은 앗시리아에 의하여 황폐되었고, 강제 이민정책이 이루어졌지만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하스모니안 왕조가 통치할 때 이 지역의 유대인들은 학살되었고, 후에 유대주의자들이 갈릴리 호수 동쪽 가운데서 약 4킬로 떨어진 아르벨라 지역에서 헤롯 대왕에게 봉기하였을 때 헤롯은 군대를 보내 학살한 사건도 있었다. 이들이 빛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과 인내의 700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사야 9장 6-7이 예언한 대로 놀라운 전략가 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신 아버지이신 평강의 왕께서 오사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기 시작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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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나눔

2017. 10. 30-11.3

소다 옹이 1867년 10월에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같은 해 12월에 미국에서는 레이놀즈 선교사가 태어났습니다. 레이놀즈는 햄펀시드니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남장로교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남달리 어학에 재능이 있어 라틴어 독일어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희랍어 등 성서 원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얻은 원어 실력으로 우리 나라 성서번역(특히 구약성서)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대학 시절 만난 부인 팻시 볼링은 버지니아 주 개척자 가문의 출신으로(1868년생) 교사였고, 음악 애호가이며 선교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이 두 분은 1893년 한국으로 선교오기 약 6개월 전 결혼하였습니다. 그가 한국에 오게 된 경위는 1891년 안식년 차 미국에 잠시 귀국한 언더우드의 보고 연설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즉, 1891년 10월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외지선교 신학교연맹 대회가 열렸고, 언더우드는 보고연설을, 당시 밴더빌트 대학에 재학 중이던 윤치호는 조선에 관한 강연을 하였습니다. 이들의 조선 선교에의 초청에 레이놀즈, 데이트, 전킨에게 큰 감화를 주었고 3분은 조선 선교를 위한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행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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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

고린도 전서 1장 18-31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누구에겐가 전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한 사람은 당연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누구든지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상황에서는 말로의 전도도 중요하지만 삶으로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는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변화된 성도가 참으로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수리해서 세상에 진열해 놓으시는 상품들입니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의 저서 “하나님의 지하운동(상)”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루마니아가 공산주의자들 하에 놓여 있었던 1950년대 주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게 된 범브란트 목사님의 감방에 간수가 어느날 바구니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속에는 이불깃, 수건 등의 상상도 못할 사치품들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고 남을 정도로 들어 있었습니다. 양복장이인 에밀이 “수를 잘못 세었던 모양이지” 라고 말하면서 “남는 것을 잘라서 옷을 만듭시다. 내가 따뜻한 셔츠들을 만들겠습니다” 라고 하자, 변호사인 이온 마쩨아루가 불안스러운 듯이 “나라의 재산을 훔치는 짓”이라고 응수 하였습니다. 감옥에 있던 사람들이 양 쪽의 편으로 갈라져서 서로간에 논쟁이 벌어졌을 때 요시프라는 청년이 범브란트 목사님의 견해를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정부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것을 빼앗은 것이며, 우리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이 겨울에 얼어죽지 않고 살아야 하기에 절대로 나쁜 일이 아니다” 라고 답변하였습니다. 변호사 마쩨아루는 “나는 법을 지키고 싶다”고 대답하였으나 이에 대하여 목사님은 “그러나 모든 법은 누구에겐가는 불공평합니다. 법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백만장자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당신이나, 이 사람들에게도 도적질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몹시 배고팠을 때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일을 한 것을 용서하셨습니다 (제사장 이외에는 절대로 먹을 수 없는 거룩한 떡을 먹은 것에 대하여 용서하시고 오히려 정당하게 자비를 베푼 근거로 바리새인들에게 주장하심)” 결국 마쩨아루도 보조를 같이 하였습니다. 후에 마쩨아루는 이런 종류의 타협을 하기를 원치 않는 특별한 이유를 목사님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관선 검사였습니다. 그리고 한창 시절에 수백명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나는 ‘내가 무어라고 한들 상관이 없다. 여하튼 당은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이들을 감옥에 보낼 터이니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어떤 잘못이 있어서 나는 희생자가 되었고 발리아 니스트룰루이에서 십오 년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기독교인 죄수 하나가 나에게 친절히 해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먹을 것을 나에게 나누어 주고 나의 보호자 역할을 다 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전에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왜 그가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는 먹을 것과 피신할 곳을 찾아 나의 농장을 찾아 왔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빨치산으로 체포되었고 나는 이십 년 언도를 받았습니다.’ 나는 ‘그럴수가!’하고 소리쳤는데 그가 어쩐지 이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내가 그의 사건을 맡았던 검사였습니다. 그 사람은 한 번도 나를 비난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악을 선으로 갚는 그의 본보기를 보고 나는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