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마리아 마을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9: 51-56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뒤 부활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을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이란 이런 주님을 본받은 ‘자기 부인’의 삶입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사욕을 위한 대통령 권력의 남용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가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자기 부인’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쫒아가는 것은 지금은 심판의 시기가 아니라 구원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님을 보내실 것이고 그 후에 주님이 하실 심판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보다 훨씬 무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 대해 증거와 표적이 되도록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전도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1.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하여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이 어느 시기인 줄 깨달아야만 합니다.

3. 그리스도인들의 전도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성경나눔

2017.3.6 – 10
고통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된 인격을 낳으며, 그러한 인격은 소망을 낳게 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롬5:2)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넘어선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바로 지금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어 가실 것을 소망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고 이 소망은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면 살수록 우리가 변화되며, 또 스스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점점 예수님을 닮아 갑니다. 자신이 점점 더 사려 깊어지고, 인정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도 더 많아지고, 더 강해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더 순전해지며, 더 오래 참게 됩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하나님이 약속대로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더 읽기

그리스도의 법을 실행하자

마태복음 6 1-4

1905년 한국이 을사보호조약으로 그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양반고을 공주에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선교사 샤프와 윌리엄스, 토착전도인 윤성렬과 안창호등이 2년간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교인 수는 50명을 넘지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계기로 한강 이남에도 강력한 부흥이 시작되었으며, 공주에서 가장 강하게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4월에 열린 공주읍교회 부흥회에서 교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였다 하며 간음하였다 하며 속이고 도적질하였다 하며 우리 주를 입으로만 믿었다 하며 어떤 이는 그간 안창호씨를 원수같이 보았다하며 슬피 애통으로 서로 위로하며 날마다 이와 같이 일주일 동안 지냈더니…”(신학월보, 1907.4.21). 더 읽기

제자도의 가르침과 그리스도

성경말씀: (눅 9:44-48)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제자도의 핵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죽으셔야만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는 본래 세세에 찬양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께 반역하는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도래할 영광스러운 메시야 왕국을 꿈꾸며 거기서 누가 높은 지위에 앉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투었습니다.그들은 섬기러 오신 주님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도 이런 주님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누가 크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명예, 권력, 소유를 위해 무한 경쟁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면 우리는 하늘에서 진정한 부와 권력과 명예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주님과 함께 다가올 세상의 상속자들이고, 마지막 날에 주님의 칭찬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물로 죽으셨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목적을 깨닫는 것이 제자도의 첫걸음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SBC매일말씀나눔

17/2/20
오늘 부터는 레이 스테드먼이 지은
고통이 주는 교훈(IVP 소책자)을 가지고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책자는 약40년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그 당시에 그가 들은 이야기가 먼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부모의 침실에 들어와 총을 쏘아 겨우 피한 뒤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그 소년을 정신병원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넘기고 간신히 살아난 호된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필두로 암과 싸우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난에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지금이나 그 때나 아니 인류 역사의 어느 순간을 보더라도 사람들은 많은 문제들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와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기란 무척 힘들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시련을 당할 때 먼저 보아야 할 성경은 로마서 51-5입니다. 오늘은 로마서의 이 부분을 읽고 묵상하면서 믿음과 시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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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힘

골로새서 3:15-17

동 유럽의 어느 유대인의 마을에 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대식구가 한 방에 모여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는 좁은 방에 여러 식구가 함께 지내는 게 너무 불편하고 싫었습니다. 아이들은 종일 시끄럽게 떠들고 부인은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어느 날 머리끝까지 짜증이 난 남자는 지혜롭다고 소문난 랍비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랍비는 방에서 닭을 길러보라는 의외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소를 데려다 키우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말을 데려다 키우라고 했습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고 남자는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랍비가 와서 모든 동물을 집 밖으로 옮기고 일주일 뒤에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랍비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지금은 좀 어떻습니까? 지낼만한가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조용해졌고 방도 훨씬 넓어 보입니다. 이렇게 상쾌한 공기를 마시게 돼서 정말 좋습니다. 온가족이 화목하고 아이들도 행복해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사실 남자의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랍비는 최악의 상황을 조성함으로써 남자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상황이 악화되어야만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일꺄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강의한 샤하르 교수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감사야 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탈 벤 샤하르 강의, 행복이란 무엇인가,p109 – 110).  더 읽기

제목 변화산 아래 사람들과 그리스도

(누가복음 9장 37-43)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시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직접 증거를 들은 주님과 3명의 제자들은 다음날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이미 산 아래에서는 많은 무리가 모여들어서 귀신때문에 고통당하는 소년을 둘러싸고 각종 견해들이 오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그 어떤 누구도 고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없는 세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은 혼란과 무능력의 세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년은 그리스도께 왔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번에 귀신을 내쫓아 회복시키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은 죽었고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선고하신 하나님의 저주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영생의 길은 없을까요?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모두의 죄를 담당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지금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정하시고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준비를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야만 하나님을 알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 세상의 문제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정리할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신실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함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야만 합니다.

1.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은 혼란과 무능력의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을 아는 참 빛을 주심을 알아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믿음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야만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차를 몰고 가다가 수렁에 빠지면,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가라앉는 차를 바라보며 무력하게 서 있어야 한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리 위안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차는 손상되었으며,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인도를 놓쳐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일까요? 손상된 부분은 회복 불가능한 것입니까? 이제 인생 행로를 포기해야 합니까? 감사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우리의 실수와 어리석은 행동을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 가운데 녹아들게 하시며, 그것에서 선을 가져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주권에서 나오는 경이로움의 일부입니다. 내가.메뚜기.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25-26).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여 절망에 빠진 후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셨으며(고전15:4-5), 다시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서 함께 조반을 드신 후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21). 그 이후에도 베드로를 인도하시고 그의 행로를 바로 잡아주셨습니다(10, 2:11-14).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바로 같은 예수님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진노를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꾸어 놓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불행 역시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분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제임스 패커 박사는 어느 목회자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교회와 교파를 떠나야 한다고 느낀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분임을 노래한 찰스 웨슬리의 찬송을 인용했는데 이 찬양시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장이시며/ 위의 것을 추구하는 모든 자의 인도자시여,

우리는 당신의 그늘 아래 거하나이다./ 당신의 보호하시는 구름,

당신의 은혜는 우리의 힘,/ 당신의 말씀은 우리의 통치자,

여호와의 영광은 우리의 목적이 되었나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103:1-2).

 

인도는 은혜의 언약 아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주권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는 우리가 갈 길을 보여 준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가 어떤 실수를 저지르든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보장한다는 더 근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딴 길로 빗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받치고 있습니다.그분은 우리를 붙드시고 구조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선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인도를 논하는 올바른 맥락은 우리 영혼을 망치도록 놓아 두지 않으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라는 맥락일 것입니다. 이 논의의 관심사는 우리의 안전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새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안전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6:10).

 

조셉 하트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 그분의 영이 우리를 안전하게 집으로 인도하시도다/ 우리는 과거의 모든 것을 인하여 예수님을 찬양하며/ 앞으로 올 모든 것을 인하여 예수님을 신뢰하나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불신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면이 있지만, 그것이 보호자 되시는 주님,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의지하는 기쁨을 희미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 위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죄의 담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이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지극히 선하시며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담대하게 하루 하루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0-11).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자

데살로니가 전서 5 16-18

미국의 어떤 부인이 병을 앓다가 그만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좋은 병원에서 훌륭한 의사를 통해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시력을 잃고 만 것입니다. 남편은 졸지에 시각 장애인이 되어 버린 아내를 위하여 정성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집안일도 해주고, 아내의 회사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또 퇴근 때는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차로 데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돌보다 보니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소. 이제 나도 내 일을 좀 해야 하니까 내일부터는 당신 스스로 회사를 다니도록 합시다. 집안 일도 내가 다 할 수는 없으니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이 하는 것이 좋겠소. 남편의 이 말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부인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내가 실명했다고 벌써 귀찮아하는구나.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이제 나에 대한 사랑도 식었구나. 좋다. 내 힘으로 해볼 테다. 부인은 다음 날부터 혼자서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넘어지고 부딪치고, 다치고,깨지고, 길을 헤매고, 외롭고 힘들지만 그렇게 다녔습니다. 2년 이상을 그렇게 다니던 어느날, 늘 타고 다니던 버스 기사가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부인만큼 남편의 사랑을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받는 사람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남편께서는 매일 부인의 뒤를 조용히 따라 다니며, 버스 안에서는 꼭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부인이 회사의 문 안에 들어설 때까지 지켜보고는 돌아가시더군요.부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그 깊은 사랑과 그리고 어느 새인가 홀로 설 수 있게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이민우, 그냥 사랑하거라, 232-33). 더 읽기

제자도와 그리스도

누가복음 9:23-26절

오늘 본문은 제자도의 동기에 대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분명히 보여 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먼저 자원하여 주님을 따라 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도는 자발적인 노력으로 출발되는 것이라는 측면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두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첫째는 세상에서 칭찬을 받겠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면이요 두번째는 오직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칭찬을 받겠다는 일념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는 절대의 자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씌여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나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께만 받으려는 기대를 가지고 약속을 믿고 과감하게 삶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 제자도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2. 제자도는 우선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는 동기를 부인하여야만 합니다.
  3. 제자도는 주님의 칭찬을 받으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4. 제자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주님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