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터예배

고린도전서 15:50-58

1933년도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습니다. 크리스마스 실 보급 덕분에 셔우들 홀의 결핵퇴치사업과 요양원 사업에 적극 후뤈하는 많은 친구들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연말이 지난 어느날 요양원 담당인 김 목사가 홀박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요양원의 어린 환자인 혜순이라는 소녀가 정신적으로 극히 의기소침한 상태에 있는데 희망을 불어넣어줄 방도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동안 여러 방법을 시도해 왔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혜순이는 자신의 병이 치유될 가망이 전혀 없다며 심히 낙담하고 있었고 음식조차 잘 먹지 않고 있었습니다. 홀 박사는 문득 미국에서 도착한 아름다움 크리스마스 카드 한 상자가 생각났습니다. 이 카드들은 한 번 사용했던 것들이지만 요양원에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백악관에서 온 카드들을 들고 혜순이에게 갔습니다. 혜순이에게 그것들을 보어주면서 프랭클린루즈벨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것들을 보여주면서, 미국 대통령도 헤순이와 같은 병에 걸렸었으나 회복되고자 하는 결심 하에 의사의 지시를 잘 따라서 건강을 회복하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소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스치며 카드를 한 장 가지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홀 박사에게 부탁하여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주면 병을 이기려고 힘껏 노력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홀박사는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였고 혜순이는 제대로 밥을 먹고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홀박사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사연을 적은 편지와 아들 윌리엄이 제안한 대로 조선 우표와 크리스마스 ‘실’을 동봉하여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루즈벨트 대통령 역시 우표수집에 열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34년 6월 18알자 소인이 찍혀 있는 백악관에서 보낸 편지가 이윽고 홀박사에게 도착했습니다. “친애하는 닥터 홀! 5월24일자로 보내주신 서신에 대해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는 특별히 당신이 이야기한 꼬마 소녀에 대해 관심을 표합니다. 그 소녀가 완쾌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당신의 어린 아들 윌리엄에게 우표를 보내준 데 대해 깊이 감사한다고 말해 주십시오. 그 우표들이 나의 수집에 보탬이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혜순이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고얼마 후에 완전히 건강을 되찾아 데리러 온 오빠와 함께 집을 향해 뛰어 갔습니다. 그 소녀는 백악관에서 온 카드를 자랑스럽게 가족들에게 보여주면서 “미국 사람들도 아프기도 하고 고행도 해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항상 남을 도와 주려고 노력한대요” 혜순이의 가슴은 공무로 바쁜데도 불구하고 멀리 조선에 있는 작은 소녀를 기억해준 대통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찼으며, 이 사건이 여기저기 전해지자 크리스마스 실의 보급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결핵환자들도 자기 병을 수치스럽게 여겨 감추지 않고 훨씬 더 초기 증세 때 병원에 찾아 왔습니다. 홀 박사가 운영하는 해주 구세요양원에서도 이러한 전국적인 변화의 흐름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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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신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었으나 2천년 전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시었습니다. 그 목적은 주의 사자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라고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른 것과 같이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이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려 하나님의 뜻이 이루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타락한 후 그 후손은 모두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유의 상속자로 임명되신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그들의 죄악을 친히 십자가 위에서 담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순종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으로 고백한 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계명을 따라 살아가야만 합니다.또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뜻을 행할 수는 있으나 사람들의 죄책을 걸머질 수는 없으며, 사람들의 죄책을 질머질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죄와 사망과 마귀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도록 하여야만 합니다.

1.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부터 위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꿈과 비전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책을 담당하실 수 있기에 그리스도를 전파하여야만 합니다 .

매일말씀나눔

2017.12.18 – 22

오늘부터는 고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 모음 “예수 믿는 가정 무엇이 다른가?”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가정 생활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가정이라면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사회조직입니다. 그 목적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모든 창조물들을 다스리게 하는 요람인 동시에 사랑의 학교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정은 항상 문제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현대에는 가정의 형태마저 위태롭게 변모하고 있으며 많은 갈등을 내재한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제의 가지가 복잡하게 뻗어 있다 할지라도 그 뿌리는 한곳으로 모여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거나 거역하는 사람들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있습니다. 남녀를 창조하시고 제일 처음 결혼 주례를 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영구불변의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대의 신화처럼 취급해 버리고 맙니다. 그 결과 서구 사회의 가정은 너무나도 황폐화 되었고 심지어 동성혼까지 합법화를 시킨 무서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그 영향이 심대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구원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와 모든 가정 구성원들이 그 말씀에 순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목회 경험을 통하여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가정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비극들이 치유되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주님의 가정들은 병들어 썩어가는 현대 가정의 방부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주님의 빛을 환히 비추는 램프가 되어야만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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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

누가복음 17: 20-21

닥터 셔우드 홀은 조선인들의 공중위생교육을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반기독교인들에 의해 여러모로 방해를 받아 고심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어느날 진찰 받으러 온 환자 중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닥터 홀은 깜작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공중 집회를 가지려고 할 때마다 허가를 내주려고 하지 않던 바로 그 관리였기 때문입니다. 홀 박사는 부드럽게 어떻게 이 아침에 왔냐고 물었더니, 그는 풀이 죽어 “기침이 심하고 가슴이 아파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무당이 하라는 대로 다 해봤으나 더 심해지기만 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청진기를 대고 귀를 기울이자 폐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말해 주었더니 그의 얼굴은 충격과 공포로 굳어졌습니다. “폐병이 내 가슴 속에 있다면 나는 죽을 게 틀림없어요” 하면서 신음하더니 갑자기 “의사 선생님 지금 제 외아들이 몹시 걱정됩니다. 그 아이도 밤새도록 기침을 하고 있습니다.” 홀 박사는 대답하기를 “그 아이도 병균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폐병은 전염력이 매우 강하여 다른 가족에게 대단히 쉽게 전염됩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열심히 마을의 집회 허가를 얻으려고 애썼던 겁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마지막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아들의 폐병 여부 검사를 부탁하였습니다. 허락을 하자 얼마 후 몸이 마르고 병색이 짙은 소년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진찰해 보니 역시 폐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하여 목의 내분비선에도 감염이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격동되어 흐느껴 울며 “그는 내 외아들입니다. 저한태는 금과도 같습니다.” 하였습니다. “선생님 그 기독교 신의 신통력을 제발 써주셔서 내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네?” 하고 애원하였습니다. 닥터 김과 의논한 뒤 격리되어 있는 폐결핵 병동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치료받아 완쾌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완쾌되어야만 조선에서 결핵과 싸워 이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닥터 홀은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기독교 신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조선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닥터 홀은 기도의 응답을 많이 보아왔고 경험도 했기 때문에 기도의 힘은 절대 믿었습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소년의 병세는 거의 가망이 없어 치료되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만 여러가지 요법과 영양식을 통하여 소년은 차츰 회복되어 갔고 동시에 소년의 아버지도 병세가 회복되었습니다. 신자들은 더욱 열심히 기도했고, 닥터 홀도 열심히 치료해나갔습니다. 이들이 거의 완쾌되어 갈 무렵 옛날 닥터 홀의 부모님이 평양에서 개척 선교를 시작할 때 부모님을 박해했던 행정 장관이 해주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진찰실에 왔고 닥터 홀이 지금까지 치료하던 사람과 그의 외아들은 이 행정 장관의 아들과 손자였습니다. 그는 닥터 홀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내가 전에 죽이려 했던 사람의 아들이오. 당신 부친의 조수였던 김창식도 내 손에 죽을 뻔 했었소. 내가 이렇게 기독교를 박해하였는데 우리의 상식으로 보면 기독교인들이 보복을 해야할 터인데 당신네 기독교인들은 내 아들과 손자에게 베풀어 준 것 같이 사랑과 친절을 보여주었고 나는 이제 기독교인들을 존경하게 되었소. 전에는 내가 기독교는 나쁜 종교라고 생각하여 탄압하였지만 지금 와서야 내가 잘못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소” 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닥터 홀의 의료사업은 물론 교회를 보호하여 주었고 집회 허가도 신속하게 내어 주었습니다. 소년은 빠지지 않고 주일학교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데는 이러 저러한 곤경이 가로막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혜를 다해 주님과 이웃을 섬기면서, 도움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는 역경을 디딛고 확장되게 마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들 가운데 있음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큰 잔치의 비유와 그리스도

눅 14: 15-24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잔치에 참석한 유대인들에게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잃게 되어 다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으며, 그 대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들과 저는 자들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의 소외된 계층과 길과 산울타리가에서 사는 사람들로 상징되는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구약 성서가 영생을 주는 줄 알고 부지런히 살펴보고 외적인 금식, 십일조, 할례, 안식일 규정등에 몰두하여 다른 사람들과 차별을 두는데 신경을 쓰고 정작 중요한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의와 자비를 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하나님의 의와 자비를 전파하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안식일 규정등을 트집잡아 주님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면서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하여 지금 우리와 함께 존재하며, 점점 발전하다가 마지막 날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그 핵심은 예수님을 왕으로 우리 중심에 모시고 그를 위하여 선한 일에 부요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1.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 수 있어야 합니다.

2.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만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2017.12.11-15

한국 구세군은 1907년 구세군의 창설자인 윌리엄 부스(1829-1912)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 집회에 참석했던 한국 유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부스는 한국원정 즉 선교를 결심하고 먼저 수행원을 한국에 보냈다가, 1908년에 이르러 호가드 대령 부부를 한국 원정 사령관으로 파송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호가드 사령관은 도착 즉시 선교를 개시 하였습니다. 그후 1909년 서울 서대문구 평동에 구세군 본영 사무실을 차리고 “구세공보”를 창간했으며, 그 이듬해에 구세군사관학교와 서울 교회당을 개설하였습니다. 1924년부터는 빈민 숙박 사업을 개시하고 1928년부터 자선냄비를 시작했습니다. 양화진에는 4-5명의 구세군 장교와 어린이들이 묻혀 있습니다. 여기서는 한국 구세군 중 헌신적인 두 분의 삶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도식(리처드 윌리엄) 부령입니다. 그는 1878년 영국 런던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런던 거리에서 가두 전도에 참석했고 12세부터는 ‘꼬마 음악단’ 단원으로 활약하였을 정도로 구세군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유럽 각국과 남아프리카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지를 두루다니며 구세군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가 1918년 한국에 파송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세군 육아원에 천연두가 퍼지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았지만 전염되어 1920년 별세하였고 그의 기념비가 북아현동에 세워져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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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없는 삶 –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

전도서 9:7-12

“띠’라는 책을 읽어보면 고산 거벽 등반에서 눈에 띠는 업적을 남긴 산악인 박정현씨가 후배와 함께 촐라체봉에 등정한 후 내려오다가 사고를 당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동상에 걸려, 손가락 8개를 결국 자르게 된 사연을 적어 놓았습니다. 손가락을 자른다는 것은 산악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박정현씨는 비록 구사일생으로 구출되고 한국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동상에 걸린 손가락을 절단하여야만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망설였고 얼마나 당황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산과의 인연을 맺은 것을 후회 하였습니다. 산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친구 대신 등산장비를 판매하는 가게에 심부름을 갔다가 주인 아저씨가 “너 이 번주에 산에 가볼래?” 하는 말에 “네”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뒤 18살에 에레베스트 산을 등정하였고 2005년에 촐라체봉을 후배와 함께 둘이 등정하기까지 도합 14번의 히말라야의 고봉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력을 뒤로 하고 이제는 장애인으로 살아가야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고산 거벽 등반에서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손가락이 잘라진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내는 병실에서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뒤 마음을 정리하였는지 다시는 그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나아가 아이들은 장애인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한 장애인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또 다시 산악인이 된 것을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박정현씨는 여기서 절망하지 않고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동호인들의 모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패러글라이더로 히말라야를 넘는 ‘이카로스의 꿈’ 이라는 다큐멘타리를 찍은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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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자비의 교훈과 그리스도 2

진정으로 겸손한 자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셔들인 자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자신을 비우사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사흘만에 다시 살리시고 지극히 높이사 만유의 주님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높이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고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듯이 병과 연약함으로 고통을 받는 많은 병자들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심으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비를 베푸신 그리스도 처럼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 같은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자들을 보살펴야만 합니다. 이런 자비의 실천은 말로만으로는 안되며, 반드시 행동이 수반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희생을 무릅쓰고 여러제도를 개선하고 불우한 환경에 처한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마지막날 의인의 부활 시에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갚음을 받을 것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오늘 하루도 살아가야만 합니다.

1.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양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자비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확인해 주는 성령님의 열매임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2017. 12. 4 -8

이상재, 윤치호, 유성준, 김정식등을 비롯하여 여러 지식인들을 YMCA로 끌어들인 데는 형인 플레쳐 브로크만의 공헌이 컸습니다. 플레쳐 브로크만은 가끔 초빙을 받아 우리나라에 와서 YMCA 지도자 훈련에 공헌 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 당시 YMCA의 총무 신흥우가 농촌 운동을 시작할 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신흥우는 동생 브로크만과 함께 국제 YMCA를 방문 하고 그 지도자들과 협의회를 가졌는데 거기에는국제 YMCA의 총무를 비롯하여 백화점 경영자 J.C. 페니와 형 브로크만이 참석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레이크플래시드 5인회담’이라는 것인데, 이 회담에서 국제 YMCA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열 명의 농촌운동 전문가를 파송하는 동시에 기술 및 재정 원조를 해 주는데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형 브로크만의 제일 큰 공헌이라 할 점은 그의 동생 브로크만을 우리나라 YMCA 간사로 선정 파송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동생 프랭크 브로크만(1878-1929)이 중국에서 자기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것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1902년 대학을 졸업하고 네브라스카 오마하의 학생부 간사로 취임하여 유명한 F.I 윌리스의 총무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905년 한국 YMCA의 공동 총무로 파송되어 내한한 뒤로, 1929년에 죽어 양화진 외인묘지에 묻힐 때까지 24년간 한국 YMCA를 위하여 헌신했습니다. 그가 끼친 공헌은 실로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행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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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을 제대로 붙이자

(행11:24-26)

1892년 동유럽 작은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고, 1895년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도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각자의 동네 성당에서 복사(服事)를 담당했는데 성찬식에 포도주를 따르던 중 잔을 엎지른 동유럽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호된 비난과 냉소였다 “제단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아라”. 반면 미국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특히 담당 신부는 “나도 어릴 때 실수가 많았단다. 너도 커서 신부가 되겠구나”라고 격려했습니다. 후에 동유럽 그 아이는 무신론자로 유고슬라비아를 37년간 통치한 공산주의자 티토가 되었고. 미국 아이는 카톨릭대 교수이자 존경받는 폴턴 쉰 대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말투만 바꿨을 뿐이데” 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리처드 밀러는 시카고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몇 개의 학급에서 담임선생에게 부탁하여 ‘모두 깔끔하구나’라는 라벨을 학생들에게 붙이게 했다. 그러자 82퍼센트 이상의 아이들이 쓰레기를 보면 주워서 휴지통에 버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담임 선생이 그런 라벨을 붙이지 않은 학급에서는 교실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어도 무시하는 아이가 많았고 쓰레기를 줍는 아이는 약27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51p). 그래서 책 저자는 친구가 ‘이런 사람이면 좋을 텐데’하는 희망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되어 달라고 설득하기 보다 오히려 라벨을 잘 붙여서 친구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유도하면 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죄인들이라고 대내외에 선포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교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두가지 라벨을 항상 우리 삶에 붙이면 겸손하게 되어 서로 서로를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