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

누가복음 17: 20-21

닥터 셔우드 홀은 조선인들의 공중위생교육을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반기독교인들에 의해 여러모로 방해를 받아 고심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어느날 진찰 받으러 온 환자 중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닥터 홀은 깜작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공중 집회를 가지려고 할 때마다 허가를 내주려고 하지 않던 바로 그 관리였기 때문입니다. 홀 박사는 부드럽게 어떻게 이 아침에 왔냐고 물었더니, 그는 풀이 죽어 “기침이 심하고 가슴이 아파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무당이 하라는 대로 다 해봤으나 더 심해지기만 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청진기를 대고 귀를 기울이자 폐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말해 주었더니 그의 얼굴은 충격과 공포로 굳어졌습니다. “폐병이 내 가슴 속에 있다면 나는 죽을 게 틀림없어요” 하면서 신음하더니 갑자기 “의사 선생님 지금 제 외아들이 몹시 걱정됩니다. 그 아이도 밤새도록 기침을 하고 있습니다.” 홀 박사는 대답하기를 “그 아이도 병균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폐병은 전염력이 매우 강하여 다른 가족에게 대단히 쉽게 전염됩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열심히 마을의 집회 허가를 얻으려고 애썼던 겁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마지막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아들의 폐병 여부 검사를 부탁하였습니다. 허락을 하자 얼마 후 몸이 마르고 병색이 짙은 소년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진찰해 보니 역시 폐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하여 목의 내분비선에도 감염이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격동되어 흐느껴 울며 “그는 내 외아들입니다. 저한태는 금과도 같습니다.” 하였습니다. “선생님 그 기독교 신의 신통력을 제발 써주셔서 내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네?” 하고 애원하였습니다. 닥터 김과 의논한 뒤 격리되어 있는 폐결핵 병동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치료받아 완쾌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완쾌되어야만 조선에서 결핵과 싸워 이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닥터 홀은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기독교 신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조선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닥터 홀은 기도의 응답을 많이 보아왔고 경험도 했기 때문에 기도의 힘은 절대 믿었습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소년의 병세는 거의 가망이 없어 치료되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만 여러가지 요법과 영양식을 통하여 소년은 차츰 회복되어 갔고 동시에 소년의 아버지도 병세가 회복되었습니다. 신자들은 더욱 열심히 기도했고, 닥터 홀도 열심히 치료해나갔습니다. 이들이 거의 완쾌되어 갈 무렵 옛날 닥터 홀의 부모님이 평양에서 개척 선교를 시작할 때 부모님을 박해했던 행정 장관이 해주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진찰실에 왔고 닥터 홀이 지금까지 치료하던 사람과 그의 외아들은 이 행정 장관의 아들과 손자였습니다. 그는 닥터 홀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내가 전에 죽이려 했던 사람의 아들이오. 당신 부친의 조수였던 김창식도 내 손에 죽을 뻔 했었소. 내가 이렇게 기독교를 박해하였는데 우리의 상식으로 보면 기독교인들이 보복을 해야할 터인데 당신네 기독교인들은 내 아들과 손자에게 베풀어 준 것 같이 사랑과 친절을 보여주었고 나는 이제 기독교인들을 존경하게 되었소. 전에는 내가 기독교는 나쁜 종교라고 생각하여 탄압하였지만 지금 와서야 내가 잘못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소” 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닥터 홀의 의료사업은 물론 교회를 보호하여 주었고 집회 허가도 신속하게 내어 주었습니다. 소년은 빠지지 않고 주일학교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데는 이러 저러한 곤경이 가로막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혜를 다해 주님과 이웃을 섬기면서, 도움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는 역경을 디딛고 확장되게 마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들 가운데 있음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큰 잔치의 비유와 그리스도

눅 14: 15-24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잔치에 참석한 유대인들에게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잃게 되어 다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으며, 그 대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들과 저는 자들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의 소외된 계층과 길과 산울타리가에서 사는 사람들로 상징되는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구약 성서가 영생을 주는 줄 알고 부지런히 살펴보고 외적인 금식, 십일조, 할례, 안식일 규정등에 몰두하여 다른 사람들과 차별을 두는데 신경을 쓰고 정작 중요한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의와 자비를 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하나님의 의와 자비를 전파하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안식일 규정등을 트집잡아 주님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면서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하여 지금 우리와 함께 존재하며, 점점 발전하다가 마지막 날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그 핵심은 예수님을 왕으로 우리 중심에 모시고 그를 위하여 선한 일에 부요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1.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 수 있어야 합니다.

2. 주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만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2017.12.11-15

한국 구세군은 1907년 구세군의 창설자인 윌리엄 부스(1829-1912)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 집회에 참석했던 한국 유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부스는 한국원정 즉 선교를 결심하고 먼저 수행원을 한국에 보냈다가, 1908년에 이르러 호가드 대령 부부를 한국 원정 사령관으로 파송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호가드 사령관은 도착 즉시 선교를 개시 하였습니다. 그후 1909년 서울 서대문구 평동에 구세군 본영 사무실을 차리고 “구세공보”를 창간했으며, 그 이듬해에 구세군사관학교와 서울 교회당을 개설하였습니다. 1924년부터는 빈민 숙박 사업을 개시하고 1928년부터 자선냄비를 시작했습니다. 양화진에는 4-5명의 구세군 장교와 어린이들이 묻혀 있습니다. 여기서는 한국 구세군 중 헌신적인 두 분의 삶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도식(리처드 윌리엄) 부령입니다. 그는 1878년 영국 런던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런던 거리에서 가두 전도에 참석했고 12세부터는 ‘꼬마 음악단’ 단원으로 활약하였을 정도로 구세군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유럽 각국과 남아프리카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지를 두루다니며 구세군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가 1918년 한국에 파송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세군 육아원에 천연두가 퍼지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았지만 전염되어 1920년 별세하였고 그의 기념비가 북아현동에 세워져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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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없는 삶 –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

전도서 9:7-12

“띠’라는 책을 읽어보면 고산 거벽 등반에서 눈에 띠는 업적을 남긴 산악인 박정현씨가 후배와 함께 촐라체봉에 등정한 후 내려오다가 사고를 당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동상에 걸려, 손가락 8개를 결국 자르게 된 사연을 적어 놓았습니다. 손가락을 자른다는 것은 산악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박정현씨는 비록 구사일생으로 구출되고 한국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동상에 걸린 손가락을 절단하여야만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망설였고 얼마나 당황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산과의 인연을 맺은 것을 후회 하였습니다. 산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친구 대신 등산장비를 판매하는 가게에 심부름을 갔다가 주인 아저씨가 “너 이 번주에 산에 가볼래?” 하는 말에 “네”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뒤 18살에 에레베스트 산을 등정하였고 2005년에 촐라체봉을 후배와 함께 둘이 등정하기까지 도합 14번의 히말라야의 고봉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력을 뒤로 하고 이제는 장애인으로 살아가야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고산 거벽 등반에서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손가락이 잘라진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내는 병실에서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뒤 마음을 정리하였는지 다시는 그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나아가 아이들은 장애인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한 장애인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또 다시 산악인이 된 것을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박정현씨는 여기서 절망하지 않고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동호인들의 모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패러글라이더로 히말라야를 넘는 ‘이카로스의 꿈’ 이라는 다큐멘타리를 찍은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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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자비의 교훈과 그리스도 2

진정으로 겸손한 자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셔들인 자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자신을 비우사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사흘만에 다시 살리시고 지극히 높이사 만유의 주님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높이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고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듯이 병과 연약함으로 고통을 받는 많은 병자들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심으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비를 베푸신 그리스도 처럼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 같은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자들을 보살펴야만 합니다. 이런 자비의 실천은 말로만으로는 안되며, 반드시 행동이 수반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희생을 무릅쓰고 여러제도를 개선하고 불우한 환경에 처한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마지막날 의인의 부활 시에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갚음을 받을 것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오늘 하루도 살아가야만 합니다.

1.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양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자비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확인해 주는 성령님의 열매임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말씀나눔

2017. 12. 4 -8

이상재, 윤치호, 유성준, 김정식등을 비롯하여 여러 지식인들을 YMCA로 끌어들인 데는 형인 플레쳐 브로크만의 공헌이 컸습니다. 플레쳐 브로크만은 가끔 초빙을 받아 우리나라에 와서 YMCA 지도자 훈련에 공헌 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 당시 YMCA의 총무 신흥우가 농촌 운동을 시작할 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신흥우는 동생 브로크만과 함께 국제 YMCA를 방문 하고 그 지도자들과 협의회를 가졌는데 거기에는국제 YMCA의 총무를 비롯하여 백화점 경영자 J.C. 페니와 형 브로크만이 참석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레이크플래시드 5인회담’이라는 것인데, 이 회담에서 국제 YMCA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열 명의 농촌운동 전문가를 파송하는 동시에 기술 및 재정 원조를 해 주는데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형 브로크만의 제일 큰 공헌이라 할 점은 그의 동생 브로크만을 우리나라 YMCA 간사로 선정 파송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동생 프랭크 브로크만(1878-1929)이 중국에서 자기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것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1902년 대학을 졸업하고 네브라스카 오마하의 학생부 간사로 취임하여 유명한 F.I 윌리스의 총무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905년 한국 YMCA의 공동 총무로 파송되어 내한한 뒤로, 1929년에 죽어 양화진 외인묘지에 묻힐 때까지 24년간 한국 YMCA를 위하여 헌신했습니다. 그가 끼친 공헌은 실로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행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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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을 제대로 붙이자

(행11:24-26)

1892년 동유럽 작은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고, 1895년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도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각자의 동네 성당에서 복사(服事)를 담당했는데 성찬식에 포도주를 따르던 중 잔을 엎지른 동유럽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호된 비난과 냉소였다 “제단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아라”. 반면 미국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특히 담당 신부는 “나도 어릴 때 실수가 많았단다. 너도 커서 신부가 되겠구나”라고 격려했습니다. 후에 동유럽 그 아이는 무신론자로 유고슬라비아를 37년간 통치한 공산주의자 티토가 되었고. 미국 아이는 카톨릭대 교수이자 존경받는 폴턴 쉰 대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말투만 바꿨을 뿐이데” 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리처드 밀러는 시카고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몇 개의 학급에서 담임선생에게 부탁하여 ‘모두 깔끔하구나’라는 라벨을 학생들에게 붙이게 했다. 그러자 82퍼센트 이상의 아이들이 쓰레기를 보면 주워서 휴지통에 버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담임 선생이 그런 라벨을 붙이지 않은 학급에서는 교실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어도 무시하는 아이가 많았고 쓰레기를 줍는 아이는 약27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51p). 그래서 책 저자는 친구가 ‘이런 사람이면 좋을 텐데’하는 희망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되어 달라고 설득하기 보다 오히려 라벨을 잘 붙여서 친구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유도하면 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죄인들이라고 대내외에 선포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교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두가지 라벨을 항상 우리 삶에 붙이면 겸손하게 되어 서로 서로를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겸손에 대한 교훈과 그리스도

성경말씀: 누가복음 14:7-11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명한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아 들어가셔서 초청을 받은 다른 자들이 높은 자리를 택하여 앉으려고 열심을 내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평상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던 사람들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심과 같이 겸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통로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편, 진정으로 겸손한 자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셔들인 자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입으셨고 더 나아가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지극히 높여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을 받은 자들은 주님께서 만유의 주인임을 알기에 그들의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꽉 들어차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염려를 전부 주님께 맡겨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를 높이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시며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기에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1. 겸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통로임을 알아야 합니다.

2.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양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성경읽기

2017. 11. 27 – 12.1
베어드의 교육 사업이 큰 열매를 맺은데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선교지 자립 정책인 네비우스 선교 방법을 우리 나라 실정에 맞도록 적당히 수정하여 적용시킨 점입니다. 즉, 네비우스의 세 가지 자주 정신 즉, 자력 유지, 자주 치리, 자진 전도의 정신을 평안도 사람들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개화, 독립, 하나님 숭배 정신에 접목시켜 발전 시켰던 것입니다. 그 결과 평양 숭실학교는 학생들이 학자금을 자급하도록 하여 자립 정신을 확립시켰습니다. 사실 베어드의 숭실학교 경영 이상은 미국 미주리 주의 장로교계 학교인 파크 대학과 포이넷트 아카데미였습니다. 이 학교들은 학생 전원이 학생지도관에서 일주일 동안 일정한 시간을 작업하도록 한 뒤 그 수입으로 학생들이 자력으로 학자금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배운 기술을 졸업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정책을 한국에 맞게 변형하여 적용하였습니다만, 육체노동을 천시하고 글 읽는 것만 자랑으로 생각하던 조선 사람들의 뿌리 깊은 병폐를 개혁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내에 소위 자조 사업부를 두었고 학생들에게 근로와 자조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것을 제1의 교육목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비었다는 의미임)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잠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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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터예배

마태복음 22:41-46

역사를 보면 성경을 읽다가 그대로 믿고 실천하여 노다지를 캔 사람이 있습니다. 록펠러라는 사람이 그러합니다. 그는 어느날 창세기를 읽다가 노아가 역청(아스팔트)을 칠하는 장면, 바벨탑을 쌓으면서 역청으로 만든 벽돌이란 문구에 부닥쳤습니다.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역청이라면 석유에서 나는 것인데 그렇다면 노아가 배를 만든 지역이나 바벨탑을 만든 지역에는 석유가 매장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 지역은 어디즈음인가? 중동지역이다. 중동에 가서 석유를 탐사하여 채굴하기로 하자. 그는 기수를 중동으로 돌려 스탠다드 석유회사를 설립하고 석유를 채굴하였고 급기야 역사상 가장 부유한 재벌이 되었다. 성경의 기사를 그대로 믿고 실천한 까닭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외적으로는 주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묻는 형식입니다만 내적으로는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몇일 앞두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님은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시면서 글자 그대로 그 말씀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이 정하신 승천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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