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남장로회 순천 선교부
요한1서 3:23절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고려 시대 승평(지금의 순천)에서는 사또가 이임할 때 8필의 말을 선물로 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삿짐을 위한 배려였겠지만, 괸리들이 말을 되돌려 주지 않자 아예 말을 선물로 주었던 것입니다. 충렬왕에 이르러 양심적인 관리 부사 최석은 말 여덟필이 딸려 오자, 그 사이에 태어난 망아지를 포함 아홉 마리의 말을 돌려 보냈습니다. 승평 사람들은 감동하여 “팔마비”(八馬碑)를 세웠고, 이것이 조선시대 ‘선정비’ (善政碑)의 효시입니다. 부사 최석 이후 이임 사또에게 말바치는 전통은 끊어졌지만, 말 대신 다른 것으로 바뀌어졌을 뿐입니다. 순천의 교회들도 같은 문화가 있었듯 싶습니다. 이덕주 교수의 말입니다: “팔마비 앞에 “50대 1의 경쟁을 뚫고” 부임한 후배 목사가 찾아와 털어놓은 푸념이 불현듯 생각난다. 백 명 조금 넘는 교인들이 원로 목사님 은퇴금에다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느라 등골이 휘어져 고생하고 있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 밀린 부담금은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나, 팔마비의 고을 순천은 나주와 쌍벽을 이루는 남도 “양반 고을”입니다. 교회는 교회가 터 잡고 있는 지역의 문화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순천 선교의 특징도 이 문화에서 유래합니다. 다만, 교회는 최석처럼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능력인데, 그들만이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전도서 3:3절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2절에서는 인간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를, 본절부터는 삶의 제반 사건들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하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3절 전단은 ‘죽일 때와 치료할 때’를 병치합니다. ‘죽인다’는 표현은 전쟁 혹은 형 집행을 의미합니다. 전쟁의 발발이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선친께서도 6.25 당시 한 전투에서, 불룩한 양쪽 바지 주머니에 여러 개의 총알이 뚫고 지나갔으나 부상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열왕기상 22장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죽음과 관련된 하늘의 결정 과정을 기록합니다. 아합은 아람에게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치기로 회의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은 길르앗 라못에서 범죄한 아합을 죽이시려고 회의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 회의 내용은 선지자 미가야를 통해 아합과 백성들에게 전달됩니다. 분노한 아합은 병사로 변장하여 참전하나 우연히 쏜 적의 화살에 맞아 전사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역사의 주인되신 주님이 두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편, ‘치료시킨다’는 표현은 상처나 질병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살려 건강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중한 병에 걸리면 치료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데, 고대에는 더 하였을 것입니다. 세균이란 존재도 모르고, 신체 내부의 장기 위치나, 암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그 시대에,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도저히 살아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가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는 권면의 배경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죠!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하기를 원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5:15).
전도서 3:3절(2)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3절의 후단 “헐 때와 세울 때”는 어구는, 성벽, 건물, 포도원 등을 세우거나 허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성벽, 왕궁, 정원 등 많은 건축물을 지었습니다(2:4). 시바 여왕은 솔로몬이 건축한 왕궁, 시종들의 관복,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할 정도였습니다(열상10:3-5). 솔로몬은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계획과 건축이라 생각하였으나, 후일에 보니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세우고 헐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본문은 건축물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계획과 활동을 포함합니다. 경건한 한나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나는 심히 괴로워하였고, 서원기도를 합니다. 그때서야 주님은 한나의 태를 열고 사무엘을 주십니다. 약 5년 뒤, 한나가 실로로 가서 서원을 이행하자, 제사장 엘리는 감동하여 자녀의 축복을 빌어줍니다. 그 후 주님은 한나에게 다섯 자녀를 주셨습니다. 20년이 지나 사무엘은 선지자와 사사로서 이스라엘의 사표요, 왕정을 세우는 토대가 되나, 주님은 불순종한 엘리의 두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이같이 사무엘서는 역사의 배후에서 가정과 국가를 ‘세우고 허시는’ 주님을 증언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격변의 시기입니다. 세상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들과 정당에 투표하여 자신들의 정부를 세우고자 하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통치를 자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른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고 투표해야 합니다. 지금은 나라를 통치할 바른 대통령과 정부를 “세울 때”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7)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에돔, 유다의 속국
역대하 8:17절
“그 때에 솔로몬이 에돔 땅의 성읍인 에시온게벨 항구와 엘롯 항구로 갔더니”(새번역)
성경의 에돔 땅은 사해 남쪽지역으로 수도는 보스라입니다(암1:12). 에돔(=붉다) 땅은 나무가 없고 붉은 바위로 이뤄진 산악이라 농업과 목축업에는 부적합하여, 에돔 경제는 사해에서 추출한 소금과 바위에서 얻어낸 향신료 수출에 의존하였습니다. 에돔 땅 자체는 매력이 없었지만 구리광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무역로(왕의 대로), 그리고 에시온게벨과 엘롯이란 홍해 항구 때문에 내지국가 유다에게는 매력적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항구들을 통해 오빌에서 금을 수입한 바 있습니다. 에돔의 홍해 항구 중 하나인 엘롯과 관련하여 중요한 유적지(‘텔 엘-켈레이페’)가 1936년 발굴되었습니다(넬슨 글루엑). 이 유적지는 주전 10세기경 토기들이 출토되었으며 솔로몬 시대의 요새가 있었음도 밝혀졌고, 유다 임금 요담(왕하15:32-38)의 것으로 보이는 인장 역시 발견된 바 있어, 에돔이 유다의 속국이었음을 입증합니다. 에돔은 다윗 왕 때부터 여호사밧 왕의 시대까지 약 150년 동안 유다의 속국이었으나, 여호사밧이 죽자 왕을 세워 독립하였습니다(왕하8:20). 에돔과 이스라엘은 동일한 이삭의 육신의 후손이나, 성경은 에돔을 이방민족 중 하나로 여깁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누가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인가?’라는 영적 기준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냐 에돔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는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하시고 부활하사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속받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부가 중요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히브리서12:1절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갑시다.”(현대인의성경)
“2019년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의 주인공 김인경 수녀(백지원 배우)는 구담구의 비리 세력을 잡기 위해 잠시 수녀복을 벗고 ‘전설의 타짜 평택 십미호’로 변신하여 강렬한 카리스마를 선보였습니다. 그녀가 도박을 떠난 이유는 죽은 남동생에 대한 죄책감, 죽고 죽이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도박의 허무함과 죄악을 통감한 결과입니다. 김인경 수녀는 주님께 귀의한 이후 20년간 숨어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살았지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평택 십미호로 돌아갑니다. 작가는 그녀의 행동을 ‘단 한 번이다’는 전제와 주임 수녀의 허락, 고해성사를 내세워 정당화합니다. 이러한 작가의 설정에 대하여 시청자들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작품은 작가의 일방적인 의도만으로 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독자를 감동과 열광으로 몰고가는 별점 만점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역사란 무대에서 상영되는 드라마입니다. 그 배우는 인간이고, 작가는 하나님이십니다. 통상의 드라마의 배우가 죽었다고 퇴장하나 실제는 살아 있는 것과 같이, 죽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날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살아 있는 드라마입니다. 결론과 과정이 모두 열려 있으며, 배우와 작가는 서로 상호작용을 통하여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작가의 스토리와 반전에 놀라며, 배우들의 삶에 감탄하는 독자들은 천만천사들입니다. 그들은 부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