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11/17-22)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순교자 손양원 목사(2)
마태복음 8:3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1936년 손양원 전도사가 사경회를 인도할 당시, 애양원 교회를 담임하던 분은 김응규 목사입니다. 그는 철저하게 애양원 규칙을 지켰고 행여나 애양원 환자나 직원이 그 규칙을 어길까 감시하여서, 환자들은 그를 ‘김 목사’가 아니라 ‘김 감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사경회가 끝난 후 바뀐 교회 분위기 때문에 김 목사의 애양원 목회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1938년 신사참배 문제가 일어나면서 그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애양원을 운영하던 남장로회 선교사들은 병원을 폐쇄해도 신사참배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노회는 신사참배를 수용하였기에 양자 사이에서 곤란을 느끼던 중 제주도에 교회가 나서 임지를 옮겼던 것입니다. 한편, 손양원 전도사는 교회를, 애양원 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분을 구하였기에, 더구나 사경회 때 교인들이 은혜를 많이 받아 청빙이 성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손 전도사의 나환자 목회는 애양원이 처음이 아니라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이 하던 상애원이란 나환자 요양원에서 한 달간 봉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겁이 나서 ‘냄새가 안 나게 코를 막아 달라’고 기도했지만, 은혜를 받은 후부터 겁없이 환자들을 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은 어떻게 이국 땅의 나환자들을 돌볼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과 나환자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의학에 대한 지식 이 두 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값없이 받는 은혜의 결과요 후자는 주님을 본받아 섬기려고 하는 우리 노력의 산물입니다. “(천국은)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눅13:18).

전도서5:12절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전도자는 세 구절에 걸쳐 부의 문제점을 제시합니다. 첫째, 사람은 재물로 만족을 얻지 못한다(5:10). 둘째, 부유한 사람은 그 부를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5:11). 셋째, 부요함은 오히려 불면의 원인이 된다(5:12). 불면의 이유가 걱정이든 소화불량이든 중요하지 않지만, 전도자는 부자가 재산을 늘리려는 욕망이나 상실의 두려움에 잠 못이룬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반면, 노동자는 부유하지 않아도 깊은 잠을 잡니다. 이는 부의 역설로서, “우유를 배달받아 먹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말로 표현됩니다. 신자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재물이 오히려 평안을 방해할 수 있음을 갈파는 본절의 지혜를 간직해야 합니다. 물론 가난도 고통이지만, 성경은 오히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란 ‘가난하나 경건한 자’를 말합니다. 가난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지만, 가난해도 경건한 자는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성실히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를 붙드시고 항상 돌보아주십니다. 넉넉하지는 못해도 언제나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삶의 중심에 놓으므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축복을 저절로 받게 됩니다. 부자는 재물을 의지하고 잠 못이루지만, 그리스도인은 재산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잠을 달게 잡니다.” 신앙생활의 은밀한 축복입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편127:2).

전도서5:13절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전도자는 부를 인생의 목표로 삼을 될 경우 빠지는 함정을 경고합니다: ① 부는 중독적이지만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10) ②부는 인간 기생충(?)들을 끌어당기나, 그들은 평안을 주지 못한다(11a) ③부는 쓰임이 없을 때, 단지 눈요기일 뿐이다(11b) ④ 부 때문에 부자는 잠 못 이룬다(12) ⑤ 부를 사랑하여 모은 재산은 해를 끼친다(13). 14절과 15절에서는 부의 해악 두 가지- 부의 불안정성과 사망에 따른 무익- 를 더 언급하나, 오늘은 13절의 ‘폐단’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자의 비극은 그가 사랑하여 모아둔 돈 자체 때문에 발생합니다. 로버트 고디스는 이 문제를 잘 지적합니다: “부를 지키는 것은 불안과 근심을 수반한다.” 재물은 삶에 유익을 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부자의 돈은 쓰이지 않고 쌓일 뿐이어서, 단지 소유했다는 만족감만 남습니다. 결국 더 많은 재물을 탐하고, 가진 것을 지키려는 근심만 커질 뿐입니다. 그 결과 ‘자기에게 해가 된다’는 ‘큰 폐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마 부자는  경제적 변동으로 인해 부의 가치 저락, 혹은 강도나 도둑에 대한 근심, 혹은 돈으로 인한 가족 간의 재산다툼, 혹은 빌게이츠처럼 이름을 남기는 데 관심이 커서 평안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 형과 유업을 나누어 달라는 동생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도다”(눅12:15)라고 교훈하신 것도 이때문입니다. 아굴의 기도입니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언30:8).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고라신(2)
마태복음 23:2,3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회당은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모든 지역에 세워진 종교 및 공동체 중심지이며, 성전이 파괴된 이후 기도와 구약 연구의 장소로 기능하였습니다. 바빌론 포로기 무렵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가장 오래된 회당은 그리스 델로스 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회당은 기둥과 벤치 구조를 갖추었고, 회당장이 의식을 주관하였습니다. 신약 시대에서도 회당은 기도, 예식, 재판, 정치 모임 등 다양한 역할을 감당한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회당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활동은 토라, 즉 구약의 율법서를 읽고 토론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회당에서 토라를 읽고 가르치셨으며, 사도들도 이 전통을 따라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토라는 회당의 높은 단상에서 읽혔고, 강론과 토론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지도자들이 이끌었습니다. 고라신 회당에서는 실제로 ‘모세의 자리’라 새겨진 의자가 발견되어 성경의 기록을 뒷받침합니다. 또한 이 회당에는 유대 전통과 달리 동물 형상과 메두사 조각 등이 있어 예수님의 고라신에 대한 책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40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한 사건은 온 유대 사회를 흔들었습니다. 더구나 고라신 주민들은 예수님의 많은 기적을 목격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기적이나 체험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순종하며 삶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참된 증거입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그리스도인의 정체성(4)
에베소서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복음을 깨달은 그리스도인은 바른 정체성을 가집니다. 복음은, “몸이 하나고, 성령님도 한 분,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주님도 한 분, 믿음도 하나, 침례도 하나, 하나님도 한 분으로, 만유의 아버지시이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라는 고백을 담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그 고백이 현실의 삶을 돕고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 각 자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재주나 지식들은 남을 돕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교회를 세우는 은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예언이나 방언 기적행함 등의 은사가 있기는 하지만 큰 흐름을 보면 그렇습니다. 축구 선수가 복음을 받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면, 그의 뛰어난 축구 실력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은사로 쓰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준비되어야 하며, 목사의 가르침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주어진 은사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사랑으로 섬기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청지기’란 우리의 다섯 번째 정체성입니다(벧전2:10-11). 선한 청지기’는 선한 일에 능숙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공자의 말은 도움이 됩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즐거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선한 일에 능숙해 지고 또 지혜롭게 됩니다(시37:30).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딤후3:17,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