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11/24-28)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순교자 손양원 목사(3)
데살로니가전서 1:3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1939년 7월부터 ‘손양원 목사’의 ‘애양원 목회’가 시작됨과 함께 새 바람이 불었습니다. 마스크를 벗는 직원들이 늘어났고 애양원 환자들도 그런 직원을 신뢰하였습니다. 나병을 겁 내지 않는 청년 목사는 신사참배 역시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1940년 9월 25일 수요 예배 후, 형사에게 연행되어 그의 애양원 목회는 1년 만에 중단되었습니다. 그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이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습니다. 형의 만기가 되자 검사는 석방 조건으로 ‘사상 전향’을 요구하였습니다: “덴꼬(轉向)해야 나갈 수 있다.” 그의 대답은 간명했습니다: “당신에겐 덴꼬가 문제지만 내게는 ‘신꼬’(信仰)가 문제다” 그의 출소는 8·15 해방 후로 미루어졌습니다. 성결교단에서 존경 받는 이명직 목사님은 성결의 체험(1920년)을 바탕으로 교단에 큰 부흥을 가져 왔으나 신사참배에는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손양원 목사님은 신앙인의 참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의 큰 아들(손동인)이 면회를 왔을 때도 신사참배만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손동인은 형사의 설득을 통해 이미 신사참배를 한 뒤였기에, 깊은 죄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후에 그의 죽음(순교)으로 이끈 원인이었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사랑을 통해 움직여야 합니다(갈5:6).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붙잡아 주신 그 주님의 온전하심은 좋은 본보기입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21:19).

전도서 5:14절
“어떤 사람은 재난을 만나서, 재산을 다 잃는다. 자식을 낳지만, 그 자식에게 아무것도 남겨 줄 것이 없다.”(새번역)

본절은 ‘부의 불안정성’을 다룹니다. 부자가 힘써 지켰던 재물을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방면에서 타격을 입을 것이며, 그 영향은 자식에게까지 미칩니다. 재물을 잃는 원인 중 본절은 ‘재난’을 제시합니다. ‘재난’의 원어는 ‘고통스런 일’이란 의미입니다. 이를 재물의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투자’, ‘잘못된 모험’, ‘악한 재난’ 등을 말합니다. 갑자기 강도떼나, 큰 폭풍과 같은 자연 재해로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욥의 경우나, 공산주의가 중국과 북한을 점령하여 예기치 않게 모든 재산을 잃은 분들이 그 예입니다. ‘다 잃는다’라고 번역된 ‘아바드’는 ‘멸망하다’라는 의미로써,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재산을 모두 상실했음을 강조합니다. 후단은 ‘그 자식에게 아무것도 남겨 줄 것이 없다’로 그 비극적 결과를 표현합니다. 수고는 하지만 상속인이 없는 상황도 문제이나(2:18), 아들을 낳았지만 모두 잃어 물려줄 재산이 없는 처지 역시 참담합니다. 재물은 이렇게 불안정하므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선한 일에 힘 쓰라는 것이 본절의 교훈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것은 자녀들이 복을 받는 비결임을(시편37:26), 바울은 ‘장래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기반)’를 쌓는 길임을 밝힙니다(딤전6:19). 재물은 주님이 주셔야 합니다. 따라서, 노력하되 주님 안에서 노력하고,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면 이런 교훈들을 간직해야 합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6:17).

전도서 5:15절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본절 서두의 ‘그’는 재산을 모두 상실한 14절의 그 부자를 지칭합니다. 그는 부를 쌓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재난을 당하자 그의 수고는 헛되었습니다. 그러나 본절은 재산 상실보다 더 무서운 사망을 생각합니다. 사망은 전도서 전체에 걸쳐 솔로몬을 사로잡는 주제입니다. 지금 전도자는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1:21a)는 욥기의 시적이며 처절한 고백을, 산문으로 담담하게 재진술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벌거벗은 아기로 이 세상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소유라고 할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이윽고 성장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더라도 같은 상태로 세상을 떠납니다. 재물을 위해 모든 것을 쏟은 부자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며, 불공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절대 강자의 결정입니다: “너는 아무 것도 취할 수 없다.” 그렇다면,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그 사람은 더 큰 허무를 절감하게 되니 인생의 큰 역설이 여기 존재합니다. 부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삶과 가정을 독립적으로 영위할 정도의 재산은 꼭 필요합니다. 다만, 재산을 모을수록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인간이 스스로 다스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반드시 다가오며,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멈추어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 뇌물처럼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늘 마음을 초상집에 두고(전 7:4), 덕을 베풀며 가난한 이웃이 없는지 살펴봅니다 “저가 흩어 가난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롭게 들리리로다.”(시편112:9).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가버나움(1)
마태복음 11:23a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쪽 해변에 위치한 ‘크파르 나훔’이라는 유적지입니다. ‘크파르 나훔’은 히브리어로, ‘나훔의 마을’을 뜻합니다. 주전 2세기부터 유대인들이 정착하였기 때문에 구약의 나훔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 이름은 후대에도 이어져 아랍어로 ‘탈훔(=훔의 폐허 언덕)’이라 불려져 왔기 때문에, 1830년대 성서학자 에드워드 로빈슨이 쉽게 가버나움을 찾았습니다. 19세기 후반에 프랑스 수도사들이 발굴에 착수하여 신약 및 비잔틴 시대의 유적을 발견하였으나, 본격적 발굴은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발굴을 통해 회당, 집터, 그리고 베드로의 집으로 알려진 교회터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원래 예수님은 나사렛이란 시골에서 자라나셨습니다. 그러나 침례를 받으신 후, 예수님의 가족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셨고, 가버나움은 선교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회당에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곧이어 베드로의 집에 머물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십니다(막1:21-29).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많은 기적과 말씀을 경험한 도시이나, 고라신과 벳새다처럼 회개하지 않았고, 오병이어의 표적을 경험한 제자들조차 회당에서 선포된 말씀 앞에서 예수님을 떠난 곳이기도 합니다(요 6:66). 가버나움은 상업, 농업, 어업 모두 번창한 국제적 도시였으므로, 사람들은 부유하고 종류 또한 다양해서 영적 무감각과 교만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회개와 순종이 없다면, 가버나움처럼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전6:1).

그리스도인의 감사
데살로니가전서 5: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본절에서 ‘범사凡事’의 사전적인 뜻은 “모든 일 혹은 상황”이란 의미입니다. ‘범’은 모두 ‘범’자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후단의 ‘이것’이란 ‘항상 기뻐하라’(16), ‘쉬지말고 기도하라’(17), ‘범사에 감사하라’(18a)를 모두 지칭하는지, 아니면 ‘범사에 감사하라’만을 지칭하는지 다툼이 있지만, 후자라고 보는 것이 문법상· 문맥상 타당합니다. 그 만큼 감사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때 세상적인 여러 감사도 마땅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감사, 즉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에 대한 감사가 제일 중요하고, 또 영원합니다. 이 은혜가 감사의 영적 기원으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자, 당신과 예수 믿는 우리 사이에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더구나,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시니 이 보다 더 감사하고 기쁠 수가 없습니다(롬8:31-39). 그래서 성경은 걱정 근심이 되는 모든 것들- 가정, 직장, 자녀, 직업, 재산, 건강, 결혼, 질병 등 -을 주님께 던져 버리라 명령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 짐을 하나님께 맡기면 만유를 아버지께 상속받은 주님이 책임지고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벧전 5:7).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 살아갈 때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주신 근거입니다. 모든 환경에서 주님을 신뢰하면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