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12/15-19)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나병촌의 성경학교
시편 119: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중국 베이징 대학교에 따르면, 독서 등 인지활동은 23%, 걷기 등 신체활동은 17%, 종교활동을 포함한 사회활동은 7% 정도 치매 위험성을 감소시킨다고 합니다. 1999년 당시 아흔 여섯 살 노인 오기수 권사는 히브리서 11장을 정확한 발음으로 모두 외웠는데, 치매란 성경암송자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애양원 사람들의 ‘성경 암송’은 이미 일제시대 때부터 유명했습니다. 1939년 애양원 사경회 강사로 참여했던 뉴랜드 선교사의 증언입니다. “애양원 식구들이 모여 사경회의 마지막 행사를 가졌다. 그 순서는 성경 암송이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환자들에게 성경 아무 곳이나 지정하면 그들이 외웠다. 첫 번째 나온 환자는 신약 전체를 외우는 남자 환자였다. 그는 과거 흉악한 거지대장이었으나 애양원에 들어와 성경을 접하고 사람이 변해 놀라운 기억력으로 성경을 외우게 되었다. 그는 시력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손가락도 없었고 아래턱도 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한 교인이 되었다. 그는 계시록을 택했고 우리는 20장을 외워 보라고 했다. 그가 외우기 시작하자 다른 환자들은 성경을 펴서 손으로 짚어가며 확인했다. 그는 훌륭하게 해냈다. 그 다음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여자 노인이 나와 기쁜 표정으로 시편 23편을 외웠다.”(한국선교지, 1939, 113쪽). 하나님의 뜻은 고귀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깨달아, 심중에 간직한 뒤 인내로 열매가 맺어집니다(마13:23;눅8:15). 이때 성경암송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유용한 방법입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편119:92)._

전도서 5: 20절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5:10–17절은 재물의 헛됨과 재물로 인한 근심을, 18–19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수고와 몫을 즐길 것을 각 강조합니다. 본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기쁨으로 채우사 인생의 허무를 무시할 수 있게 만드신다고 하나, 이 은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자신의 ‘몫’에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됩니다. 지금 전도자는 약간 질투의 감을 표출하는데, 자신의 교훈을 받아 실천하는 자들과 달리, 본인은 그 부를 즐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롱맨). 즉, 전도자는 재물을 갖고도 고뇌하나, 그들은 기쁨이란 마취제를 통해 삶의 혹독한 현실을 잠시 잊고 있습니다. 따라서 폭스는 “즐거움은 고통을 완화하는 진통제다”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는 신약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현실의 고난 속에 하나님과의 교제, 영원한 소망, 그리고 고난의 유익을 생각하며 즐거워 하라고 권면합니다(롬5:3-11). 나찌 치하의 에티의 일기입니다. “캠프의 한 구석에서 당신의 땅을 밟고 하늘을 바라볼 때, 감사의 눈물이 흐릅니다. 밤에 침대에 누워 당신 안에 쉴 때도, 오 하나님, 감사의 눈물이 흐릅니다. 그것이 제 기도입니다.” (1943.8.18). 3달 후 에티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었습니다. 고통 중에 기뻐하는 능력은 전도자의 고민의 해결책입니다. 전도자의 신앙 여정은 여기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고 그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5:2).

전도서 6: 1절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5:10-17절은 부를 추구하는 자들의 문제점을, 18-20절은 미래를 염려하지 말고 현재의 순간을 적극적으로 살라는 교훈을, 6:1-12절은 재물과 성공, 장수, 많은 자녀를 가졌어도 이를 향유하려면 누릴 능력을 받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본절에서, 전도자는 부를 축적했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의 주제로 되돌아가서 또 고민합니다. 전도자가 보기에 많은 사람들이 풍족한 재물을 가졌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그 누림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입니다. 이는 단순한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며, 인간 사회에 무겁게 드리워진 현실입니다(롱맨). 전도자는 이 상황을 “악”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불운이나 우연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신학적인 무게를 가진 현실로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흔히 재물과 성공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지만, 소원을 이루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만 참된 행복이 가능합니다. 한 신경외과 교수는 성공해서 한창 명성이 뻗어갈 50대 후반(2010년) 파킨슨 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재물, 실력, 명성, 자녀 등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의사가 오히려 환자가 되어 겪은 15년은 본절의 의미를 깨우쳐 줍니다. 더구나 그는 그리스도인이자 장로입니다. 전도서는 우리의 시선을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누림에 맞추라고 교훈하나, 신약은 더 나아가 고난 중에도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진리를 깨닫는 과정이 우리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벧전5:7,새번역)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가버나움(4)- 회당
요한복음 6:59절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본문은 예수님 당시 가버나움에 회당의 존재를 증언합니다. 주님은 여기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강화를 하셨습니다. 이 회당은 로마 백부장이 세운 것으로(눅7:5), 그의 믿음은 하인의 병을 낫게 하였습니다. 회당장 이름은 야이로이며 그의 딸은 죽음에서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눅8:40-56).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사건을 기록합니다(막1:21). 1866년 윌슨 장군은 가버나움에 있었던 회당을 처음 발견하고 예수 시대의 건물이라 확신했으나, 발굴 결과 주후 381년 에게리아 여사에 의해 기록된 회당임이 밝혀졌습니다. 그 회당 기둥 조각에 기록된 후원자의 아람어 이름은 “알패오 세배대의 아들’과 유사하여 논란이 있던 중, 더 깊은 발굴을 통해 석회석 기초 아래 현무암으로 된 이전 건물의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현무암으로 지어진 예수님 시대의 회당이며,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된 뒤 3세기경 석회석으로 재건되었다고 추정됩니다. 베드로의 집 기념교회와 함께 가버나움의 종교적 중심지였을 것이나 7세기 무슬림의 침입으로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은 유대교의 부침을, 베드로집 기념교회는 기독교의 성쇠를 보여주지만 진정한 성전은 외적 건물에 있지 않고 개개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공동체(교회)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주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너질 수 있는 외형보다, 영원히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분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골2:7,새번역)

룻의 이야기
룻기 1:1절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본절은 룻기의 시작입니다. 때는 사사시대요 (비시 1300년 전후), 장소는 유다지파의 베들레헴입니다.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하나님은 왕이시다)은 아내 나오미(기쁨)와 두 아들 말론(병약함-룻의 남편)과 기룐(연약함-오르바 남편)을 이끌고 사해를 건너 요단 동쪽의 고원지대인 모압으로 이주합니다. 모압지방과 근접한 지파는 르으벤 지파인데, 엘리멜렉이 모압고원으로 이주해 간 것을 보면 이 지역도 기근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모압고원은 동쪽에서 오는 비구름이 걸려 비가 풍족한 지역입니다. 오히려 고원을 넘어온 바람이 푀엔 현상을 일으켜, 르우벤과 베들레헴 지역에 흉년이 들게 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병과 기근 전쟁은 물론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레26장; 신28장). “내 율법을 지키면 병, 기근, 전쟁에서 이김을 주지만, 불순종하면, 병과 기근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가나안 땅에서 너희들을 쫓아내겠다.” 이런 언약에 기초하여 볼 때 베들레헴의 기근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모압인들은 그들의 신 그모스를 섬기며 살아갔으나, 모압지역은 오히려 기근에서 자유로웠습니다. 이때나 지금이나 믿음에 굳게 서지 않으면 유혹되기 쉽습니다. 구약과 달리 신약시대에는 물질의 풍요 대신, 돌보심과 영적풍요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불확실한 삶 속에서도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