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성경 녹음기
시편119: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이게 다 손양원 목사님헌티 배운 신앙이요.” 성경 녹음기로 평가받았던 애양원 교회 양재평 장로의 말입니다. 이분은 성경을 순서대로 암송하였던 것은 물론, “아무 성경, 몇 장, 몇 절” 하면 즉시 그 구절을 정확하게 외었다고 합니다. 신안 출신으로 열아홉 살 때(1942년) 애양원에 들어와 쉰다섯에 장로가 되었는데, 병을 앓아 손가락이 뭉그러지고 앞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분의 말입니다: “처음 여그 들어올 때 시력은 괜찮았는디 나이 서른 되던 해 시력까지 잃었지라. 처음엔 하나님을 원망도 혔지만 기도하는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혀 보니 귀하고 입은 멀쩡하더란 말이요. 그래서 그 때부텀 성경을 외워버렸지.” 눈이 밝은 사람이 옆에서 읽어주면 그걸 듣고 외웠고 나중엔 녹음을 해서 들으며 외우자, 20년 만에 신약성경 전체를 암송하였고, 그후 성경 암송반까지 지도하셨습니다. 양장로의 간증을 들었던 어떤 분은 그후 마음자세를 달리하여 성경에 착념하였습니다. 반복 독서와 암기는 새로운 신경망을 형성하는 등 뇌 구조를 변화시키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행동을 더 생산적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다고 보고되었습니다. 꾸준히 이어가면 기억력과 집중력은 물론, 공감 능력과 자기조절력까지 강화되어 삶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하루 2분 독서만으로도 뇌가 실제 나이보다 10년 젊게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렇게 언어는 마음과 행동을 바꾸므로, 성경을 작은 소리로 늘 읇조리면 경건한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편1:3).
전도서 5:18절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지금까지(5:10-17) 우리는 재물의 헛됨과 그것이 가져오는 근심거리를 살펴보았습니다. 만족을 주지 못하는 탐욕의 문제(10절), 재물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만족을 잃게 되는 역설(11절),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노동자와 달리 부요함 때문에 근심하는 부자(12절), 불안정한 재물의 성격(13-14절), 죽음 앞에서 무력한 재물(15-16절), 그리고 재물을 섬기는 삶이 맞이하는 비극적 결말(17절)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마음에 두고 전도자는 이미 앞서 강조했던 조언을 다시 제시합니다(2:24-26). 곧, 먹고 마시며 모든 수고 속에서 ‘낙’, 즉 만족을 누리라는 권면입니다. 우리가 얻는 것들은 분명히 수고의 대가요 ‘몫’이지만(2:10),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19절). 실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짧은 인생 동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몫뿐입니다. 전도자는 이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란, 하나님의 손에서 주어진 것들을 감사히 받아 누리는 데 있습니다. 본절에서 전도자는 이를 ‘선하고’ 또, ‘아름답다’고 표현합니다. ‘아름다움’은 3장 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라는 문장에 비추어 ‘적합함’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주의 실체, 우리의 현실, 그 우주와 현실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 마음의 평화와 삶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네 손으로 일한 만큼 네가 먹으니, 이것이 복이요, 은혜이다.”(시편128:2,새번역).
전도서 5:19절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수고와 즐거움」
수고의 땀방울은
밥상 위 기쁨이 되고,
노동의 길 끝에서
감사의 열매가 열린다.
참된 즐거움은
헛된 쾌락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일상의 선물이다.
코파일럿의 작시이며 한 줄 정리입니다: “참된 즐거움은 수고 뒤에 누리는 감사의 열매다.” 그러나 모든 수고가 곧바로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18–19절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며, 참된 삶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수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물과 부요, 셋째는 그 누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깨달음조차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2:26).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온전히 주님께 맡기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을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만유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와 영원한 교제를 나누면서 부활의 날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들은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소유와 기쁨이며, 전도자조차 누리지 못한 축복입니다.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9:10).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가버나움(3)- 회당
누가복음 4:31,32절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가버나움의 집들은 검은 현무암으로 지어졌으나, 회당은 흰 석회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에 석회석이 없음을 고려하면, 이는 값비싼 재료를 먼 곳에서 들여온 특별한 건축임을 보여줍니다. 회당은 안팎이 다양한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구조는 고라신 회당과 유사합니다. 전체는 네 구역으로 나뉘는데, 가장 큰 방은 24.4m×18.6m 규모로 두 줄의 기둥이 세워져 세 구역으로 나뉘며, 기둥머리는 포도넝쿨·무화과 잎·독수리 등 고린도식 장식으로 꾸며졌습니다. 서쪽과 동쪽 벽에는 돌벤치가 있어 회합 시 사람들이 앉을 수 있었고, 특이하게 입구가 남쪽, 즉 예루살렘 방향으로 나 있어 회당장은 북쪽 벽에 자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부 벽은 회칠 후 벽화가 있었던 흔적과, 다윗의 별과 유사한 문양, 포도와 종려나무, 언약궤를 옮기던 수레 모습 등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습니다. 이는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이나 생명의 떡 강화(요한복음 6장)를 읽으면 자명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른다’는 말씀의 형식이나, ‘나는 생명의 떡이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는 메시지는 듣는 사람들을 압도합니다. 한 유대인 랍비는 산상수훈이야말로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선포하신 말씀이라고 분개하였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 모든 사람을 다시 살리사 영원한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요5:28,29). 따라서, 반드시 죄 사함이 필요합니다. 심판과 죄 사함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
무슨 이야기를 남길 것인가?
마태복음 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로마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무엇이 인생을 지도할 것인가? 철학, 오직 철학뿐이다” 라고 하였으며, 야고보서는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철학)을 보이겠다”하였습니다. 제임스 본드 스톡데일 대령(1924-2005)은 스토아 철학을 가진 평범한 군인이었으나, 하노이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은 그를 인생의 선생 중 하나로 만들었고 지금도 인류에게 말합니다: “어려움은 반드시 극복될 것이란 확신을 갖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 그러나, 믿음의 이야기는 제임스 본드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려고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의 동행이 그 내용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초인적 노력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순종과 그 순종을 받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주제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차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듣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실 생활에서 경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을 깨닫습니다. 이때 믿음은 견고히 서고, 우리 마음은 믿음, 소망, 사랑에 근거한 감사로 가득찹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와 룻의 고난과 안식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당연히, 스톡데일의 삶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삶은 인간승리의 이야기이나, 우리는 은혜와 감사의 이야기를 통해 부활하사 만유를 통치하시는 주님을 증언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롬5:3,4, 새번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