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전라북도편
느헤미야 8: 8절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온 뒤,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하는 장면입니다.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모두 울었습니다. 말씀을 배우면 감동이 오고, 그 감동은 삶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왔을 때도 같았습니다. 전주의 남장로교 선교부는 성경 교육에 힘을 쏟았습니다. 서원고개 아래쪽에는 남녀 성경학원이 있었습니다. 1909년 무렵부터 사경회를 확대시켜 농한기 때 한달씩 모여 성경을 배우는 ‘달(月) 성경학교’로 시작해 정규성경학원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남자 성경학원은 전주 북부지방 선교를 담당했던 매커첸이 주로 맡아보았는데, 1921년에는 화산동 189번지 언덕에 2층 교사를 마련하고 ‘전북남성경학원’이라 하였습니다. 여자 성경학원도 1928년에 남자성경학원 아래쪽, 화산동 190번지에 2층 벽돌 교사를 마련하고 ‘한예정성경학교’라 하였습니다. ‘한예정’은 1909년 남편과 함께 내한해서 전주에서 활약하다가 1922년 11월, 안식년 휴가 중 미국에서 별세한 클라크 부인의 한국이름입니다. 한예정성경학교는 1961년 광주 이일여자성경학교와 합동하여 ‘한일여자신학교’(현, 한일신학대학교)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전주 양반과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서원고개’에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과 학교, 성경학원이 들어서면서 교육, 의료, 복음이라는 삼각 선교 구도가 정착됩니다. 이렇게 구한말 선교사들과 성경학교의 헌신의 결과 조선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을 가까이하고 배워, 공동체와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119:105).
전도서 7:8절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 8절은 “끝이 시작보다 낫다”는 지혜의 원리를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특히 인내와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일을 착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실을 맺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이는 성실하고 근면한 삶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단은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선언하고, 후단은 좋은 끝을 위해 중요한 태도는 ‘참는 마음’임을 밝힙니다. 어리석은 자는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합니다. 그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거나 만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대로 성급히 일을 추진하다가 그르치는데, 시간과 상황을 조절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참는 마음을 가진 겸손한 자는 계획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온유하고 지혜롭게 자신의 일을 단도리합니다. 본절은 유익한 결과를 얻으려면 조급함을 버리고 불리한 환경 중에도 인내하며 겸손할 것을 교훈하는데, 하나님의 섭리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본절의 교훈을 터득한 분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젊은 시절 자신의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려고 성급하게 애굽 사람을 죽이자마자 발각되어 광야로 피신합니다. 그는 40년 동안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내를 배운 뒤,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내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책무는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계명들이 간직되지 않은 어떤 사람도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3:23).
전도서 7:9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본절은 8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8절의 “참는 마음”은 본절에서 “급한 마음”이라는 반대 개념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전단에서, “급한 마음”은 “노를 발하는” 태도로 이어지는데,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분개하기 때문입니다. 문맥 상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오만한 분노로서, 후단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매자의 품에 머문다”는 표현은 분노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터 잡은 상태를 말합니다. 실상 분노는 단순한 기질의 문제를 떠나, 마음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후단은 어리석음의 특징은 분노가 마음속에 눌러앉은 자로서, 전단은 그것이 급히 표출되는 모습을 묘사하여, 수욕을 참고 후일을 도모하는 지혜자와 대조를 이룹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결국 마음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표출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눅6:45).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약 1:20)는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분노 대신 사랑과 지혜가 머물게 해야 합니다. 갈멜의 부자 나발이 도망자 신세였던 다윗을 모욕하자, 분노한 다윗은 나발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음식과 함께 다윗에게 나아가, 분노로 인해 명예를 더럽히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다윗은 번뜩 깨닫고 노를 거두어들입니다. 미련한 나발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며칠 뒤 생을 마감했으나, 다윗에게는 어떤 구설이나 흠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분노가 아닌 지혜와 인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거니와,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언14:29)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벧산/ 벧 스안
열왕기상 4:12절
“ 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스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 벧스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욕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블레셋이 길보아산 전투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죽인 뒤, 그 시신을 벧산 성벽에 못 박아 전시한 사건(삼상 31:10–12)은 이 도시가 당시 블레셋의 북부 지배 거점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고고학적으로 벧산은 주전 10세기경 대규모 화재로 파괴된 흔적이 발견되는데, 많은 학자들은 이 시기를 다윗의 정복 활동과 연결합니다. 즉, 다윗은 사울 왕가를 모욕한 블레셋의 거점을 제거하여 이스라엘 왕권의 명예 회복과 북부 지역의 안정을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이후 벧산은 이스라엘의 행정 체계 안으로 편입됩니다. 솔로몬 시대 벧산에서는 행정 건물, 이스라엘식 토기, 관료적 활동의 흔적 등이 발견되어, 이 도시가 왕국의 북부 행정 중심지였음을 보여줍니다. 남북 왕국이 분열되면서 벧산은 북이스라엘의 도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갈릴리 지역의 중요한 행정·군사 요충지였다가 앗시리아에 의해 파괴됩니다(BC732). 이렇게 볼 때 벧산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사울 왕조의 몰락, 다윗 왕조의 부상, 이스라엘 왕국의 행정적 확장, 북왕국의 멸망 이라는 성경 역사의 전환점마다 등장하여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울의 죽음과 벧산에서의 치욕은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왕권을 유지하려 했던 결과이나, 반대로 다윗은 오랜 시간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하나님의 때와 방식으로 왕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벧산은 다시 이스라엘의 도시로 회복된 점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편127:1).
생각하고 실천하는 신앙(3)
빌립보서 4:9절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사고기준 6가지- 참됨, 고상함, 옳바름, 정결함, 사랑스러움, 칭찬받을만함- 를 제시한 후, 이 덕목들의 실천을 언급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삶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이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이들은 많이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찬미를 드리자 주님은 감동하사 옥터를 진동시켜 모든 쇠사슬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죄수 중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적을 목격한 간수는 복음을 받아들였고, 빌립보에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행16장). 또한, 바울은 직접 자신의 삶을 상기시키며(빌3:1-16) 교회가 자신을 효과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보기로 삼도록 권면합니다. 따라서,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서 본받아야 할 것들을 본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방이라는 주제가 늘 동행합니다. 이는 평강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삶에만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서신의 서두(1:2)에서처럼 자주 수신자들이 평강하기를 기도하는데, 본절은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말씀에 따라 삶을 정돈한 사람들 중에 있다.” 여기에는 올바르고 질서 잡힌 생각과 선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평강에 대한 두 가지 지침은 서로 보완적입니다. ①불안의 해결책은 ‘기도하라’(4:6.7). ②무질서한 삶의 해결책은 정신적, 실제적 훈련을 통해 바로잡아라’(4:8.9).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