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5/26-30)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왓츠기념 선교부
마태복음 19:2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순천 선교부의 출발은 늦었으나 체계적인 선교로 순탄하게 발전합니다. 매곡동 산자락의 토지를 계속 사들여 2만6천 평의 넓은 땅을 확보하였고(1924), 교회, 유치원, 남·여학교, 병원과 기숙사, 남녀 성경학교를 세웠습니다. 순천 선교부가 종합 선교부로서 “교회·학교·병원”이란 삼각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하였던 것은, 더럼제일교회 왓츠 장로의 전폭적인 지원 덕택입니다. 왓츠는 매년 약속된 선교비 외에, 특별 헌금도 자주 하였습니다. 1920년에 내한해서 폐교된 학교 재건을 위해 상당 액을 기부하였고, 1930년 재 방문 시 병원과 학교 시설비로 무려 8만 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이는 한화로 80만 원에 해당하며, 서울 기와집 8백 채 값입니다. 전형필 선생은 존 개스비에게 40만 원을 지불하고 고려청자 20점(현재, 4점은 국보, 7점은 보물로 지정)을 구입(1937년) 한 것과 비교되는 금액입니다. 더구나 당시 미국은 대공황 중이었으나, 그는 조선 선교와 조선인의 행복을 위해 아낌 없이 기부하였습니다. 왓츠 장로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 결과 남쪽에서는 최초로 군 단위 노회가 조직되었습니다(순천노회). “이런 의미에서 순천노회는 ‘왓츠기념노회’, 순천 선교부는 ‘왓츠기념선교부’라 할 만하다”고 이덕주 교수는 평가합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전도서3:9,10절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예증한(3:1-8) 전도자는,  9-10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는 수고의 헛됨을 논합니다. 하나님의 시기를 모르면, 인간의 수고 그 자체는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유익(재산, 명예, 업적)을 위해 무진 애를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10). ‘노고(勞苦)’에 해당하는 원어는 ‘종사하다’란 동사를 어근으로 파생한 명사로서 ‘직업’이나 ‘업무’ 등을 의미합니다. 전도서에서 사용된 8번은 모두 ‘수고, 노고, 일, 재난’ 등 부정적인 뜻을 내포합니다. 전도자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여러 가지 고난을 이 단어 하나로 표현합니다. 즉 밭을 가꾸는 것,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 사람들의 삶의 과정 모두를 ‘노고’에 포함시켜 하나님의 섭리와 인생의 삶을 숙고한 것입니다. 이 노고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인간은 피할 수 없음을 깨닫자 전도자는 신음을 토하고 있습니다(10절). 인간 특히 솔로몬과 같은 지혜자의 교만과 자존심을 여지없이 깨부수는 하나님의 망치라 하겠습니다. 전도자는 “내가 보았노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자신의 성찰의 결과를 적어 놓고 있습니다. ‘천라지망’은 듬성듬성한 것처럼 보여도 어떤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물입니다. 이 수고스러운 인생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에 충실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우리의 기쁨으로 삼고, 그분의 명령(예수에 대한 믿음, 부모공경, 형제와 이웃사랑 등)을 지키는 삶이 제일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전도서3:11절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시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다.”            

9~10절은 하나님의 섭리를 외면한 인간 수고의 허무함이 강조되나, 11~15절은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올바른 삶의 자세를 논합니다. 본절이 1~8절 바로 뒤에 나온다면, 처음 여덟 구절은 매우 긍정적이었겠지만, 이제 또 다른 좌절감을 호소합니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인간은 그분의 행하심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탄식입니다. 먼저, 11절 첫 부분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시고”. 창세기 1,2장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반복하십니다. 창조 다음에 섭리가 옵니다. 섭리는 창조하신 만물을 당신의 뜻을 따라 유지·완성하여 아름답게 하시는 것입니다. 꽃씨를 심고 자라서 꽃이 활짝 펴는 모습과 같습니다. 원문은 ‘모든 것’을 서두에 배치합니다. 여기서 전도자의 의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이 겪는 모든 일은 원래는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시는 선한 섭리 때문이므로, 만약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아름다운 결과에 도달하여, 인간은 두려움과 허무가 아니라 흥분과 기대로 꽉 들어찬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본질이며, 모든 허무와 불행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는 소망의 삶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이두메아 사람들(2)
로마서 9:13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본절은 말라기1:2,3절의 인용입니다(BC 430). 이 시기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100년이 지난 때입니다. 에돔 지역은 나바테아 사람들이 정착하였고, 에돔 사람들은 갈렙이 정복하였으나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손들은 버린 땅 마레사로 이주합니다. 이 도시가 은퇴한 그리스 군인의 거주지로 되어 헬라와 가나안 문명이 뒤섞여 다양한 문화를 형성한 것은 알렉산더의 정복이후입니다(BC332). 유적지로는 이두메아 사람들이 살던 동굴과 지하구조가 유명합니다. 일반적인 가옥과 가축우리, 작업장 그리고 비둘기 집 등 석회 동굴을 뚫어 만든 이 구조물들은 때로는 지하의 길로 연결되었습니다. 85개의 비둘기 집들이 발견되었고, 그 중 길이 30미터의 터널형 비둘기 집은 벽에 3000마리 이상의 비둘기들의 서식을 위한 1900개 벽감(벽에 오목하게 판 공간)을 갖추었습니다. 비둘기는 식용 목적이고 변은 연료였습니다. 지하 공간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주거지로, 침략에도 대비하고, 농업 및 공예 산업에도 이용되었습니다. 땅을 포함한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인간의 노력에 따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임을 오늘 본문은 밝힙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으로 야곱과 같이 이삭의 자손이나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도 같습니다. 따라서, 신앙유산을 반드시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영생이고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14:23)

마가복음 4: 39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오늘 본문은 공관 복음서 모두가 증언합니다. 주님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큰 무리를 가르친 저녁,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명령하십니다. 저편은 이방인들과 거라사의 광인이 사는 곳입니다. 그때 큰 광풍이 일어나 침몰의 순간이 오자, 물결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십니다. 이분이 누구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을 따라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대권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롬1:3,4)고 밝힌 분입니다. 먼저, 예수를 모시고 사는 삶은 결코 육신적 평안과 안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 성취하는 삶입니다. 거기에는 광풍, 바다, 이방인, 광인 등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 많은 인생을 살아가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둘째, 제자들의 배처럼, 우리의 인생의 배에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분은 친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마28:18)고 선포하셨으니, 믿음을 갖고 염려와 두려움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때때로 인생의 풍랑이 몰아닥치곤 하나, 그런 풍랑은 모든 사람이 겪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멍에를 지는 믿음 생활은 힘들지 않고 배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즉,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소망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광풍 속에서 주님의 능력을 친히 경험한 사도 베드로는 세상풍파에 시달리는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권고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