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6/2-6)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왓츠기념 선교부
사도행전 12:5절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조지 왓츠 장로의 선교 헌금 약속을 기반으로 순천 선교부가 개척 된 때는 1912년 8월 이후입니다. 먼저, ‘건축 선교사’ 스와인하트(한국명 서로덕, 1911년 내한)를 순천에 보내어 선교사 사택을 짓는 한편, 교회와 전도 사업을 담당할 프레스턴과 코잇, 남학교를 세울 크레인(구례인)과 여학교를 세울 더피(두애란), 병원을 운영할 의사 티몬스(김로라)와 간호사 그리어(기안나), 여성 선교를 책임질 비거(백미다), 주일학교를 담임할 그랫(안채륜) 등으로 개척 선교단이 조직됩니다. 개척 선교단 중 1913년 4월 프레스턴과 코잇 가족이 선발로 떠납니다. 그러나, 코잇 가족은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사택 서재에서 지내다가 두 아이(네 살, 두 살)가 이질 걸려 죽고, 매곡동 뒷산 ‘아다무락’ 골짜기에 묻히게 됩니다. 그때 부인도 병에 걸려 회복이 어려웠지만, 선교사들과 교인들의 “뜨거운 기도”로 겨우 회복되었습니다. 코잇 부인을 위한 ‘중보기도’는 개척 선교사들의 각오를 굳히고, 선교사와 한국인 사이에 깊은 연대감을 형성합니다. 이 사건은 ‘불세례’(baptism of fire)로 불리워졌는데, 남편과 딸을 병으로 잃고도 43년 동안 조선 의료선교를 담당한 로제타 홀을 생각나게 합니다. 순천 선교부는 순탄하게 발전합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신유의 은사를 주셨으나, 인류에게 이성을 통해 의학을 발전시키고 질병을 과학적·체계적으로 치료토록 하였습니다. 순천 선교부는 주님의 이 뜻을 깨닫고 과학적·체계적인 선교를 시행함으로, 많은 의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행28:8)

전도서3:11절 (2)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시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다.”(현대인의성경)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본문을 중심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운영되는 세상의 관리자로 창조된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즉 영원한 것을 깨닫고 거기에 도달하려는 본성을 받았습니다. ‘영원’은 히브리어 ‘올람’의 번역으로, ‘올람’은 ‘영원(eternity)’혹은 ‘무지(ignorance)’의 뜻을 갖습니다. 만약 ‘무지’로 본다면, “사람의 마음속에 무지를 넣어주셔서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이해할 수 없다”(NET)가 되나, 문맥과 용례상 ‘영원’이란 의미가 압도적입니다. 문제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인간은 좌절한다는 점입니다. 존 야릭의 글입니다. “인간은 마음속에 “영원”을 품고 있다 – 그의 창조주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만드셨다. 인간은 자신의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 전체 구조의 더 깊은 의미를 깨닫고 싶어 하지만, 창조주는 피조물이 자신과 동등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를 위한 주된 장치는 ‘시간이란 베일”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 이상의 것의 존재를 알지만, 현재를 넘어 ‘영원’의 차원에서 역사와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인간이 당신을 경외하기 원하신 하나님의 뜻 때문이나(전3:14), 남 다른 지식과 힘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교만과 범죄를 역사는 증언합니다. 은사를 가질수록 더욱 주님을 경외해야 하나 지혜자 솔로몬도 못하였습니다. 기도 이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언1:8)

전도서3:11절 (3)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시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현대인의성경)           

본절의 세 번째 부분, “그러나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다.”를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생각해 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관리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당연히 맡은 부분을 아는 것이지 창조주처럼 전부를 통째로 알지 못합니다. 문제는 불법적인 방법이지만 선악과를 먹으면 전부를 알 수 있다고 속인 뱀의 간계에 넘어간 것입니다. 관리자에서 주인의 위치로 올라가려는 마음 그것이 타락의 핵심이고 모든 불행의 출발점입니다.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 모든 동물보다 낫지만, 반면 유한성을 자각하지 못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유한함을 인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과 바른 교제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 유한함은 죽음과 시간이란 두 개의 베일을 통해 분명히 자각되는 것은 내일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든 사람은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의 과정과 결과를 영원까지 완전히 아시나, 인간에게 영원의 영역은 오직 추측과 상상의 대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지 영원을 아는 마음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주님 허락하시면 내가 이것 저것을 해 보리라”는 겸손한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유한성 자각의 표시요 실패를 덜 합니다. 실로 사람이 유한성을 깨달으면 삶에 대한 바른 통찰을 갖게 됩니다. 이어지는 12절-15절에서 솔로몬은 바로 그점을 논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16:9).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이두메아 사람들(3)
마태복음 2:16절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두메아 사람들의 도시 마레사의 유적들 중 하나는 지하 구조물 안의 올리브 압축실입니다. 방안에는 올리브가 담긴 주머니의 압축을 위한 거대한 돌추들이 널려 있고 다른 쪽에는 연자 맷돌 같은 맷돌들이 놓여 있는데, 여기서 올리브를 으깬 후 바구니에 담아 압축기로 기름을 짜냈을 것입니다. 또한, 바위를 깍아 만든 무덤들(BC 3-1세기), 특히 내부 벽화를 가진 시돈의 아폴로파네스 가족 무덤이 유명합니다. 무덤의 양면에는 시체를 눕힐 수 있는 벽감들, 거대한 항아리, 다양한 신화적 동물들의 벽화가 있습니다. 벽화는 악령을 물리치기 위한 까마귀들, 하데스를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거대한 맹견 세르베루스, 사후세계를 상징하는 붉은 불새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도시 마레사는 알렉산더 대왕을 거쳐 시리아의 셀루시드 왕조의 통치를 받았으나, 곧 유대인들이 세운 하스모니아 왕조(BC164-63)의 지배 하에 들어갑니다. 하스모니아 왕조는 구약시대의 영토를 다시 차지하고 이두메니아 사람들을 유대교로 강제 개종시켜 큰 원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전 63년 폼페이우스의 로마군에게 정복당한 후 이두메아 계통의 친 로마 정치인 헤롯이 유대지역을 통치합니다. 헤롯(BC37-4)은 잔혹한 통치를 펼쳤으나,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 성전과 가이샤르 항구를 세운 뛰어난 건축가였습니다. 헤롯 통치의 말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세상은 칼과 권력으로 확장하나 천국은 회개와 믿음 그리고 사랑으로 세워갑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사도행전10:34,35절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가장 위대한 결단”(1982년)는 책에서 구봉서 등 총 24명이 간증합니다. 패턴은 불신자로 혹은 형식적 믿음으로 살다가 인생의 풍랑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축복 받은 내용입니다. 가난과 병은 이 세대가 믿음을 갖게 된 계기입니다. 서두에 등장하는 김수웅 장로도 같습니다. 그는 불신자였던 젊은 시절 소금 장사를 하다가 사기를 당합니다. 전 재산을 잃고 엄청난 빚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하자, 담당 의사는 “종이 한 장은 쉽게 뚫리지만 종이 뒤에 벽이 있으면 뚫리지 않습니다. 믿음은 벽과 같은 것이니 절대자인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는 신앙의 권유를 합니다. 그는 자진하여 부흥회에 참석하고 주체할 수 없는 회개의 눈물과 함께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후 우연히 은사를 만나 30만원을 지원 받고 사업을 재개하여 성공하는데, 이 과정에서의 우여곡절과 주님의 돌보심을 간증합니다. 김 장로는 믿기 전에도 효자였으며, 믿고 나서는 더 효자가 되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이방인으로 경건하고 많은 자선을 행하자, 그를 눈여겨 보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사 베드로를 청해 복음을 듣도록 지시하십니다(행 10장). 오늘 본문에 나온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이지만, 불신자 중에도 겸손히 부모공경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부르심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하물며, 성령께서 그 마음에 오신 신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 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벧후1:10,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