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6/23-27)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린턴 가문의 ‘결핵 선교’
마태복음 10:12절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본문은 열두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 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부여하신 뒤 복음을 전하도록 파송하신 대목입니다. 19세기말과 20세기의 한국 선교사들은 ‘병원-학교-교회’ 삼각 전략을 통해 한국에 복음을 심었습니다. 교육과 관련된 대표적인 열매는 한국 최초의 미국 문학사 하란사(1875-1919)입니다. 그는 기혼녀로서 이화학당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는 중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한편, 휴 린턴이 세운 순천기독진료소는 6.25 전쟁 후 급속히 늘어나는 결핵 퇴치에 큰 공헌을 합니다. 순천기독진료소의 건물은 2층으로 왓츠 장로의 헌금(7천불)과 스와인하트 건축선교사의 작품입니다. 휴 린턴은 윌리엄 린턴의 3남이자 의사 인요한의 부친입니다.1926년 군산에서 출생하였고 1941년 강제 추방되었으나, 1953년 한국 선교사로 다시 와서 순천에서 활동하였습니다. 휴 린턴은 시골을 돌면서 교인을 돌보다 치료받지 못해 숨져가는 결핵 환자들을 보고,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우선 약을 먹여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고 판단합니다. 먼저, 여러 병원과 함께 결핵 퇴치 운동을 전개하였고, 자신이 직접 의료진을 데리고 환자를 찾아 다녔습니다. 환자들에게 “약만 먹으면 살 수 있다”고 설득하여 진료소로 데리고 와서 부인을 통해 치료하였으니, ‘결핵 선교사’라는 그의 별명은 정당합니다. 휴 린턴은 교통사고로 소천합니다(1984).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것인가?” 휴 린턴은 결핵환자를 보고 그 답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3:12)

전도서 3:14절 하나님의 섭리의 영원성(2)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의 영원성을 언급한 전도자는, 그 결과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사람이 더 할 수도,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다는 완전성, 완결성, 충분성을 강조합니다. 실로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그 행하시는 일 역시 완전하여 가감이 필요 없는 것은 물론 결코 가감 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의 창조자이며 보존과 섭리의 주관자이기 때문입니다. “울면서 마속을 참하다”(읍참마속(泣斬馬謖)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는 제갈량이 아끼는 부하 마속을 전쟁에서 패배한 책임을 물어 처형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삼국지의 일화에서 나왔습니다. 책임자 마속은 부장 왕평의 반대에도 성이 아니라 산에 진을 폈으나, 뒤늦게 가정에 도착한 장합은 이를 보고 급수로를 끊고 들이쳐 마속을 궤멸시켰습니다. 마속은 ‘병법의 금기—높은 곳을 점해도 보급과 배후가 불안하면 취약하다’는 교훈을 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 양쪽 군대의 지혜자 제갈량이나 사마의의 기준에서 보면 마속은 그야말로 우장입니다. 하물며, 완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때 가장 어리석은 자는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완전성이 가장 잘 반영된 것이 하나님의 계명들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삶은 하나님 사랑, 자기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유일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편19:7)

전도서 3:14절 하나님의 섭리의 영원성(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인간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법칙과 그분의 주권적 섭리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탄생, 노화, 병, 죽음, 성공, 실패, 사랑, 미움 그 어느 것 하나 인간의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삶을 받아들이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전도자 역시 그 진리를 고백합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주어진 복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가야 하나(전9:7-10), 그 자체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경외’의 원어는 ‘야레’로서, ‘두려워하다, 위엄있다’ 등의 복합적 의미를 갖지만, 기본적으로 존경과 사랑에 토대를 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행위를 보시고,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사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시종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분의 행하심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하다가 심판을 받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조상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불평을 쏟다가 광야에서 멸망 당하였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들은 돌보아 주심을 믿고 소망하면서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이것이 세상과의 차이인데,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롬5:5).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0:38)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단
창세기 49:16절
“단도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처럼 자기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현대인의성경)


1830년 대 미국의 성경학자 에드워드 로빈슨은 이스라엘을 직접 답사하면서 수많은 성경 속의 도시들을 밝혀냈습니다. 그중 헬몬 산 폭포 옆의 ‘텔 엘-카디(= 심판의 언덕)’로 불리는 유적지를 발견하고 단 자손이 이동하여 살게 된 레셈(수19:4) 혹은 라이스 땅(삿18:1)으로 주장하였습니다. 학자들은 단 유적지인 텔 엘-카디가 성경의 ‘단’ 지역이고, 요단 강 이름의 어원이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즉, ‘단’은 심판의 뜻이라(창49:16) 유적지 이름의 어원과 유사하며, 옆의 폭포는 요단 강 수원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요단 강은 히브리어로 ‘야르덴’ 강입니다. ‘내려오다’라는 ‘야라드’와 ‘단’이라는 이름의 합성어로 ‘단 샘에서부터 내려오다’라는 의미입니다. 수원은 ‘단, 헬몬, 스닐’의 샘 3개인데 그중 단 샘이 가장 큽니다. 본문은 야곱의 임종 시 아들 단에 대한 예언입니다. 단은 라헬의 시녀 빌하의 후손이나 야곱은 정식 지파로 인정하였습니다. 가나안 정복 시 단 지파는 소라, 에스다올, 에글론, 욥바(현대의 야파) 등의 블레셋 지역을 배정 받았습니다(수19장). 단 지파는 용감하였지만(삼손), 블레셋의 강력한 저항철 병거로 인하여 그 일부가 ‘텔 엘-카디’(라이스)로 이주하여 모세의 손자 요나단을 제사장으로 삼고 우상숭배를 시작합니다(삿18:30,31).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이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주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제자들은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을 지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14:24).

전도서 3:9절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는 성공한 사람들의 개인적 능력과 재능을 넘어선 환경적 요인(문화와 사회적)의 중요성을 주목합니다. 그의 여러 사례 중 ‘랭건과 오펜하이머’의 비교는 핵심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과학적 재능은 비슷하였지만, 랭건은 그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말목장 주인으로,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로서 맨하튼 프로젝트를 이끈 관리자로서의 명성까지 얻었습니다. 그는 한 개인이 자기 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10,000시간을 쏟으면 얻어지나, 그 전문성을 발휘할 사회와 문화의 테두리를 얻지 못하면 평범하거나 실패한 삶을 살아간다는 결론입니다. 중용되려고 13년을 돌아다닌 공자 역시 실패해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사회적, 가정적 환경과 개인의 노력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은 각 어느 정도일까요?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적절합니다.「요재지이」(포송령 작)는 그 유래를 말합니다. 한 선비가 계속 과거에 떨어지자 옥황상제에게 따집니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에게 술 내기를 시키니 전자는 3잔, 후자는 7잔을 마셨습니다. 옥황상제는 선비를 불러 세상만사는 7할은 운명에, 3할은 운수에 지배되는 법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나, 운수로 표현되는 기회와 때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인간은 열심히 그릇이 되고, 하나님은 그 그릇 중에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그릇도 중요하나, 주인의 선택은 더 중요합니다. 문제는 희생과 섬김이 필요한 곳을 위한 그릇은 하나님이 언제나 선택하시나, 주님의 가르침을 간직한 제자들 이외에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