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5/6/30-7/4)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린턴 가문의 ‘결핵 선교’
요한복음 12: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결핵 선교사” 휴 린턴은 1984. 4. 10일 농촌 교회 건축자재를 싣고 귀가하다 순천시내에서 음주운전 버스와 충돌하여 의식을 잃었고 택시로 광주기독병원으로 이송 중 숨졌습니다(58). 당시 응급차 제도는 없었습니다. “응급 시설을 갖춘 구급차만 있었더라면…..”  린턴 집안사람들은 응급 시설을 갖춘 구급차를 미국에서 특별 제작하여 들여왔습니다. 마침 린턴의 막내아들 존 린턴(인요한, 1959-)이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3대 선교사”로 내한하여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119구급차’ 제도 탄생을 이끌었습니다. 실로 휴 린턴의 죽음은 생명을 살리는 제도적 변화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린턴 가문은 외증조 할아버지 유진 벨의 내한 100주년되는 1995년, ‘유진벨100주년기념재단’을 설립하였고, 현재 재단 이사장은 휴 린턴의 둘째 아들 스테판(인세반, 1950-)입니다. 그는 1979년부터 북한을 도왔는데, 재단 설립 후에는 북한의 결핵퇴치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1950-60년 대 남한에서 맹위를 떨치던 결핵균이 지금 헐벗고 가난한 북쪽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순천초등학교, 대전외국인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와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Ph.D)한 바 있습니다. 린턴 가문은 신앙, 의학, 인도주의, 교육, 남북 화해라는 키워드로 ‘대를 잇는 선교 헌신’의 모범을 한국민들에게 130년 동안 비추었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눅8:16).    

전도서 3:15절 (1)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본절은 14절과 함께 ‘하나님의 영원성’을 진술하지만, 강조하는 바는 다릅니다. 14절의 초점은 피조 세계의 무상과 허무이고, 본절의 초점은 하나님의 통치 본질과 신적 질서의 불변성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전에 있었던 것 그것이 무엇이냐? 이미 그것은 있으며 장래 있을 것도 이미 있었다”가 됩니다. 전도자는 수사 의문문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섭리의 영원성, 불변성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흐름과도 관계없이 변함이 없으며, 특히 창조 사역과 구속 사역이 잘 드러냅니다. 본절에 나오는 ‘옛적’, ‘이제’, ‘장래’라는 표현은 인간의 시간적 한계를 뜻하지, 하나님을 구속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모두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다같이 현재일 뿐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보여주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현재와 미래에도 반복하여 일어남을 전달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미리 정해진 순환과 반복 속에 있어서, 인간이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존재했던 것의 반복일 뿐입니다. 마치 켜진 등불이 빛을 내어 집안 모든 사람을 비추듯이,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악인이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악인에게 벌이 신속히 임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때 의인은 하나님의 지혜와 돌보심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편1:6).  

전도서 3:15절 (2)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다시 찾으시느니라’에 해당하는 ‘예박케쉬’는 ‘찾다’ ‘수색하다’의 동사 ‘빠카쉬’의 미완료형으로, ‘계속하여 집요하게 찾는다’는 의미인데, ‘지난 것’ 혹은 ‘박해당하는 자’로 번역될 수 있는 히브리어 단어 ‘라다프’와 결합하여 두 가지 해석을 낳습니다. (1) ‘지나간 것’이란 입장: 하나님은 지난 일들을 반복하심을 뜻한다. (2) ‘박해당하는 자’란 입장: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즉, 하나님께서 박해받는 자를 돌보시고 악인을 벌하심을 의미한다. 이 두 번역이 모두 가능하나, 문맥은 하나님의 공의보다 영원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전자가 타당합니다(개정개역).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그분에게 과거, 현재, 미래란 모두 현재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시간의 제한을 받는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경외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고대 3대 통치자로 알려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엄청난 규모의 바벨론 성을 건설하였습니다. 그 웅장한 모습을 보면서 교만한 말을 내뱉는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심판하는 말씀이 선포되었고, 그는 정신이상이 되어 7년 동안 들짐승과 함께 살게 됩니다. 7년 후 느부갓네살 왕은 정신이 돌아왔고,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경배하노니”(단 4:34–37)라는 고백과 찬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권력에 취했던 느브갓네살은 비로소 자신이 인간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세상 만사의 결론을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다.”(전12:13,쉬운성경)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라이스
사사기 18: 29절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였더라”

레셈 혹은 라이스 지역은 이미 주전 19세기 이집트의 문서에도 나오고, 아브라함도 조카 롯을 구하려고 헤브론에서 이 도시까지 쫓아와서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을 무찌른 바 있습니다(창14:1-14). 라이스는 풍부하였기에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삿18:7). 그 이유는 먼저, 단 샘에서 나오는 물로 인해 땅이 비옥하였고, 다음으로,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지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연결되는 무역로(해변의 길)에 위치하였기 때문입니다. 단 자손의 일부는 가나안 원주민의 텃세에 밀려 살 곳을 찾던 중 이 성을 뻬앗아 거주하고, ‘단’이라 불렀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재기에 성공한 것입니다(수19:47;삿18:29). 전쟁 과정은 사사기 18장에 자세히 나오는데, 문제는 우상숭배입니다. 단 자손은 미리 보낸 정탐꾼이 보아 두었던 미가의 집에 세워진 드라빔과 제사장을 함께 데리고 라이스로 가서 그 신상을 세워 거주하였습니다. 제사장은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으로(삿18:25),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후손 일부는 몰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이 실로에 있던 시대에, 단 지파는 미가가 만든 새긴 우상을 섬기며 그들 마음대로 행하였습니다. 5백년 후 북왕국 여로보암 왕은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신(=여호와)이라 선포하고 단과 벧엘에 두었으니, 북이스라엘 백성도 계명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주의해야 할 우상은 탐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

갈라디아서 6:8절
“자기 육체의 욕망대로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둘 것이며, 성령의 뜻을 따라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쉬운성경)

2025/6/26일 언론은 일제히 “제프 베이조스가 약혼녀 로렌 산체스와 함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사흘간 초호화 결혼식을 올린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전 세계 유명 인사 약 200여 명이 하객으로 참석하였고, 결혼비용은 약 5600만달러로 추산됩니다. 베이조스(1964년생)의 재산은 약 2천억달러(273조원)라 합니다. 배우자가 될 여자는 전 폭스 TV 앵커인 로런 산체스(1969)로 에미상을 수상하였으며, 베이조스가 설립한 블루오리진에서 항공촬영 업무 수행하며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두 사람 다 결혼 경력이 있습니다. 베이조스는 전 부인 매켄지 베이조스 사이에 세 명의 아들과 1명의 양녀(중국소녀)를 두었고, 산체스는 두 전 남편들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에서 두 사람은 가정은 온전하지 못했지만, 인생은 성공하였다고 자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즉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열매입니다. 성경적 기준에서 두 사람은 파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재물을 믿고 제 멋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은 죄 사함의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였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입니다. 포도나무가 아름다운 포도를 맺듯이, 예수의 멍에를 메고 예수를 배우려고 힘쓰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의의 열매요, 영원한 생명을 넉넉히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