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4/9/15-19)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여수 애양원(3)
요한복음 16:13절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26년 전 이덕주 교수는 진칠용 집사의 안내를 받아 애양원을 답사하였습니다. 진집사는 1958년 서울서 대학 재학 중 발병하여 애양원에 들어왔습니다. 치료 후 ‘환자 직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하고 매점을 운영하면서 애양원 역사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교수가 애양원 역사의 산 증인들을 만나게 하는 등 구석구석을 안내하였는데, 애양원은 이야기와 역사로 가득 찬 곳입니다. 90년 전에도 같았는데, 당시 원장 윌슨(1880-1963)의 선교 편지 중 한 대목입니다. “순천에서 남동쪽으로 14마일 정도 가면 최근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여수항이 나오고 그곳에 730명 환자가 수용되어 있는 비더울프 나환자촌이 있습니다….요양원 부지 안으로 들어서면 수위 조씨를 만나게 됩니다. 조씨는 비록 손은 일그러졌지만 정신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이곳에 수용된 남녀노소 모든 환자들의 이름과 주소는 물론 그들의 가정 내력까지 들려줄 것입니다.” ‘“비더울프요양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상당한 운영 자금을 기부한 후원자의 이름을 따른 애양원의 또 다른 명칭입니다. 작은 나환자 요양원조차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안내자가 필요하듯, 우주의 전 역사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알고 그분의 뜻을 따르려면 하나님의 영의 가르침과 인도가 있어야만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적용하는 삶이 중심이며, 목적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란 주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14).

전도서 4: 13절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3-16절의 단락은 이미 살펴 본 주제 – “해 아래에서 지혜는 어리석음보다 뛰어나지만, 그 장점들도 결국에는 사라진다.”(2:12-17) – 를 다른 각도에서 예증합니다. 본절은 두 인물을 소개하며3측면에서 대조합니다. ① 사회적 지위: 가난 vs. 왕. ② 나이: 젊음 vs. 노년. ③ 지혜의 유무: 지혜 vs. 어리석음. 지혜와 어리석음의 대조가 핵심으로 그 당시 통념을 깨고 지혜는 나이나 사회적 지위 등 모든 외적 조건을 초월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통상, 왕은 지혜롭고 존경받는 존재이며, 젊은이는 미숙하고 배워야 할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은 젊음, 가난, 심지어 감옥에 있는 처지조차도 지혜로 극복될 수 있지만, 늙은 왕이라도 지혜로운 충고를 받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임을 선포합니다. 충고를 무시하는 태도는 어리석은 자의 명백한 특징이며, 특히 지도자인 왕에게는 치명적입니다. 그는 바벨론 마지막 왕 벨드사살과 같이 왕국을 빼앗길 것은, 충고를 거부하는 지도자는 지도자 자격을 이미 상실하였다고 하나님은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지혜를 ‘듣는 태도’와 깊이 연결짓고 있으며(잠언 12:15), 나이, 지위, 배경을 초월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지혜 중의 지혜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로서, 그 어리석음은 일시적 실패에 그치지 않고 영원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러한 자를 ‘그 믿음을 모래 위에 세운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시험이 닥칠 때 그의 믿음은 쉽게 무너지고 그 무너짐은 심각할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6:46).

전도서 4: 14절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3,14절의 주제는 “지혜가 이끄는 인생의 반전”입니다. 서두에 나오는 ‘그’는 13절의 ‘가난하나 지혜로운 젊은이’ or ‘늙고 어리석은 왕’ 중 누구이겠습니까? 만약 전자라면, 그 젊은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가난하고 감옥이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지혜로 왕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단순히 신분 상승을 다루지 않고, “지혜가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요셉의 인생이 비슷합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출신도 아니고 감옥에 갇힌 것도 억울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로 감옥에서 나와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습니다. 만약 후자의 해석이 맞다면, 지금은 늙고 완고해진 왕 역시 한때는 지혜로운 젊은이로서 가난과 감옥의 시절을 겪었지만, 그 지혜로 왕위에 올랐던 인물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는 점차 완고해졌고, 결국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혜를 상실한 자의 비극입니다. 지혜란 단순히 한때의 능력이 아니라,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실천되어야 할 태도라는 교훈을 깨닫게 하는 대목입니다. 사울 왕이 그 예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겸손하게 수용하면서 사무엘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권세가 강해지자 교만하여 사무엘의 충고를 거절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 통치하였습니다. 결국 왕의 자리는 다윗에게 넘어갑니다. 지혜는 낮은 자리에서도 우리를 높이지만, 교만은 높은 자리에서도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지혜 중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듣고 순종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듣고는 잊어버리는 자입니까?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아합의 므깃도
열왕기상 9:15절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므깃도는 지중해변에서 동쪽의 내륙으로 연결되는 와디 아라(Wadi Ara)길과 남쪽 이집트에서 북쪽 중동지역으로 가는 ‘바다 길’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요지입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왕국을 계승했을 때 그는 분명 이 중요한 도시를 요새화해야만 하였습니다. 따라서, 성서는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을 견고하게 할 때 하솔, 게셀과 더불어 므깃도에 성을 건축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왕상 9:15), 고고학자들은 솔로몬의 병거성을 므깃도에서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의 시대에 므깃도는 요새화되었고 아합의 건축물 중 상당부분이 솔로몬 시대의 건축물과 겹쳐져 건축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국시대의 모습 재현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합 시대의 므깃도를 들어서면 거대한 돌을 깎아 쌓아 올린 성문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성문은 솔로몬 시대와 달리 전체가 ‘4방 성문’이었고, 병거가 통과할 수 있을 만큼 넓었습니다. 물론 이중문을 설치하고 앗수르에서 발견된 문들처럼 청동을 입혔을 것입니다. 아합은 22년 동안(BC871-853) 북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하였지만, 성경은 아합을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17:25)로 평가합니다(열상16-22장). 아합은 세속적 관점에서 볼 때 부국강병을 추구한 실용주의적 통치자였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한 왕일 뿐입니다. 세속적 성공이 영적 실패를 덮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입니까?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19:24).

히브리서 3:7,8절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흔히 가나안을 천국의 상징으로 이해하나, 가나안은 단순한 미래의 장소가 아닌, 오늘날 신자가 믿음으로 누릴 수 있는 영적 유산의 한 형태입니다(워랜 와이즈비). 히브리서 기자는 광야는 순종을 시험하는 장소로, 가나안은 시험을 통과 시 받는 축복의 상징으로 봅니다. 물론 가나안의 축복은 궁극적인 구원인 부활의 축복을 내포합니다만,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을 따르면,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할 때 그 유산은 매우 유익합니다. 그 영적 유산은 이렇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는 광야에서 죽었는데,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신명기는 ‘두 번째 율법”을 뜻합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가 적과 싸워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무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전쟁할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위해, 그후에는 유업으로 받은 땅에 계속 거주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광야 여정을 회고하면서 그 율법을 해석·선포합니다(신1:1-8). 슬프게도, 이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님을 떠나 우상으로 돌아섰고 모두 쫓겨납니다(BC586). 누구든지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와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삶’이 중요합니다. 부활이라는 완전한 안식이 올 때까지 히브리서 기자는 권면합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