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6/1/19-23)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전라북도편
잠언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가족과 함께 정착한 정해원은 전주 지역에서 상당수의 구도자를 모았습니다. 테이트가 본국에 보낸 보고입니다: “선교 개척 사업은 상당히 희망적입니다. 우리가 이곳(=전주)에 미리 보낸 사람이 지난 겨울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모아 가르쳤는데, 그들이 복음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섯이 세례를 받겠다고 합니다. 아직은 세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역사하신다면 가을 전에 적어도 세 명 정도는 세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1895. 장로교 해외선교 연차 보고서). 1894. 3월 테이트 남매가 전주에 도착하자, 처음 보는 서양 여자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들 중 몇몇은 복음에 관심을 보여서 테이트는 가을 전에 세 명에게 세례를 줄 수 있다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1894년 4월 전라북도 고부에서 동학혁명이 발발하였습니다. 미국 공사의 급전을 받고 테이트 남매와 정해원 가족들은 모두 철수 하였으며, 약 2주 후에 전주성은 정부군에 함락됩니다. 이듬해(1895. 2)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어서 선교사들이 내려와 보니 ‘희망적이었던’ 전주 구도자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테이트의 계획은 일단 좌절되었지만, 남장로회는 전주를 거점으로 전라도 북부 지역에 복음을 전파할 전략을 세웁니다. 이른바 삼각 선교 전략으로, 교육과 의료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계획입니다. 드디어 3년 뒤 5명의 세례자가 나왔는데(1897.7월), 전주 지역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의 터가 놓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계획은 사람들의 뜻을 모아서 세우고, 전쟁은 전략을 세워 놓고 하여라.”(잠언20:18,새번역).

전도서 6:9절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본절의 요지는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돈이나 지식 등-에 만족하라’ 입니다. 전도서 6:7–9절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로 인한 만족의 부재를 다루며, 전도서 전체의 주제인 “헛됨”을 다시 강조합니다. 사람은 평생 수고하지만 그 수고가 욕망을 채우지 못합니다(7). 여기서 ‘욕망(네페쉬)’은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근원적 갈망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먹고, 아무리 소유해도 만족 못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지혜자, 우매자, 가난한 자 모두 같습니다(8). 지혜가 있다고 해서 욕망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며, 가난한 자가 처세 즉, 삶의 기술을 배워 재물을 얻어도 자동적으로 만족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같이 인간은 신분과 지혜의 차이를 넘어 욕망 앞에서는 모두 동일합니다. 따라서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의 욕망보다 낫다”는 본절의 교훈은 현실적인 지혜입니다. 이는 끝없이 더 많은 것을 바라며 떠도는 욕망을 통해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현재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이 지혜인데, “손에 든 새 한 마리가 숲 속의 두 마리보다 낫다”는 속담이 말해줍니다. 부를 포함한 모든 욕망은 충족될 수 없으며, 충족되더라도 거기에 만족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 즉, 신뢰·순종·사랑이 기반된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말씀과 기도를 실천하는 삶, 영생에 대한 사모 등은 바람직하며, 기쁨과 상급이 주어지면서 만족 또한 갖게됩니다. 주님을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경건한 소원들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편37:4).

전도서 6:10절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새번역)

본절은 서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지난 것들의 반복일 뿐이라고 선언합니다. 성서에서 이름은 명칭 뿐만 아니라 성격, 특성, 능력 등 전존재를 함축합니다. ‘사람’은 ‘아담’의 번역입니다. ‘아담’은 고유명사이자 일반명사로서, ‘아다마’(=흙)에서 파생되어 ‘흙에서 나온 자’란 뜻을 갖습니다. 아담(=사람)은 지식을 갖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수고와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전도자는 이 사실을 회상하며, 인간은 하나님보다 강할 수 없으며, 그분의 섭리를 넘어서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우리도 종종 아담처럼 지식을 통해 삶을 통제하고,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데 아담이 행한 모습의 반복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경험해도, 인간은 여전히 흙에서 온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다투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지혜의 출발점입니다(잠1:7).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고, 인간이 인간 됨을 인정할 때 평안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실패를 경험해야 얻는 진주입니다. 아담 역시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야 ‘사람은 자기보다 강한 이와 다툴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깨달았고, 전도자 자신도 하나님 없는 삶의 허무를 접하고 나서 ‘하나님 경외’에 이른 것을 보니. 사람은 자신의유한성을 인식할 때, ‘하나님 경외’라는 최고의 지혜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실패는 축복의 원천입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전5:7).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예수 시대의 배
마태복음 8:24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예수님의 12제자 중 어부들이 많은데 그 시대의 배가 가뭄으로 발견되었습니다(1986년). 갈릴리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기노사르 키부츠의 두 어부가 해변가 탐사 중, 진흙탕 속에 묻혀 있는 오래된 목조 구조물을 발견합니다. 이스라엘 유물청이 발굴하였고, 7년 동안 복구와 보존 작업을 거쳐 복구되었습니다. 배는 길이 8.27m이며 너비 2.3m, 높이 1.3m로 아랫부분만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배의 재료는 백향목으로, 노와 돛대의 흔적이 남아 있고, 바닥은 평평합니다. 배의 구조는 물고기를 잡으면서도 충분히 해안가에 가깝게 머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과 배에서 발견된 토기와 못 등의 측정 결과 이 배는 BC 40년쯤 만들어져 AD 50년쯤까지 100년 동안 수선하면서 사용되었습니다. 배의 수명이 다하자 선주는 물속으로 침몰시켰습니다. 분명 그 당시는 불필요하여 버려졌지만, 2천년이 지난 지금 그 배는 고고학이나 성서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 당시 어부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신약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이끄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자체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에게 병이나 고치며 자신들을 비판하고 기적을 행하여 백성의 인기몰이나 하고 다니는 그리스도는 불필요하였습니다. 그들은 버리기로 작정하고 로마인의 손을 빌려 죽였으나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흘만에 살아나사 성전의 모퉁잇돌이 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굳건한 믿음과 지혜가 요청됩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시118:22,23).

룻기 4:21,22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기는 기근, 병, 노동, 보리, 마음씨 좋은 농부, 베이비 등을 엮어 만드신 아름다운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신뢰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믿음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내 노력도 중요하지만,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주권은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옳습니다. 그 믿음을 갖고 룻처럼 현실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비와 양식과 사람들을 보내사 당신의 이야기를 완성하십니다. 나오미와 룻에게는 보리, 보아스, 베이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룻기는 왕이 된 다윗 가문에 모압 여인의 피가 흘렀음을 보여줍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영접하지 않았고, 발람을 시켜 저주하고자 하였기에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주받은 모압 여인 룻은 믿음과 효성을 보였고, 다윗 왕가의 조상이 됩니다. 이 다윗 가문도 멸망하였으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나오미, 룻, 보아스는 몰랐지만 그들의 선한 행동을 통해 하나님은 영원한 당신의 나라를 세우고 계셨습니다. 유한한 인간의 지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철학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말고,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얻어야 합니다. 복음은 부활의 주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고 세상에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요6:33). 따라서, 복음과 철학은 차원이 다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