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6/7/20-24)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서문교회(6)
마태복음 13:31절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서문교회는 귀중한 역사적 문헌들이 많습니다. 1908년 ‹제직회록›과 1909년 ‹당회록›, 1910년 ‹세례문답책›과 ‹교적부›등이 대표적이며, 1930년대 ‹예배일지›와 ‹여전도회록›, 고딕 예배당 머릿돌에서 나온 등사본 ‹전라도 선교 35주년 략력› 및 ‹전주서문교회 약사› 두루마리도 귀한 사료입니다. ‘전킨 기념종’의 이야기도 중요합니다. 1908년 전킨 선교사는 폐렴으로 순직하였습니다. 전킨은 이미 세 아들을 먼저 보낸 상태였습니다. 유복자를 뱃속에 품고 미국으로 귀국한 전킨 부인 메리 레이번 여사는 미국 선교부의 도움으로 지름 90㎝짜리 기념종을 제작해 서문교회에 기증했습니다. 종을 받은 교회는 교인들과 인근 교회들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종각을 세웠습니다. 화강암 주춧돌 위에 세 칸 높이(6.8m) 기둥을 세우고 홑처마 팔작지붕을 씌웠습니다. 우아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습니다. 이 종각은 전주의 명물이 되었고 서문교회의 자랑이었습니다. 각각 예배 시작 1시간, 30분, 5분 전에 울리면서 정확한 예배 시각을 알렸는데 웅장하면서도 맑은 종소리는 20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합니다 1944년 일제가 강제로 떼어 가기 전까지 전킨 기념종은 시간을 알리는 기준이었습니다. 또한, 1935년 헐린 ‘ㄱ’자 예배당 마당에서 모여 찍은 사진은 많은 가정이 서문교회에 나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893년 시작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의 헌신은 마침내 열매를 맺었습니다. 오늘날 서문교회는 재정의 1/3을 선교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2).

전도서 8:15절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본절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작은 기쁨을 붙들라는 강한 권면입니다. 이 권면은 벌써 4 번째 반복됩니다(2:24–25, 3:12–13, 5:18–20). 전도자는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받는 현실을 직시합니다. 해 아래의 삶은 불공평하고, 인간의 수고는 때로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절망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오늘의 기쁨을 누리라고 권합니다.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중에 주어지는 소박한 즐거움은 허무를 해결하는 절대적 해답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동반자입니다. 쾌락주의나 도피적 즐거움은 아닙니다. 오히려 먹고 마심 같은 일상의 소소한 기쁨, 하루의 수고 속의 작은 쉼, 하나님의 선물 같은 순간들을 말합니다. 그 기쁨은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은혜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싸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세벨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하자 도망하여 광야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왕상19:1-8). 하나님은 기적으로 그를 회복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천사를 통해 떡과 물을 주시고, 잠을 주시고, 다시 먹게 하셨습니다. 아주 작은 기쁨이었지만, 그 기쁨이 엘리야를 다시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에 이런 작은 은혜를 숨겨 두십니다. 그 은혜를 받아 누리며 기뻐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편37:4).

전도서 8:16절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본절은 8장의 결론으로 지혜의 한계를 선언하는 17절을 준비합니다. 먼저, 전도자는 전심전력으로 지혜를 찾았고 땅 위, 즉 세상의 모든 일을 살피려 했습니다. 여기서, ‘일’은 히브리어 ‘인안’의 번역으로 ‘고통스러운 과업’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괴로운 일입니다(1:13;3:10). 후단의 ‘밤낮으로 자지 못한다’의 직역은 ‘낮에도 잠을 본다’는 말로, 밤낮으로 고민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고된 일”입니다(3:10). 마치 영원히 돌을 밀어올려야만 하는 시지푸스의 운명과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받는지, 왜 우리의 계획이 무너지는지 묻지만,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일의 시종을 알지 못합니다(3:11). 따라서, 이해가 아니라 신뢰가 우리를 살립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감추어져 있지만, 그분의 선하심은 가려져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욥도 이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는 고난의 이유를 이해하려고 밤낮으로 고민했습니다. 친구들과 논쟁했고,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했지만 아무 답이 없자 침묵합니다. 그때 폭풍과 함께 나타나신 하나님과 변론하고 고백합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은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겸손히 엎드렸습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일을 잘 살피는 것은 왕의 영광이다”(잠언25:2,쉬운성경).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 욥바
사도행전 9:42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본절은 베드로를 통해 죽었던 다비다가 살아난 사건이 욥바의 복음화 계기였음을 전합니다. 욥바는 오래된 도시로서 주전 18세기의 도시 성벽 흔적들과 주전 16세기에의 진흙벽돌을 쌓아 만든 도시가 발굴되었습니다. 이집트는 욥바를 점령 통치하였습니다. 이집트 기록에 따르면 주전 1440년경 투트모세 3세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벌였고, 그의 군장관 제후티는 욥바 통치자를 속이려고 200개의 거대한 바구니를 준비하고 군사를 숨긴 뒤 조공처럼 보내어 도시를 함락했습니다. 이 승리는 투트모세 3세의 카르낙 신전 벽에 기록되었고, 람세스 2세(주전 1279~1213)는 이곳에 화려한 궁전을 지었습니다. 1950년대 캐플란이 발굴한 이 궁전의 입구에서는 사암으로 만든 문기둥과 그 위에 새겨진 람세스 2세의 상형문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욥바 문화유산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주전 2000년경 진흙벽돌로 쌓은 성문이 화재로 전소한 흔적이 발견되어서 투트모세 3세의 정복 기록이 사실임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아멘호텝 3세의 인장과 이집트식 토기들이 출토된 바도 있습니다. 이집트는 해변의 길을 타고 욥바를 침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길은 욥바의 번영을 위한 무역로였습니다. 이 같이 축복과 위험은 병존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축복과 위험의 양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섭리로 이들을 사용하여 통치하지만 우리는 그 섭리의 시종을 알지 못합니다(3:11). 따라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분의 계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재앙의 날에는 살펴보아라. 이 모든 날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미래를 알지 못한다.”(전7:14,쉬운성경).

믿음과 느헤미야(7)
느헤미야 9: 36절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기도하는 사람, 경건한 사람은 수동적일 수 없습니다. 그들 안에는 사랑의 불이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반드시 지혜와 분별을 따라야 합니다(빌1:9-10). 느헤미야는 성벽을 중수하여 예루살렘의 안전을 확보하자, 모세율법의 정착을 위해 통치력을 집중합니다. 이에 대한 불순종이 유다 멸망의 근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함께 이 문제를 풀어갔습니다. 그 첫 걸음은 모세율법의 낭독과 해설입니다. 그러자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안식일 준수, 십일조, 초태생과 첫열매를 드림, 이방인과 통혼의 금지, 제사의 회복, 절기의 준수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지속적이지는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느헤미야가 재차 총독으로 귀환하였을 때 벌써 개혁 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 개혁은 총독 주도의 겉으로만의 개혁이었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요14:21-24). 한편, 에스겔이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라”(겔37:24)고 말한 다윗 왕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유대 땅을 통치할 때, 에스겔이 예언한 진정한 다윗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군사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왕으로 좌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당신의 백성을 죄의 종에서 해방시키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첫 걸음은,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