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서문교회(6)
로마서 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서문교회의 종탑 옆에 또 하나 기념물이 있습니다. 1943년 4월에 ‘교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세운 기념비입니다. 비석은 화강암의 4각 기둥 형태로 꼭대기에 십자가를 깍아 세웠습니다. 당대 ‘전주 명필’ 설송 최규상의 예서체입니다. 표기법이 특이합니다. 비명 전문이 한자입니다. 일제 말기라 한글을 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단하게 ‘1893年’이라고 하면 될 것을 ‘명치 26년 계사년 주후1893년’과 같이 복잡하게 표기되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미국과 전쟁 중이라 ‘서기’ 연호를 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명치’ ‘대정’ ‘소화’ 같은 일본 연호를 대놓고 쓰기도 뭣해서 생각해 낸 것이 ‘을미(1895)’ ‘을사(1905)’ ‘무진(1928)’과 같은 간지(60갑자) 연호였습니다. 서기 연호를 사용 시에는 일본 연호를 함께 병기하여 감시와 탄압을 완화하려 했습니다. 비석 우측면에 건립연도를 ‘主後一九四三年’과 ‘昭和 十八年’나란히 새겨진 것도 그 때문이나 해방 후 ‘昭和’란 연호를 시멘트로 발라 읽을 수 없었습니다. 비석의 글씨에는 시대의 억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비석을 세운 교회의 마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는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믿음이 떠오릅니다.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의 언어와 교육을 받고, 이름은 바뀌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 청년들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연호와 정권은 바뀌어도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으며, 그분을 향한 교회의 사랑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전도서 8:17절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본절은 8장의 최종 결론입니다. 전도자는 오랜 탐구 끝에 지혜의 한계를 선언하는데, 이른바 “회의적 결론” 입니다(롱맨). 아무리 깊이 연구해도, 아무리 밤낮으로 고민해도,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지혜로 그 전모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지혜자조차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전도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3:11; 7:25–29; 9:12; 11:5). 전도자는 자연, 역사,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없었습니다. ‘계시의 부재’ 때문입니다(라우하).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의 계시를 가진 신약은 분명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첫째, 악인들이 존경받고 장수하며 아무런 벌도 받지 않은채 죽는 경우(10,11), 전도자는 다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다.’란 권고를 할 뿐입니다. 신약에 따르면 그것은 악인에 대한 저주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악인은 마지막 날 부활하여 영원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둘째, 악인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의 경우(14), 전도자는 ‘헛되다’고 토로하며 작은 일상을 즐기라고 권면합니다. 신약은 고난 속에서 의인이 하늘에 상을 쌓고 있음을 말합니다. 마지막 날, 의인은 부활하여 의로우신 재판장에게서 반드시 상을 받습니다. 전도자는 계시의 부재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파악하지 못했지만, 신약의 성도는 계시의 빛 아래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전도서 9: 1절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본절은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의인과 지혜자의 삶조차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밝힙니다. 그들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의인이라 해서 사랑만 받고, 악인이라 해서 미움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사랑과 미움, 형통과 고난이 섞인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현실입니다. 전도자는 이 혼합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의인도 고난을 겪고, 악인도 형통을 누립니다. 삶의 경험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갑니다. 지혜로운 자조차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함은 물론, 미래의 “사랑과 미움의 비율”조차 예측불가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보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 가진 본질적 한계입니다. 지혜는 이런 문제점을 인정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인간은 경험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주권으로 세상을 이끄십니다. 의인의 고난이 실패를 의미하지 않고, 악인의 형통이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히는 등,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높이사 만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십니다. 요셉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적 작품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으로 인도하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승리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 욥바
여호수아 19:46절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욥바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었기에, 욥바를 배정받은 단 지파는 밀려나 북쪽의 라이스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이 시기 욥바에서는 블레셋의 토기와 흔적이 발견되어, 이곳이 가나안 사람들이 아닌, 에게 혹은 갑돌 출신 블레셋의 도시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안드로메다라는 욥바의 공주 이야기도 이 지역의 비(非)가나안적 문화 배경을 반영합니다. 블레셋의 신전은 두 기둥이 지붕을 받치는 큰 규모였고, 바닥에서는 사자 해골이 발견되어 ‘사자 신전’이라 불립니다. 한때 욥바는 솔로몬이 베니게의 백향목을 들여온 항구로 알려졌으나, 최근 발굴에 따르면 실제 항구는 북쪽 5km 떨어진 텔 카실레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도 욥바는 아스글론 영지였고, 산헤립이 가나안 정복 시에 함락되었습니다(주전 701년). 이후 앗수르가 멸망하자 욥바는 바빌론의 손에 넘어갔고, 알렉산더가 가나안을 점령했을 때는 시돈·두로와 함께 헬라 도시가 되었습니다(주전 332년). 가나안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된 유업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완전히 정복한 적이 없었고, 바벨론, 헬라, 로마와 같은 강대국도 이긴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당신의 백성에 대한 믿음의 신실함을 시험코자 함입니다. 둘째, 세상은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영원한 기업이 아닙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약할 때 신자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세가지는 오늘날도 같습니다. 따라서, 좋은 환경과 직장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신실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다니엘 1: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바벨론에서 포로 다니엘(17살)은 친구 3명과 함께 뽑혀 바벨론의 학문을 배우게 됩니다. 대단한 영예였지만, 왕의 진미는 먼저 우상 말둑에게 진상된 후 배정되기 때문에 다니엘은 먹지 않고자 결심합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가 행한 것은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총명을 더하셨고, 그는 제국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영국 국회의원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는 작은 체구와 약한 시력, 정치적 약세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날을 늘 기억하면서, 두 가지 사명을 붙들었습니다; “노예무역을 막고, 관습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노예제도는 단순한 사회문제가 아니라 영국이 회개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죄악이었습니다. 그의 폐지법안은 20년 동안 기득권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1807년 노예무역이, 1833년 노예제도 자체가 폐지됩니다. 윌버포스는 사흘 뒤 세상을 떠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의로운 삶은 착함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입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열매 맺으려면, 반대와 질시 등 고난은 당연합니다. 이 때문에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부르심을 받았음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이다. 만약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을 받고 있다면, 진실로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이다”(롬8:17,사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