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6/9/28-10/2)

한국기독교문화유산을 찾아서(이덕주) – 김제 금산교회(8)
고린도후서 4:8절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바알숭배가 이스라엘을 뒤덮은 시대, 왕도, 백성도, 제사장도 모두 혼합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 한 사람을 세우사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금산은 미륵 불교, 증산도 신자들이 자주 찾는 종교성지입니다. 강일순의 무덤이 있는 모악산 ‘성지’에는 증산도 계열 교단이 50여 개에 달합니다. 미륵 불교의 본산인 금산사를 찾는 불교인들도 많습니다. 금산리 주민 가운데 70% 이상이 불교나 증산교, 혹은 도덕교, 용화교 같은 신흥종교를 신봉합니다. 1994년 재부임하여 2019년 은퇴한 이인수 목사는 “온갖 사교(邪敎)와 전쟁하는 각오로 목회를 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이곳에 전도사로 부임해 와 보니까 젊은이는 아예 없고 옛날 교인이나 그 후손들도 대부분 외지로 나가고 없었어요. 다른 곳에선 이미 사라진지 오랜 ‘ㄱ’자 예배당에서 노인 열 서너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착잡하더군요. 6·25사변을 전후로 3년 동안 예배당이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쓰인 적이 있는데…창문틀에 인민위원회 위원 같은 명단과 ‘김일성 장군 만세’, ‘공화국 쟁취’ 같은 낙서가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새 예배당을 짓기로 하고 모금운동을 하여 1988년 78평 벽돌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ㄱ’자 예배당은 역사적 유물로 보존시켰는데 그 가치를 깨달은 이인수 목사의 공헌입니다. 금산의 혼란 속에서 교회가 다시 서고 복음이 보존된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참된 분을 알게 하신 은혜 때문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전도서 9:18절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본절은 지혜의 우월성과 취약성을 말합니다. 지혜는 무기보다 강합니다. 작은 성읍을 구한 것도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뜨린다”는 말처럼 취약한 면도 있습니다. 탁월한 지혜조차 인간의 죄성과 어리석음 앞에서는 언제든 파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아간 한 사람의 탐욕이 이스라엘 전체를 패배로 몰아넣었습니다. 아이 성은 작은 성이었고, 이스라엘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아간의 죄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지혜로운 전략도, 강한 군사력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도 아간 한 사람의 죄가 파괴한 것입니다.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순종은 공동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예로서, 노아 한 사람의 순종으로 그의 가족은 홍수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복음은 이 진리를 환히 드러내는데, 그리스도의 순종 하나가 인류 전체를 살렸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지혜의 절정이며,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 자리입니다. 이 지혜는 무기보다 강하고, 죄보다 깊으며, 죽음보다 강합니다. 이 지혜를 붙드는 자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이 마음에서 희미해지면, 이 지혜도 삶의 능력이 되지 못하고 옛이야기로 남습니다. 그때 신앙은 의의 열매를 잃습니다. 참된 지혜는 주님을 경외하며 복음을 실천하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만이 죄의 파괴력을 이기고, 공동체를 세우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1:10).

전도서 9장 전체의 묵상
전도서 9:1절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9장에서 전도자는 먼저 인간의 삶을 평가합니다(1–10). 그는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가 동일한 결말—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죽음은 인간의 모든 수고와 성취를 무의미하게 만들며, 인간의 지혜와 경건함조차 죽음 앞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 냉정한 현실 속에서 전도자는 역설적으로 “오늘의 기쁨을 붙들라”고 권면합니다. 이어 전도자는 인간의 삶이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때와 우연’에 의해 좌우됨을 말합니다. 빠른 자가 경주에 이기지 못하고, 강한 자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며, 지혜로운 자가 성공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인간은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인간의 통제력은 극히 제한적입니다(11-12). 끝으로, 지혜의 한계가 언급됩니다. 지혜는 성읍을 구할 만큼 강력하지만, 가난한 자의 지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잊혀지므로, 지혜 역시 허무합니다. 더구나 무기보다 강한 지혜조차 인간의 죄성과 어리석음 앞에서는 언제든 파괴될 수 있습니다(아간의 죄). 누가복음 12장은 주인의 귀가 때를 모르는 종들에 관한 비유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종은 언제든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하며, 주인의 뜻을 따라 성실히 살아갑니다. 반면 어리석은 종은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 생각하고 방탕하게 살다가 돌연히 심판을 맞습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오고, 인간은 때를 알지 못하나, 주님을 경외하는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전9:18).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 가이사랴(7)
이사야 35:6절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스라엘은 겨울에만 비가 오는 건조한 기후 때문에, 도시가 성장하려면 반드시 안정적인 수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이사랴는 샘이 없는 지역이라 초기에는 빗물과 작은 우물에 의존하였습니다. 인구가 늘어나자 헤롯대왕은 도시의 생존을 위해 로마식 도수교를 건설했습니다. 수로는 마치 길고 좁은 다리를 연상케 합니다. 진흙벽돌을 쌓아 만든 다리는 아래 부분은 아치 형태로 연결되어 있고 윗부분은 현대의 수로처럼 물이 지나갈 수 있는 수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수로는 갈멜산 기슭에서 시작해 가이사랴까지 21km를 이어졌으며, 아치형 기단 위에 물길을 올려 중력만으로 물을 흐르게 하는 정교한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수로의 기울기는 1km당 약 1m 내외로 조정되어, 당시로서는 놀라운 정밀도입니다. 도시가 더 성장하자 주후 130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탄니님 강에서부터 새로운 수로를 건설해 기존 헤롯 수로와 연결했고, 물길의 폭을 확장했습니다. 이 두 수로는 십자군 시대까지 사용되면서 가이사랴의 생명줄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해안가를 따라 길게 서 있는 수로의 잔해는 고대 로마 공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이며, 성지순례객들에게는 좋은 포토존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고고학은 말합니다. “가이사랴는 물이 없던 도시였지만, 누군가의 헌신과 기술이 물을 흐르게 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물이 없는 자리에서도 생명의 역사를 흐르게 하신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5).

하나님의 능력을 믿자!
시편 121:2절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인간의 삶을 “실천적 사랑을 배우는 공간”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인간은 행복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행복에 이른다”고 쓰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이 말을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설명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 불가능에 절망하지 말라”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이 경우 고통은 인간의 힘을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김혜자 부친 김용택 선생(한국의 2호 경제학박사)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정부의 요직을 맡았지만, 네 번의 국회의원 낙선 끝에 판잣집으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만한 집도 없는 친구가 많다. 대붕의 큰 뜻을 너희가 어찌 알겠느냐.” 하면서 청렴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1984). 여러분, 무엇을 위해 살아갑니까? 대붕의 길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 자녀, 교회, 이웃, 나라와 민족을 섬기는 삶, 그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그 길에는 위험이 도사립니다. 손해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근거로 믿음을 세웠듯, 우리는 만유의 머리되신 부활하신 주님을 근거로 안심합니다. 우리는 대붕의 큰 뜻을 다 알지 못하나, 한 가지는 압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죄의 길에서 돌이키고, 불평의 길을 버리고, 절망의 길에서 일어나 주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이며 능력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하는 삶, 그 길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길입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