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동네로
누가복음 2:4,5절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본절은 예수 탄생 직전의 역사적 상황입니다. 주전 4-5년 경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제국에 인구조사 명령을 내렸습니다. 목수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통치에 순응하는 유대의 경건한 서민들이어서, 요셉은 성령의 능력으로 아들 예수를 잉태한 아내와 함께 조상의 가문인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으로 가서 가족상황을 등록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구조사라는 평범한 사건과 당신을 경외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구약의 성취와 인류구원의 길을 열고 계신 것입니다. 주전 750년 즈음 선지자 미가는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미5:2).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지만, 벌써 1000년 전의 일이고 요셉과 마리아의 시대에는 그냥 평범한 소촌이었습니다. 바로 이 작은 촌락에 메시야 예수께서 태어나셔서 예언은 성취되고,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이들의 사명은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평범한 삶을 통해 예수님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땀을 흘리며 집을 짓고 수리하는 등 목수의 일에, 마리아는 밥짓고 빨래하며 자녀들을 낳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평범하나 말씀을 간직한 경건한 삶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요셉은 믿음 가운데 죽었으나, 마리아는 30여 년을 믿음을 간직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것입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하나님의 아들의 겸손
누가복음 2:7절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예수께서 태어날 때 ‘강보’는 아기를 싸는 천(포대기)을 말합니다. 따라서, ‘강보로 싸다’란 포대기나 천으로 아기를 단단히 감싸는 행위이며, 아기에게 안정감을 주고 팔과 다리를 곧게 펴도록 한 그 당시의 관례입니다. ‘구유’는 짐승들의 먹이통을 말하는데, 태어난 아기를 빈 구유에 눕힌 것은 적절한 해산 장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관’은 대상들이 하룻밤 묵을 수 있는 허름하나 유일한 베들레헴 공공 숙소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평범하나 경건한 가정에 태어나셨음은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행복은 재산, 지위, 명예 등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삶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 모두와 같이 빈 손으로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죠! 가정을 부양하려면 땀을 흘려 열심히 노력하는 길만 남아 있습니다. 공생애 직전까지 예수께서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시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고(부모 공경 등), 심판자의 자격을 취득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은 당신의 삶을 잣대로 만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요5:27-30). 오늘 본문이 주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삶을 경건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운 모습’은 천사들이 메시야 탄생의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할 때 준 표적으로 활용됩니다(2:12). 하나님은 빈 구유와 같은 소박한 것들조차 사용해 뜻을 이루시니, 우리도 주어진 은사들을 통해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메시야의 탄생
누가복음 2:11절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평범한 젊은 남녀(요셉은 약 20살, 마리아는 약 17세)가 낳아 구유에 눕혀진 첫아들을 보고 하늘에서는 소동이 났습니다. 가장 연약한 아기가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요, 만유의 주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한 천사가 밤 중에 목자들에게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 아기는 어떻게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복음서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그 천사는 그 아기의 정체성을 3가지로 표현합니다: 구주, 그리스도, 주님. ①구주란 이미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부여한 호칭으로 난세를 평정하고 세상을 구출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구출은 죄와 사망에서 건지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하심으로 속죄권과 영생을 확보하셨습니다. ②그리스도란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약속하신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먼저 깨달았습니다(눅9:20) ③주님은 단순한 존칭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칭호로서, 예수께서는 부활하사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대권을 갖고 계십니다. 한편, 천사의 말은 예언 둘을 성취합니다. 하나는 메시야의 베들레헴 탄생에 관한 것이고(미가5:2), 둘은, 태어난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다윗의 왕좌에 군림하여 영원히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실 분(사9:6,7)이란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는 곳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 뜻 행하기를 즐겨합니다. 그들 모두가 메시야 예수를 통해 죄 사함 받은 감사 때문입니다. 이것이 현재 도래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
룻과 오르바의 갈림길
룻기1: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모압에서 10년을 지내면서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 기룐을 모두 잃고 자식도 없는 노년의 가난한 과부가 되었습니다. 토머스 풀러의 말입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연약한 존재이다. 여자 중에서도 노년기의 여자는 더욱 약하다. 그중에서도 과부는 더 불쌍하며, 거기에 가난한 과부는 더더욱측은하다. 나아가 가난한 노년의 과부 중에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은 더욱 처량하며,그것도 먼 타국에서 객이된 자식 없는 가난한 노년의 과부는 실로 가련하며 불쌍하다.” 그녀의 처지는 비참하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영웅 제임스 본드는 돌아갈 조국과 가족이 있었지만, 나오미에게는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베들레헴에 양식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 모압을 떠날 결심하나, 두 며느리는 소망 없는 자신을 뒤 따르고자 하였기에 이들을 모압으로 돌려보내고자 합니다. 그 결과 오르바는 모압과 그 신 그모스로 돌아갔고,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 하나님께 가기로 결단합니다. 중요한 대목은 ‘룻의 구원’입니다. 두 사람은 나오미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구원사를 들었고 믿음의 가정에 들어왔지만, 선택의 순간에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오르바는 삶의 풍요와 이방의 도덕, 그리고 자신의 신에게로 돌아갑니다. 부르심은 받았으나 택함은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룻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난하고 늙은 시어머니를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녀의 결단은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보여주는 중요한 모습이며 복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 것을 보여줍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